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우리 모두의 이야기…구자하의 '하리보 김치'

입력 2026-07-16 19:07  

[특파원 시선] 우리 모두의 이야기…구자하의 '하리보 김치'

[특파원 시선] 우리 모두의 이야기…구자하의 '하리보 김치'



(아비뇽<프랑스>=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특파원으로 프랑스에 온 지 3년.
이제는 빵집이나 식당에 들어갈 때 머뭇거리지 않고 "봉주르" 인사를 하고, 길에서 누군가와 부딪힐 때면 미안하다는 말의 프랑스어 "빠르동"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현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따라가다 보니 한국 정치인들보다 프랑스 정치인들 이름이 눈에 더 익다. 부러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 두지 않은 것도 있다.
그렇다고 이곳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검은 머리 아시아인, 누가 봐도 프랑스인과 구분되지만 '가급적 구분되지 않았으면' 하고 내심 바라는 이방인이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는 연극 연출가 구자하의 '하리보 김치'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진 건 그래서다.
'하리보 김치'는 구자하 작가가 한국을 떠나 독일, 벨기에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화들을 음식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다.
작가가 무대에 설치한 한국의 포장마차에 관객 2명을 손님으로 앉혀놓고 김치전과 미역 오이냉국을 대접하며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한국을 떠날 때 할머니가 싸준 김치 봉지가 독일 아파트의 발코니에서 발효되며 터져 '악취'가 건물 전체에 퍼지고, 외국인들에겐 자칫 핏빛으로 오해될 수 있는 김칫국물이 아래층 난간에 떨어져 난처했던 순간, 작가는 그만 자기 얼굴이 붉어졌다고 고백했다.
벨기에 기차 안에서 잃어버린 가방을 찾으러 안내데스크에 갔다가 플라스틱 투명 가림막 뒤 직원으로부터 "마늘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고는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미안하다"가 튀어나와, 그런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고도 했다.
구자하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 외국에 사는 많은 한국인이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인종차별의 상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혹자는 구자하의 '하리보 김치'가 너무 평범하고 진부하다고 한다.
하지만 김치찌개 한 번 끓였다가 아파트 복도 전체에 냄새가 퍼져 현관문 앞에 향수를 뿌려두고(냄새의 발원지를 숨겨보고자), 마늘 냄새가 신경 쓰여 생일에도 미역국을 포기했던 누군가에겐 애써 묻어둔 자기 안의 상처를 건드린 시간이었다. 아프지만, 그래서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한국을 떠나 유럽에 산 지 15년이 됐다는 구자하 작가는 여전히 두 경계 사이에 서 있다.
"한국에 가면 저를 '전(前) 한국인'처럼 대하는 분들이 있고, '한국 떠난 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유럽에서 활동할 땐 모두가 저를 한국 작가라고 소개합니다. 모든 작품이 유럽에서 제작됐고 모든 활동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 여전히 한국인 작가죠"(16일 인터뷰)
3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기자는 8월 말 한국에 돌아간다.
한국에 있는 친구, 회사 동료가 오랜만에 기자를 보면 어떤 인사말을 할까.
"파리지앵 다 됐네". 이 말은 아니길.
s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삼성바이오로직스현대차삼성전자트럼프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