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서 연설…이란전쟁 속 美신뢰 약화 의식한 듯 "美 배제 안돼"
제1도련선 방어 통한 중국 견제 및 각국 국방비 증액 필요성도 제기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이 동남아시아 지역을 찾아 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견국 동맹'에 공개 경고했다.
미국에 대한 신뢰 약화가 중견국 간의 협력 증대로 이어져 미국의 입지를 좁히는 상황을 경계한 것이다. 패권에서 자유로운 아시아를 강조하며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각국의 기여 확대도 압박했다.
10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등에 따르면 콜비 차관은 이날 필리핀 마닐라의 싱크탱크를 찾아 연설했다.
콜비 차관은 "미국은 결코 쇠퇴하고 있지 않다"면서 "미국은 절대로 아시아에서 손을 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며 "우리는 아시아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패권에서 자유로운 아시아라는 미국의 오랜 관점은 미국 건국 초기부터 우리의 지역 전략 핵심이었다"고 강조했다.
콜비 차관은 "미 국가안보전략(NSS)이 밝히고 있듯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유리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제1도련선을 따라 거부 기반 억지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일본과 대만, 필리핀 등을 잇는 제1도련선 방어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콜비 차관은 "이제 미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어 협력할 수 없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자 핵심을 놓친 것"이라며 "여러분은 분명히 미국과 협력할 수 있다. 하지만 조건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하에 각국은 미국을 더는 당연시할 수 없다"면서 이에 따라 동맹에 대한 국방비 증액 압박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각국의 기여 증대를 촉구했다.
이어 "미국을 당연하게 여길 수 없다는 것이 우리와 상대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접근법대로 여러분이 접근한다면 우리는 이전 행정부보다 더욱 적극적인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했다.

콜비 차관은 미국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중견국 간의 협력 증대에 대해서는 '망상'과 같은 표현을 동원해 단호하게 경고했다.
콜비 차관은 "미국을 배제하기 위해 고안된 중견국 동맹 같은 피상적이고 유행하는 구상에 대한 망상을 버리라고 권고한다"면서 동맹 및 파트너국 간의 협력은 장려하지만, 미국을 배제하거나 대체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명된 문서나 새로 구성된 실무협의체가 강압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다. 실전 배치된 군사력과 입증된 정치적 의지가 억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에 대한 신뢰가 약화하면서 중견국 간에 이뤄지는 군사협력에 대해 강도 높게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견국 간 협력에 사실상 실체가 없으며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만이 중국의 강압에 맞설 수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란전쟁을 거치며 미국이 무기를 빠르게 소진하고 전략 부재를 노출하면서 동맹 및 파트너국 일각에서는 미국의 방어 공약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무기 소진 실태를 면밀히 주시하며 도발적 행보에 나설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강대국은 아니지만 경제·군사적 역량을 갖춘 중견국을 중심으로 자국 방어와 이익 확대를 위한 협력 증진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콜비 차관은 최근 지역 전쟁에서 전술핵이 동원될 가능성을 감안해 미국도 전술핵 옵션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주목받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소형 전술핵무기 확보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고위력 전략핵무기에 의존하는 미국도 선택지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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