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대선에 드리운 독재자 피노체트의 짙은 그림자

입력 2021-12-18 09:40  

칠레 대선에 드리운 독재자 피노체트의 짙은 그림자
'피노체트 유물 청산' 좌파 보리치 vs '향수 자극' 극우 카스트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16일(현지시간) 오후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이탈리아광장엔 사람들이 몰려나와 샴페인을 터뜨리고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축구 대표팀의 승리 이후와도 같은 이날의 축제 분위기는 1973∼1990년 집권한 군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의 부인 루시아 이리아르트의 사망 소식에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광장에 나온 사람들의 상당수는 1990년 이후에 출생했을 20∼30대 젊은이였다. 군부정권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까지도 '피노체트 시대의 종언'을 열렬히 환영한 것은 여전한 피노체트 존재감의 방증이기도 하다.
우연히도 이리아르트가 99세를 일기로 숨진 날은 칠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를 사흘 앞둔 날이기도 했다.
이리아르트의 죽음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번 대선에선 이미 15년 전에 숨진 피노체트가 특히 자주 소환됐다.
지난달 1차 투표에서 27.9%를 득표해 1위로 결선에 진출한 극우 후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5)는 피노체트 정권 시절 경제 성과 등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는 2017년 대선 출마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피노체트가 살아있었다면 자신을 뽑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카스트가 이번 선거에서 예상 밖 선전을 거둔 데에는 이민, 범죄 등에 대한 강경한 발언과 더불어 일부 유권자 사이에서 피노체트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맞서는 좌파 후보 가브리엘 보리치(35)는 반대로 피노체트 정권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여론 속에 부상한 후보라고 할 수 있다.
1차 투표에서 25.8%를 득표해 카스트에 2.1%포인트 뒤졌지만 결선투표를 앞둔 여론조사에는 약간 우세한 편이다.
칠레에선 2019년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에 대한 분노가 교육·의료·연금 등 불평등을 낳는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번지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시위대는 피노체트 정권 시절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헌법이 부조리와 불평등의 뿌리라고 주장하며 폐기를 요구했고, 이후 국민투표에서 80% 가까이가 새 헌법 제정에 찬성했다.
대학생 시절 교육 개혁을 요구하며 대규모 학생 시위를 주도했던 보리치는 "칠레가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다면 이젠 신자유주의의 무덤이 될 것"이라며 피노체트 시절 유물과 완전한 결별을 예고하고 있다.
두 극과 극 후보에 대한 엇갈린 여론은 피노체트에 대한 평가와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피노체트는 1973년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고 17년간 독재했다. 이 기간 칠레에선 반체제 인사 등 3천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고문 등 인권탄압도 만연했다.
그러나 칠레가 중남미에서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나라가 된 데에는 피노체트 정권이 경제정책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피노체트 정권 시절 가족이 실종된 미레야 가르시아(64)는 로이터통신에 "쿠데타는 우리 가족을 완전히 파괴했다"며 "이번 선거는 칠레를 위험에 빠뜨릴 극우와 젊은 층을 대변할 후보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교사인 카밀라 참블라스(26)는 "피노체트 시절은 내가 태어나기 전이지만 부모님으로부터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익히 들었다"며 피노체트의 연장선에 있는 카스트에 투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반면 카스트 지지자인 아우로라 오비에도(67)는 "난 아옌데 정권도 경험했는데 매우 혼란스러웠다. 먹을 것도 없고 뭐든 구하려면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역시 아옌데 정권에서의 경제난을 기억하는 리카르도 세풀베다(75)는 AFP에 "공산주의는 가난한 이에게도 부자에게도 좋지 않다"며 카스트를 지지하는 이유를 말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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