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못쉬겠다는데 수갑…영국 백인청년 사망에 인종논란 격화

입력 2026-06-03 02:10  

숨 못쉬겠다는데 수갑…영국 백인청년 사망에 인종논란 격화
우익 패라지, 조지 플로이드 언급하며 "백인 역차별, 분노하라"
"갈라치기 하지마" 중도파, 패라지에 공세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영국에서 백인 청년이 시크교도로부터 흉기 공격을 당하고도 경찰 오인으로 수갑을 찬 채 사망한 사건이 인종 문제로 번지면서 논쟁이 격해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사우스햄프턴 형사 법원은 지난해 12월 귀가 중이던 백인 학생 헨리 노박(당시 18세)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시크교도 비크룸 디그와(23)에게 최소 복역 기간 21년의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경찰 대응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디그와는 본인이 노박을 흉기로 공격했는데도 현장의 경관들에게는 노박이 자신의 터번을 벗기고 머리를 잡는 등 인종차별성 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당시 노박을 용의자로 보고 수갑을 채웠다.
재판 과정에 공개된 경찰 보디캠 영상을 보면 노박은 바닥에 누운 채로 "흉기에 찔렸다"고 말했지만, 경찰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답한다. 노박이 고통스러운 듯 "숨을 못 쉬겠다"고 말하지만 경관은 노박에게 수갑을 채운다.
노박은 그 직후 사망했다. 경찰은 노박이 잘못됐음을 인지하고 수갑을 풀고 심폐소생술(CPR)을 했으나 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노박의 유족은 선고 후 법원 앞에서 경찰 대응에 대해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헨리의 죽음이) 더 큰 분열과 증오, 긴장을 만들어내는 데 이용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격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우익 성향 영국개혁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는 경찰이 인종차별로 지적당할까 두려워 살인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우리는 완전히 냉혹한 분노로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박이 '숨을 못 쉬겠다'고 한 점을 들어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언급하고 "그때의 반응, 경찰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기억하라"고 말했다. 2020년 경찰의 과잉 진압에 숨진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벌어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을 가리킨 언급이다.
패라지 대표는 영국에서 백인들의 권리는 소수민족의 권리보다 덜 소중한 것으로 여겨진다며 '백인 역차별'을 거듭 주장했다.
이에 영국개혁당과 각을 세워온 중도우파 제1야당 보수당의 케미 베이드녹 대표는 바로 이를 비판했다.
그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도, 백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다.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 헨리 노박은 소중하다"며 "갈라치기 하는 이런 헛소리는 이제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절 패라지가 일도 안 하고 의회에는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이런 문제에 뛰어드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며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화를 부추겨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도 비판했다.
중도좌파 노동당 정부의 샤바나 마무드 내무장관은 이날 하원에 출석해 "비극으로부터 개인적,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을 규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무드 장관은 패라지 대표를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허위정보와 선동적 언급은 끔찍한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우리는 이 살인 사건이 커뮤니티간 반목으로 바뀌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논쟁은 영국이 키어 스타머 총리의 위기로 총리 교체론이 커지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해진 시기에 확산하고 있다.
스타머 총리의 유력한 경쟁자인 앤디 버넘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은 오는 18일 하원 재입성을 위한 메이커필드 선거구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영국개혁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또한 영국개혁당은 탈당파 인사가 세운 극우 성향 영국복원당의 압박을 받고 있다.
영국복원당 지지를 표시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노박 피살 사건 공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달 영국 경찰의 이번 사건 대응을 비판하고 경찰을 상대로 한 소송에 자금을 지원할 의향이 있다는 글을 엑스(X·옛 트위터)에 잇달아 올리기도 했다.

cheror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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