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이 취임 두달] 아르헨, 과격한 개혁에 커지는 저항감…중대 변곡점

입력 2024-02-08 08:18   수정 2024-02-08 08:24

[밀레이 취임 두달] 아르헨, 과격한 개혁에 커지는 저항감…중대 변곡점
새정부, 공기업민영화 등 급속한 사회변화 시도…노조, 5년만에 총파업
600여개 개혁내용 담은 옴니버스법안, 여소야대 벽에 걸려 일단 '제동'
주춤했던 물가·암시장 달러 다시 상승 분위기…경제난 극복 '가시밭길'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극단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각종 개혁과 기득권 심판론을 내세우며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53)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오는 10일(현지시간) 집권 두 달을 맞는다.
밀레이 대통령은 200%대의 연간 인플레이션과 40%대의 빈곤율 등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이는 아르헨티나에서 각종 병폐를 모두 잘라내겠다는 '전기톱 개혁'을 야심 차게 들고나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 절차 없는, 밀어붙이기식 과격한 정책 추진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있고, 의회 설득과 협치의 실패로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장벽 앞에서 각종 개혁내용을 담은 이른바 '옴니버스 법안' 처리도 제동이 걸렸다.
이에 따라 전기톱이 제대로 사용되기도 전에 톱날이 무뎌지거나 아예 전기톱의 가동 자체가 멈추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 취임 열흘 만에 개혁안 발표…"빨라도 너무 빨랐다"
연간 1만5천%대의 초인플레이션 도래 우려와 함께 경제난 극복을 위한 '충격 요법'을 예고하며 지난해 12월 10일 취임한 밀레이 대통령은 열흘 만에 긴급 대통령령(DNU) 300개를 즉시 시행한다고 공표했다.
실기하지 않고 개혁의 고삐를 죄겠다는 상징적 조치였다.
공기업 민영화 방지 규제 철폐와 수출입 절차 간편화 등 친(親)기업 정책에 더해 보조금 축소 등 정부 지출 삭감, 인위적 생필품 가격 조정 중단, 임대료 제한 폐지, 고용 의무 없는 근로자 수습 기간 3→8개월 변경, 이혼 소송 간소화 등 국민 일상생활에 직결되는 부분도 대거 포함됐다.
현지 일간지 클라린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고 평가한 이 '기습 발표'에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 수백명은 한밤중 냄비를 시끄럽게 두드리는 특유의 시위를 벌이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밀레이 대통령은 그러나 이에 멈추지 않고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공무원 5천명을 한꺼번에 감축하는 등 강도 높은 경제 개혁 구상을 더 쏟아냈다.
지난달 27일에는 형법·선거법을 비롯해 664개 조항의 각종 법 개정안을 망라한 옴니버스 법안을 의회에 전달했다.
한 손에 들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관련 문서는 아르헨티나 국기 색깔 리본으로 선물처럼 포장돼 의회에 전달됐다. 밀레이 정부의 계산된 '쇼맨십'이었다.
여기에는 의회가 일부 입법권을 행정부에 넘겨야 한다는 둥 초헌법적인 내용도 포함됐다. 앞서 이 나라 치안 장관이 발표했던 거리 시위 제한 형법 개정안도 함께 제출됐다.
마누엘 아도르니 대통령실 대변인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선한 국민들이 원하는 국가를 위해 함께 할 것인지, 변화를 거부하고 방해하는 쪽에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며 법안을 심의·처리할 의회 의원들을 압박했다.



◇ 폭발한 민심…"설명도 없이 왜 서민을 희생양 삼나"
"나라에 돈이 없다"며 단행한 정부의 과격한 조처에 실물경제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출렁거렸다.
페소화 평가절하와 가격통제 폐지 등으로 국민들 지갑이 더 얇아졌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 가스와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은 되레 줄줄이 인상되면서 '이게 개혁이 맞느냐'는 불만이 들끓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공무원들과 들썩이는 생필품값에 분노한 서민들은 급기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지난 두 달 새 수시로 반정부 집회와 거리 행진이 이어졌고, 지난달 24일에는 이 나라에서 5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총파업과 시위가 진행됐다.
일반 시민까지 대거 참여한 이날 시위에서 근로자들은 그간 수많은 논의와 의견 조정으로 도출한 각종 사회적 합의를 밀레이 정부에서 함부로 전복하려 한다고 성토했다.
"힘없는 서민만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라거나 "환자에게 설명도 없이 위험한 수술을 집도하려 한다"는 분에 찬 주장도 이어졌다고 현지 일간 페르필은 전했다.
보수 계열 매체인 라나시온 역시 "밀레이 정부가 소통 없이 설익은 국정 운영으로 위기를 자초한다"고 평가했다.



◇ '원론적 가결→원점 재검토' 의회서 제동 걸린 개혁법안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던 밀레이 표 개혁 법안은 의회 문턱을 넘기에도 힘겨워 보이는 상황이 됐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의회를 원만하게 이끌고 협상을 타결할 책임을 진 여당이, 좌파 야당과의 협치는커녕 우파 계열 야당 의원들 설득에도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서다.
앞서 지난 2일 아르헨티나 하원은 재석의원 과반 찬성(찬성 144표·반대 109표)으로 정부에서 발의한 법 개정안을 원론적으로 통과시키기로 결정했다.
재적 의원 257명 중 여당 소속은 38명에 불과하지만, 보수우파 야당 의원들이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불과 나흘 만에 상황은 급반전됐다.
일부 세부 주요 법안들에 대해 개별 표결을 통해 가·부결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고 지난 6일 다시 본회의를 열었지만, 이 자리에서 보수 야당의 대거 이탈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의사 중계 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생중계한 의원 토론 과정에서 여당은 밀레이 정부의 '신속 처리 필요' 입장을 대변하다시피 했고, 이에 일부 보수 야당 의원들은 '긴급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결국 공기업 민영화를 위해 행정부에 관련 권한을 대거 위임하는 안을 비롯한 핵심 법안들은 줄줄이 부결됐다.
결국 하원은 대부분 법안을 위원회에서 다시 검토하는 수순을 밟게 됐다고 텔람통신은 보도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카스타'(기득권)와 전임 페론주의 계열 정부들의 '잘못된 유산' 탓이라고 분개했다.
이스라엘·이탈리아·바티칸 순방 중인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옴니버스 법안 등을 통과시키지 않은 하원 의원들을 향해 "그들은 2001∼2002년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축하했던 짐승들과 매우 유사하다"고 맹비난했다.




◇ 물가·환율 다시 들썩…개혁 성공이나 위기의 나락이냐 중대 변곡점
급등하던 물가와 환율이 주춤했던 밀레이 취임 초반 때와는 달리 다시 상승하는 분위기다.
라나시온은 "부에노스아이레스 2월 월간 생활 물가지수가 전월 대비 21.4%가량 상승했다"며, 연간 인플레이션의 경우 238.5%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더해 공식 환율(달러당 877페소)과의 간극을 좁혔던 비공식 환율(블루 달러)은 달러당 1천200페소 안팎까지 다시 올랐다.
블루 달러는 이론적으로는 불법이지만, 각종 언론에서 매일 그 추이를 보도할 정도로 아르헨티나 외환 시장을 살피는 단서로 활용된다.
밀레이 정부가 '후퇴는 없다'며 지속적인 개혁 의지를 밝히는 가운데 국민적 저항이 커지고 있고, 실물 경제도 다시 흔들리면서 만성적인 경제위기를 겪어온 아르헨티나가 중대 국면에 접어들었다.
과감한 변화로 아르헨티나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밀레이 대통령의 개혁이 성공의 기반을 다져가느냐, 본격적으로 전개도 되기 전에 다시 위기로 떨어지느냐 변곡점에 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walde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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