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근대 산업유산의 '빛'만 보고 '그늘'은 외면하는 일본

입력 2023-10-07 07:07   수정 2023-10-07 07:14

[특파원 시선] 근대 산업유산의 '빛'만 보고 '그늘'은 외면하는 일본
군함도 포함된 '메이지 산업혁명유산', 조선인 강제노역 설명 여전히 미흡
조선인 피해사실 추가? 전시관 예약도 안돼…日 진보언론 "자국 역사관에 구애되지 말라" 일침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지난달 하순 도쿄 서쪽 시즈오카현 이즈반도를 찾았다가 이즈노쿠니시에 들렀다.
도시 명칭도 생소한 이곳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니라야마 반사로(反射爐)'가 있다. 니라야마는 지명이고, 반사로는 광석을 제련하거나 금속을 녹이는 데 사용하는 용광로를 뜻한다.
1857년 11월에 완공된 니라야마 반사로는 현재 건축물 2동이 직각을 이루며 서 있다. 각각의 반사로에는 길쭉한 굴뚝 2개가 솟아 있으며, 전체 높이는 약 15.7m이다.
니라야마 반사로에서는 대포를 만들었고, 완성된 제품은 인접한 강을 따라 운반됐다. 반사로 활용 시기는 매우 짧았던 듯하다. 이즈노쿠니시가 발간한 자료를 보면 1860년에 대포를 생산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니라야마 반사로를 굳이 찾아간 이유는 이곳이 세계유산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유산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일본에 세워진 중공업 관련 시설 23개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규슈 나가사키현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도 포함돼 있다.
일본은 2015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되고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역을 당했다"며 "일본 정부는 정보센터 설립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포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나가사키현이 아닌 도쿄에 세웠고, 전시에서 조선인 차별이나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니라야마 반사로는 한국사에서 조선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운영돼 조선인 강제노역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지만,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궁금했다.
실제 살펴본 결과는 예상과 일치했다. 근대 산업유산의 '밝은 면'만 강조됐을 뿐, '어두운 면'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반사로 옆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일본은 서양이 아닌 나라들 가운데 최초로 산업혁명의 물결을 수용해 50년 남짓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자신들의 손으로 산업화를 성취했다"는 문장과 "세계사에서 유례가 드문 산업화의 국면을 증언하는 유산군(群)"이라는 표현 등 긍정적 가치를 담은 내용만 있었다.
2021년 일본이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등재 시 약속했던 조선인 강제노역 관련 조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달 회의에서는 일본 정부가 '몇 가지 추가적인 조치'를 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세계유산위원회는 "스스로의 약속을 계속해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새로운 증언 등을 포함한 추가 연구, 자료 수집 등을 수행하고 관련 당사국과 대화도 계속하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일부 일본 언론은 일본 조치로 세계유산위원회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을 부각했고, 한일 관계 개선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와 관련해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산케이신문은 산업유산 정보센터가 1941년 9월∼1945년 8월에 군함도에서 탄광 사고로 인해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15명을 포함해 44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시에 추가했다고 보도했다.
또 태평양전쟁 시기에 탄광 내 작업 내용과 위생 상태 등을 적은 기록을 동영상으로 소개하고, 오사카 인근 효고현 조선소에서 근무한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받은 급여 봉투 40점을 입수해 복제품을 전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급여 봉투를 받은 노동자가 일했다는 효고현 조선소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이 아니다.
아울러 산케이가 전시에 추가됐다고 강조한 '군함도 내 조선인 사망' 관련 내용은 '조선인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노역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이러한 전시물은 도리어 '조선인이 일제 치하에서 일본인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는 일본 우익의 논리만 강화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전시 내용이 보강됐다는 산업유산 정보센터는 지난달 25일부터 아예 예약을 받지 않지 않고 있다.
산업유산 정보센터 측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예약 시스템을 조정하고 있다"며 "직접 찾아와도 전시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 전시물 문제는 아니다"라며 "관람 재개 시기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진보 성향 일간지 도쿄신문은 지난 2일 사설에서 곱씹어볼 만한 쓴소리를 전했다.
이 매체는 지난달 세계유산위원회 결정에 대해 "일본의 대응을 인정해 준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대응을 주시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이어 "자국의 역사관에만 구애된다면 국제적인 이해를 얻지 못한다. 일본 정부는 정중하게 설명과 대화를 지속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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