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9년 만에 총리공관 입주 日기시다…'단명 징크스' 피할까

입력 2021-12-15 05:25  

[이슈 In] 9년 만에 총리공관 입주 日기시다…'단명 징크스' 피할까
2000년 이래 총리 7명 중 6명이 2년 못 넘겨…고이즈미만 장수
총리 암살 쿠데타 현장…日 정가서 '유령 나온다' 소문 파다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9년 동안 빈집 상태로 있던 총리 공관에 최근 입주한 것이 일본 정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932년 발생한 해군 장교들의 쿠데타로 당시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 총리가 암살당한 장소인 일본 총리 공관은 입주했던 역대 총리들이 단명하거나 불운한 결말을 맞으면서 터가 좋지 않다는 풍문이 돌았다.
2012년 12월 재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도쿄 시부야(澁谷)구의 자택에서 출퇴근했는데, 공관에 입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 '유령 나온다' 소문 日 총리공관…아베·스가 9년 동안 입주 안 해
총리 취임 후 도쿄 아카사카(赤坂)에 있는 중의원 숙소에 머물던 기시다 총리는 지난 11일 도쿄(東京) 치요다(千代田)구 나가타초의 총리 공저(公邸·공관)로 이사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무에 전념하기 위해 (이주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마련해 주는 고위 공무원 숙소를 공저, 집무공간을 관저(官邸)라 부른다.
일본 총리가 관저와 1분 거리인 공저에 입주하는 것은 민주당 정권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 이후 9년 만이다.
노다 후임으로 7년 8개월 동안 재직한 아베 전 총리는 도쿄 시내 자택에서, 그의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는 중의원 숙소에서 각각 지내며 관저로 출퇴근했다.
현재 총리 공관은 1929년에 지어진 옛 공관을 개수해 2005년 4월부터 다시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역대 총리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2차 아베 정권 때부터 연간 1억6천만엔(약 16억7천만원)의 유지비가 들어가는 빈집으로 남아 있었다.
야당에서는 예산 낭비라는 비판과 함께 "위기관리 의식이 결여돼 있다"며 비판해왔다.

실제 올해 2월 13일 밤 11시 8분께 발생한 후쿠시마(福島) 앞바다 강진(규모 7.3) 때 스가 당시 총리가 지진 발생 20분이 지나고 관저에 도착해 이후 국회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베와 스가는 공관에 입주하지 않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얼핏 듣기엔 허무맹랑한 얘기 같지만 일본 정가에서는 오랫동안 꽤 심각하게 회자하는 소문이었다.
유령 출몰 소문은 일본 근대사에서 유명한 두 사건과 연관이 있다.
1932년 5월 15일 일어난 이른바 5·15 사건은 해군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당시 이누카이 총리가 공관에서 구로이와 이사무(黑岩勇)라는 해군 소위의 총에 맞아 숨졌다.
1936년에는 일본 육군의 황도파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2·26 사건이 발생했다.
일왕이 친히 나라를 다스리는 이른바 쇼와(昭和) 유신을 주장하며 1천400여 명의 육군 장교가 총리 공관을 포위하고 공격했는데, 이 과정에서 오카다 게이스케(岡田啓介) 총리는 가까스로 도망쳤고 4명의 경비병과 여러 명의 대신이 살해됐다.
이처럼 일본 역사상 유명한 두 차례의 정변이 일어난 현장인 총리 공관은 이후 억울하게 죽은 많은 원혼이 유령이 돼 나타난다는 소문이 일본 정가에서 흘러나왔다.
스가 전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이던 2013년 5월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다양한 소문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최근 각료들이 공저에서 간담회를 가졌을 때도 그런 화제가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공관에서 주말 이틀을 보낸 뒤 13일 출근길에 만난 기자들이 소감을 묻자 "마음 편히, 제대로 잘 수 있었다"며 "유령은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 2000년 이후 공관 거주 총리 7명 중 6명이 단명…고이즈미만 장수
아베와 스가를 비롯한 역대 일본 총리들이 공관 거주를 피했던 것은 '터가 좋지 않다'는 미신 때문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공관에 입주하면 단명 정권으로 끝난다"는 풍문이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공관에 거주했던 7명의 총리 가운데 5년 5개월 동안 재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를 제외한 6명이 1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이런 '단명 징크스'는 공관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이 유령으로 출몰한다는 소문과 무관치 않다.
재직 기간이 1년을 약간 넘었던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는 밤중에 누군가가 문손잡이를 여는 소리가 들렸다는 말을 했고, 하타 쓰토무(羽田孜) 전 총리 부인은 심령술사로부터 "정원에 군인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일본 민영방송 네트워크 FNN이 전했다. 하타 전 총리의 재임 기간은 64일이었다.
실제로 총리 공관에는 2·26 사건 당시 발생했던 총격전으로 생긴 탄흔이 아직도 일부 공간에 남아있다고 FNN은 덧붙였다.
아베 전 총리는 2006년 9월 처음 총리가 됐을 때는 공관에 입주했으나 이듬해 9월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1년 만에 조기 퇴진했다.
2012년 재집권한 아베가 이번에는 시부야의 자택에서 출퇴근하기로 한 뒤 7년 8개월 동안 재직하며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우자 일본 정가에서는 공관에 입주하지 않은 덕 아니냐는 뒷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크고 작은 지진이 수시로 발생하는 일본에서는 총리가 공관에 거주하지 않으면 신속한 위기 대응이 어렵다는 비판이 늘 제기됐다.
올해 2월 스가 당시 총리가 후쿠시마 앞바다 강진 발생 20분이 지나 관저에 도착하자 야당 의원이 된 노다 전 총리는 "수도권 직하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왜 공저에 살지 않느냐"고 스가를 몰아붙였다.
그는 또 "북한이 일본해 쪽으로 미사일을 쏘면 10분이면 일본 근해까지 도달한다"며 "위기관리 측면에서 1분, 2분이 매우 크다"라고도 했다.
스가는 "(중의원 숙소에서) 관저까지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한다"며 위기관리 태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기시다 총리가 공저에 얽힌 불길한 소문에도 입주를 결심한 배경에는 이처럼 위기관리 태세를 둘러싼 야당 등의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리 취임 직후인 지난 10월 7일 수도권에서 진도 5강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기시다가 지진 발생 후 35분이 지나 관저에 도착한 것을 두고도 야당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passi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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