[연합시론] 번지는 쿠팡 탈퇴운동 불길…김범석 창업자가 책임있게 응답해야

입력 2021-06-21 16:28  

[연합시론] 번지는 쿠팡 탈퇴운동 불길…김범석 창업자가 책임있게 응답해야

(서울=연합뉴스) 경기도 이천시 쿠팡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 작업을 벌이다 화마에 쓰러진 고 김동식 119구조대장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엄수됐다. 김 구조대장의 동료는 "무시무시한 화마 속에서 대장님을 바로 구해드리지 못하고 홀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1분 1초가 두려웠다. 대장님을 지켜드리지 못해 대장님이 누구보다 사랑하고 의지했던 가족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울먹였다. 직업적 사명감에 투철했고 헌신과 희생의 자세가 남달랐던 영웅을 떠나보내는 가족과 동료들의 애통한 심정에는 모든 국민이 공감하겠지만, 여기에 김 구조대장의 죽음이 과연 불가피한 것이었느냐는 의문이 더해져 한결 마음을 무겁게 한다. 소방당국의 조사 결과 화재 초기 스프링클러의 작동이 8분간 지체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확한 경위는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일단은 오작동으로 화재경보가 잘못 울리는 일이 반복되자 일부러 스프링클러를 꺼둔 것으로 추정된다. 인화물질이 산더미처럼 쌓인 초대형 물류창고에서 불이 난 지 8분이 지나도록 스프링클러가 먹통이었다면 이것은 사람의 부주의와 태만이 키운 화재라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문제의 쿠팡 물류창고는 그뿐만 아니라 각 층간을 차단하는 시설물이 없고 천장을 최대한 높여 확보한 공간에 화물을 층층이 쌓아 올린 탓에 불이 나면 급속도로 크게 번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을 우선한다고 비판받는 기업들이 있었지만, 쿠팡은 최근 들어 이런저런 안전 문제로 국내에서 가장 빈번히 물의를 야기한 업체 가운데 하나다. 빠른 배송의 대명사가 된 쿠팡의 '로켓배송'은 이 업체를 단시간 내에 국내 제일의 이커머스 기업으로 성장케 한 원동력이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 환경 악화라는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 지난해 이후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한 것으로 보도된 근로자가 9명이나 된다. 지난해에는 쿠팡 부천신선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직원 84명과 가족·지인 68명 등 총 152명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피해자 모임은 "쿠팡이 방역당국과 협의 없이 확진자 발생 4시간 만에 사업장을 재가동했다"면서 사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같은 문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쿠팡은 잘못을 인정하고 성의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외부 요인을 탓하며 곤란한 순간만 모면하려는 듯한 행태를 보여 비난을 자초했다. 이천 물류센터 화재 이후 쿠팡이 강한승 대표이사 명의의 입장문을 내 사과하고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이어지는 것은 쿠팡의 이 같은 이력 때문이다.

쿠팡의 기업주인 김범석 창업자의 행보는 특히 실망스럽다. 이천 물류센터 화재가 일어난 지난 17일 쿠팡은 그가 이사회 의장과 등기이사직 등 한국 쿠팡의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등기이사 사임이 이미 지난달 31일 이뤄졌고 발표만 주주총회 이후로 미뤄진 것이며 그 이유는 해외 진출 등 글로벌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창업자의 갑작스러운 사임이 산업재해 발생 시 경영 책임자를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 중대재해법을 피해 나가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시선도 없지 않다. 설사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엄청난 화재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날 수습은 전문경영인에게 미뤄두고 본인은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는 발표를 한 것은 도저히 기업주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쿠팡과 김범석 창업자의 이 같은 행태에 소비자들은 쿠팡 탈퇴와 불매운동으로 실망감을 분출하고 있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SNS에는 '쿠팡 탈퇴' 해시태그(#)를 단 글이 벌써 수십만 건이나 올라왔다고 한다.

김 창업자는 한국 쿠팡의 지분 100%를 보유한 쿠팡 아이엔씨의 의결권 76.7%를 보유했으면서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동일인(재벌총수) 지정도 피해 나갔다. 절대적 지배력을 누리면서도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주로서 도의적 책임까지 면제받았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김 창업자는 이제라도 쿠팡의 경영에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걸맞게 이천 물류센터 화재 등 일련의 안전사고에 관해 책임 있는 입장을 표명하기를 바란다. 대리점 갑질, 자사 제품이 코로나 억제 효과가 있다는 엉터리 연구 결과 발표 등으로 소비자들의 분노를 사게 되자 지분 일체를 사모펀드에 급히 넘기고 회사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했던 남양유업 홍원식 전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사례가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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