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란 잘란] 한국에는 고추장, 인도네시아에는 '삼발'

입력 2022-01-22 06:06  

[잘란 잘란] 한국에는 고추장, 인도네시아에는 '삼발'
지역마다 식당마다 다른 재료·조리법…"골라 먹는 재미"




[※ 편집자 주 : '잘란 잘란'(jalan-jalan)은 인도네시아어로 '산책하다, 어슬렁거린다'는 뜻으로, 자카르타 특파원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한국에 고추장이 있다면, 인도네시아에는 삼발(Sambal)이 있다.
삼발이 고추장처럼 항상 붉은색이고, 매운 고추 짜베(cabe)로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삼발은 한국의 김치가 그렇듯이 지역마다, 식당마다 각기 다른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져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다.



지난 21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가장 큰 쇼핑몰인 그랜드인도네시아 뒤편 삼발 음식 노점 거리를 찾아갔다.
인도네시아에서 '짜베 보이'(고추 소년)로 불리는 유명 한식 요리사이자 팔로워 32만4천명의 유튜버 전병준(32)씨에게 삼발 동행 취재를 부탁하자 "요새 가장 인기 있는 곳을 섭외해놨다"며 알려준 곳이다.
정오께 도착해보니 차와 오토바이가 끊임없이 지나는 도로 한편에 노점 10여 개가 줄줄이 서 있고, 점심을 먹는 손님은 물론 배달을 위한 고젝, 그랩 오토바이 기사들이 바글바글했다.
이들 노점의 주메뉴는 생선튀김, 닭튀김에 삼발을 얹고, 쌀밥과 함께 2만 루피아(1천700원) 안팎에 판매하는 것이다.
특히, 식품 공장에서 생산된 삼발을 쓰지 않고 노점마다 '울르깐'(ulekan)으로 불리는 돌절구를 비치하고 직접 만든 삼발을 올려주는 게 특징이다.



인도네시아가 적도 부근에 있어 일 년 내내 더운데 냉장 시설도 없다 보니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게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요리가 많다.
삼발은 볶거나 튀긴 음식에 곁들인 소스 또는 채소를 찍어 먹는 소스로 쓰이지만, 고추장에 참기름만 넣고 밥을 비벼 먹는 사람이 있듯이 인도네시아인들 또한 삼발을 맨밥에 비벼 먹기도 한다.
삼발은 주로 고추를 생으로, 또는 말린 뒤 마늘과 양파, 토마토 등과 함께 팜유 등 식용유를 넣고 돌절구에 갈고 치대서 끈적끈적한 페이스트 형태로 만든다. 재료를 갈아서 식용유에 볶아 만드는 방법도 있다.
술라웨시에서는 삼발에 '뜨라시'(terasi)라는 새우젓갈이나 오징어젓갈을 넣고, 서부자바 반둥 등 내륙지역에서는 냄새가 고약한 콩과 식물 '젱콜'(jengkol)을, 발리에서는 미니 양파로 불리는 '샬롯'을 넣는 등 지역에 따라 재료가 다르다.
전병준 쉐프는 "삼발은 주로 중독적인 매운맛으로 더운 날씨에 입맛을 돋워 주는 역할을 하지만, 요새는 단맛과 신맛을 살리고 맵지 않은 삼발도 있다"며 "식당마다 맛이 다르다 보니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서 삼발 맛집 탐방을 다니는 현지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랜드인도네시아 뒤편 삼발 음식 노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우장(30)과 레시(28) 부부가 2017년부터 운영한 '아얌 쁜옛'(Ayam penyet) 노점이다.
'아얌'은 닭이고, '쁜옛'은 눌러 부순다는 뜻이다. 튀긴 닭고기를 꾹꾹 누른 뒤 금방 만든 매운 삼발을 오려서 밥과 함께 먹는 요리다.
우장 부부는 아주 매운 초록 고추를 팜유에 튀긴 뒤 돌절구에 마늘과 함께 빻고 치대서 만든 '삼발 히자우'(초록 삼발)를 닭튀김에 얹는 조리법으로 최고 인기를 끌고 있다.
닭튀김 한 조각에 삼발 히자우를 얹고 쌀밥과 함께 주는 기본 메뉴 가격이 1만8천 루피아(1천500원).
여기에 튀긴 두부나 뗌뻬, 가지 등 고명을 추가하면 값이 더 올라간다.
레시는 "친구가 아얌 쁜옛 노점을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났나 보다"며 "하루 평균 400명분을 팔아서 한 달 매출이 1억5천만 루피아(1천250만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노점임에도 재료 준비하는 직원과 판매 직원까지 일하는 사람이 12명이나 되고, 하루에 청양고추 90㎏을 소비한다.





이날 오후 1시께 이들 부부가 나타나자 직원들이 노점 수레를 밀고 나타났다.
같이 온 오토바이에는 토막 내서 손질한 뒤 한 번 쪄낸 닭과 고추, 마늘, 쌀밥, 포장 용기가 실려 있었다.
오후 2시부터 장사하는데도 손님들은 벌써 줄을 서기 시작했다.
우장이 기름을 끓이고 고추를 잔뜩 붓자, 매콤하고 맛있는 냄새가 길거리에 퍼졌다.



직원은 돌절구에 마늘부터 빻다가, 기름에 튀긴 고추를 넣고 소금과 미원을 첨가한 뒤 20분 이상 갈고 치대서 끈적한 초록색 삼발을 만들었다.
고추를 튀긴 기름에 닭도 튀겨내니, 닭고기 속 속까지 매운 향이 스며들었다.
줄 선지 1시간 만에 요리를 받은 제아(25)씨는 "엄청나게 맵지만, 그만큼 맛있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특파원이 직접 먹어보니 바로 헛기침이 날 정도로 맵고 짰다. 하지만, 닭튀김과 밥에 자꾸 손이 가는 그런 맛이었다.
손님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우장씨는 "번듯한 식당을 내라는 말이 많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노점으로 좀 더 사업을 키우면서 기회를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noano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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