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곳 아닌 대피해오는 곳"…日최고층 빌딩 '방재 요새'

입력 2026-08-21 18:27  

"도망치는 곳 아닌 대피해오는 곳"…日최고층 빌딩 '방재 요새'

"도망치는 곳 아닌 대피해오는 곳"…日최고층 빌딩 '방재 요새'
간토대지진 103년 앞두고 찾은 도쿄 '아자부다이 힐스'
제진 장치 통해 건물 흔들림 억제…창고엔 3천600명이 사흘간 버틸 물자


(도쿄=연합뉴스) 이도연 특파원 = 오는 9월 1일이면 일본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지 103년이 된다.
또다시 도쿄 등 수도권 바로 아래에서 일어나는 '수도 직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쿄의 수많은 고층 빌딩이 지진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현존 일본 최고층 마천루인 '아자부다이 힐스 모리 JP타워'다.
오피스와 쇼핑몰, 호텔 등이 밀집해 매일 직장인과 관광객으로 붐비는 이곳은 대지진이 닥쳐도 안전할 수 있을까.
21일 찾은 아자부다이 힐스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도망치는 곳이 아니라 대피해오는 곳'이라는 건설·운영사 모리 빌딩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었다.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진 직후에도 도시 기능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자부다이 힐스의 건물 내부 단면도를 살펴보면 위층부터 아래층까지 촘촘히 박힌 구조물들이 눈에 띈다. 건물 흔들림을 흡수하는 '제진'(制振) 설비다. 아자부다이 힐스에는 총 4종류의 제진 장치 수백기가 건물 곳곳에 설치돼 있다.


대표적인 설비가 붉은 오일이 채워진 '오일 댐퍼'다. 지진으로 건물이 좌우로 흔들리면 내부 오일이 압축·팽창하며 지진의 진동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꿔 방출한다.
오일 댐퍼 등의 제진 장치를 통해 건물의 흔들림을 억제하고 구조적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모리JP 타워 지하 5층으로 내려가자 거대한 에너지 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는 도시가스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열병합 발전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으며 아자부다이 힐스 전체에 전기와 냉수, 온수를 공급한다.
귀가 아플 정도로 윙윙 울리는 소리를 내며 각각 5천200㎾급인 대형 가스 엔진 발전기 2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 발전기로 생산하는 전력으로는 인구 1만명의 소도시 정도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 모리 빌딩 측의 설명이다.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고온의 배기가스 열을 버리지 않고 냉난방이나 건물의 온수 공급 등에 활용하면서 발전 효율도 높였다.
이 자가발전 설비는 평소에도 아자부다이 힐스 전체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지진으로 인해 외부에서 정전이 발생할 경우에도 정전 전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기능을 유지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소프트웨어 측면의 대책이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교통이 마비되면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귀가 곤란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둔 것이다.
지하 4층에 위치한 비축 창고에는 귀가 곤란자 수천 명이 버틸 수 있는 구호물자가 빼곡했다. 아자부다이 힐스 내에 있는 비축 창고 4곳에 있는 물자로 3천600명이 사흘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물품은 1인당 하루 3ℓ씩이 배정되는 물, 통조림과 비스킷, 비상 건조식량 등 식량뿐 아니라 아기 기저귀와 여성 위생용품, 단수 시 배설물을 굳히는 응고제, 체온 유지를 위한 에어매트와 알루미늄 담요 등이었다.


식품에는 유통 기한이 있어 모리빌딩은 유통기한이 약 1년 남은 시점부터 새 물품으로 교체하고, 기존 물품은 재해 지역 구호품이나 지역 주민 방재 훈련용으로 무상 지원해 폐기물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용은 도쿄도와 미나토구에서 전액 지원한다.
지진 발생 시 귀가 곤란자들은 아자부다이 힐스의 오피스 로비와 상업 구역 복도, 가미야초역과 롯폰기잇초메역을 잇는 약 750m 길이의 중앙 지하 통로로 안내된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고 자체 비상 발전으로 냉난방이 유지돼 외부 대피소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인적 대응책도 갖췄다. 모리빌딩은 도쿄 23구에서 일본 기상청 기준 '진도 6약' 이상의 지진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비상 대응 체제로 전환한다. 롯폰기 힐스, 도라노몬 힐스 등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반경 3.5km 이내에 거주하는 직원 300여 명이 방재 요원으로 지정돼 있어 지진이 발생하면 신속한 초동 조치에 나선다.
dy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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