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에 실사격 훈련까지…中·필리핀, 남중국해 군사긴장 고조

입력 2026-08-23 20:55  

물대포에 실사격 훈련까지…中·필리핀, 남중국해 군사긴장 고조

물대포에 실사격 훈련까지…中·필리핀, 남중국해 군사긴장 고조
中은 실효통제·필리핀은 국제법 앞세워…美항모 공백 속 우발충돌 우려



(하노이·베이징=연합뉴스) 박진형 한종구 특파원 =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의 갈등이 군사적 긴장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남중국해에서는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필리핀명 바조 데 마신록)와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필리핀명 칼라얀군도) 내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 등이 대표적인 양국 분쟁 해역이다.
중국은 해경과 해상민병대 등을 동원해 실효적 통제를 강화하고, 필리핀은 국제법과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과의 안보 협력을 지렛대로 맞서면서 양측 모두 물러서기 어려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란 전쟁 여파로 미국이 서태평양 배치 항모전단을 중동으로 이동시키면서 역내 미군의 대중국 억지력에 일시적인 공백이 생겼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속에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 잇따른 충돌 속 상대 실효 지배 암초 점거 시도 가능성까지
중국은 24일부터 닷새간 남중국해 북부 해역에서 매일 10시간씩 실탄사격 훈련을 실시한다고 예고했다.
중국은 훈련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 21일 중국군이 필리핀 소형 항공기 3대가 스카버러 암초 상공에 무단 진입했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경고한 직후 훈련이 예고됐다는 점에서 양국 간 긴장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군은 지난 1일에도 이 암초 주변에서 해·공군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지난달에는 스카버러 암초에서 중국 해경이 필리핀 선박에 이틀 연속 물대포를 발사했고,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서도 양측이 충돌했다.
양측이 공개한 영상에는 고무보트와 고속정을 탄 인력이 가까이 접근해 고성을 지르고 곤봉과 노 등을 휘두르며 맞서는 모습이 담겼다.
중국은 필리핀 고무보트가 해경선에 위험하게 접근해 고의로 충돌하고 대원을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필리핀은 중국 해경이 자국 해군 병사를 곤봉으로 공격했다고 맞섰다.
양국은 2024년 6월에도 같은 해역에서 충돌해 필리핀 해군 병사 한 명이 손가락을 잃었고, 이후에도 중국 해경의 물대포 발사와 선박 진로 차단 등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됐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실효 지배하는 미스치프 암초 주변에는 최근 해상민병대로 추정되는 중국 어선 200여척이 집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민간 정보분석기관 딥다이브의 위성영상 분석에 따르면 평소 40척 안팎이던 어선은 5월 말부터 급증해 지난달 200척을 넘어섰고, 일부는 20여척씩 서로 결박한 채 머물고 있다.
딥다이브는 중국이 미스치프 암초에서 약 40㎞ 떨어진 필리핀 실효 지배 영역 세컨드 토머스 암초를 점거하려는 시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中, 해경 앞세운 '회색지대' 전략…필리핀, EEZ·국제법 강조
중국은 남중국해 여러 섬과 암초가 예로부터 자국 영토이며 주변 해역에서도 주권과 해양 권익을 보유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중국이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지도에 U자 형태로 표시된 이른바 '남해구단선'이다.
그 기원은 국민당 정부가 1947년 발표한 11단선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중국공산당 집권 이후 1950년대 통킹만 부근의 2개 선을 없애면서 9개 선이 됐다.
중국은 필리핀 선박이 분쟁 해역에 진입할 때마다 '불법 침입'이라고 규정하고 해경의 차단과 퇴거 조치도 자국 영토와 해양 권익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필리핀 루손섬에서 서쪽으로 약 220㎞ 떨어진 스카버러 암초다.
2012년 4월 필리핀 해군이 이곳에서 중국 어선을 단속하려다 중국 해양감시선과 대치했고, 약 두 달간 이어진 대치 끝에 필리핀 선박이 철수한 뒤 중국이 사실상 주변 해역을 통제해왔다.
중국은 해군보다 해경과 해상민병대 등을 앞세워 무력 충돌의 문턱 아래에서 상대방의 활동을 제약하면서 실효적 통제를 강화하는 이른바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필리핀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른 배타적경제수역(EEZ)과 2016년 국제중재 판정을 핵심 근거로 내세운다.
필리핀은 1999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건조된 상륙함 BRP 시에라 마드레함을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좌초시킨 뒤 병력을 상주시켜 전초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불법 점거'로 규정하며 철거를 요구하지만 필리핀은 암초가 자국 EEZ 안에 있다며 병력에 식량과 물 등을 공급해 27년째 주둔을 이어가고 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문제를 국제중재 절차에 회부해 2016년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로부터 중국의 남해구단선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받아내기도 했다.
반면 중국은 판정 직후부터 '불법이고 무효'라고 규정하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필리핀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뿐 아니라 일본·호주·캐나다 등과의 안보 협력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2024년 일본과 병력의 상호 파견과 합동훈련을 원활하게 하는 상호접근협정(RAA)을 체결했고 뉴질랜드·캐나다와도 비슷한 성격의 협정을 잇달아 추진하거나 체결하며 대중국 견제망을 넓혀왔다.
지난 4∼5월 실시된 발리카탄 연합훈련에는 미국과 필리핀을 비롯해 일본·호주·캐나다·프랑스 등 여러 국가 병력 약 1만7천명이 참가했고 미군의 장거리 미사일 체계도 동원됐다.
이에 중국군도 스카버러 암초 주변 전투대비 순찰과 루손섬 인근 해·공군 훈련으로 맞섰다.



◇ 암초 갈등이 미중 군사 충돌 '불씨'될라
양국 대치가 주목받는 것은 남중국해 작은 암초에서의 갈등이 미중 간 군사 충돌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필리핀은 1951년 상호방위조약으로 묶여 있으며 미국은 남중국해를 포함한 태평양에서 필리핀 군과 공공 선박·항공기가 무력 공격을 받으면 조약이 적용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해왔다.
미국은 지난달 세컨드 토머스 암초 충돌 이후에도 중국의 행동을 비판하며 필리핀에 대한 방위 공약을 재확인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도 스카버러 암초에서 중국 해경의 물대포 사용 이후 중국의 행동을 우려하면서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방위 약속을 강조했다.
반대로 중국은 미국이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이 아니면서 필리핀을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고 역외 세력을 끌어들여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양국의 책임 공방은 외교 무대로도 번졌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테레사 라자로 필리핀 외교장관은 지난달 마닐라에서 만나 남중국해 충돌을 놓고 서로 강하게 항의했다.
라자로 장관은 중국의 "용납할 수 없는 행동"에 항의했다고 밝혔고 중국은 필리핀 측이 중국 법집행 선박을 난폭하게 들이받았다고 맞섰다.
다만 양측은 충돌 방지를 위한 소통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전력 운용도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서태평양에 배치됐던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함이 중동으로 이동하면서 서태평양에는 미 항모가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중국 억지력을 담당하던 미군의 전력 이동 속에서 중국과 필리핀이 잇따라 충돌하면서 상대방의 의도를 오판하거나 현장의 충돌로 인명 피해가 커질 경우 상황이 통제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jkh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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