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3국 무역·산업지원·프랑스어 콘텐츠까지 문제 삼아
키스톤XL 재개 카드도 무산…러트닉 강경론에 USTR 내부서도 불만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최근 미국과 캐나다의 무역 협상이 전격 결렬된 데에는 자동차와 철강 관세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대외 무역 정책과 프랑스어 보호정책 등 '주권'과 관련된 사안까지 얽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달 가까이 이어진 협상에서 양국은 한때 타결에 가까워진 듯했지만, 막판 미국이 캐나다의 제3국 무역과 국내 산업정책 등에 대한 요구를 내놓으면서 협상은 결국 무산됐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양국 당국자와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 지난 21일 밤 협상이 결렬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전하면서 양국의 '레드라인'이 애초부터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양국 협상단은 백악관 인근에서 합의문 초안을 계속 수정했지만, 캐나다 측에선 이미 정리된 것으로 여겼던 쟁점들이 막판에 다시 등장했다.
◇ 美 '북미 공동관세' 요구…캐나다는 주권 침해로 인식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는 당초 미국과의 협상에서 양국을 낮은 관세로 묶고 역외 국가에는 공동의 관세 정책을 적용하는 '북미 요새'(Fortress North America)를 구상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캐나다가 다른 국가와 무역협정을 체결할 때 미국의 통상정책과 보조를 맞추도록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철강의 경우 미국이 제3국에 대한 관세를 올리면 캐나다도 같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미국으로서는 제3국산 저가 철강이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캐나다에는 자국의 통상정책에 미국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요구였다.
이는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중남미 등으로 교역을 다변화하려는 카니 총리의 정책과도 충돌했다.
미국은 이와 함께 캐나다가 지난해부터 미국의 관세 피해를 본 자국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한 '캐나다산 구매' 정책을 축소할 것을 요구했다.
캐나다는 미국에 합의사항을 갑자기 파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요구했지만, 미국은 관세 정책 변경 권한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 '공용어' 프랑스어로 된 콘텐츠도 협상 테이블에
캐나다의 프랑스어와 문화 보호 정책도 문제가 됐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는 캐나다에서 프랑스어 보호는 특히 퀘벡주의 정체성과도 맞닿은 문제다.
캐나다는 협상 과정에서 프랑스어 프로그램 보호 등 온라인 콘텐츠 규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미국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캐나다산 영화·프로그램, 특히 프랑스어 콘텐츠를 더 눈에 띄게 배치하는 규정 등을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으로선 플랫폼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로 여겼지만, 캐나다에는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보호할 정책 결정권의 문제였다.

◇ '키스톤 XL 송유관' 카드도 무산
캐나다가 미국에 제시할 수 있는 주요 양보 카드였던 키스톤 XL 송유관 사업 재개도 협상 막판에 사라졌다.
키스톤 XL은 캐나다산 원유를 미국으로 수송하기 위한 대형 송유관 사업으로, 2021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사업 허가를 취소하면서 중단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 사업의 재개를 오랫동안 요구해왔다.
이를 부활하자는 것은 카니 총리의 아이디어로, 그는 이번 협상에서 적절한 관세 합의가 이뤄진다면 캐나다 측이 사업 재개에 협력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지만, 협상 막판 캐나다는 이 제안을 거둬들였다.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양보를 전제로 할 경우 송유관 사업을 재개할 경제적 타당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 자동차·철강 관세에 美 내부 이견도
자동차와 철강 관세도 협상을 무너뜨린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미국은 캐나다산 자동차와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캐나다는 자동차 관세 하한을 더 낮추고 철강·알루미늄을 사용해 만든 제품에도 더 유리한 조건을 요구했다.
특히 미국이 중·대형 트럭을 관세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려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미국 시장용 대형 픽업트럭이 생산되고 있어 캐나다 자동차 산업에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더 강경한 조건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흔들린 것은 앞서 미 언론 보도들로 알려진 내용이다.
NYT에 따르면 러트닉 장관의 개입은 그동안 캐나다와 협상을 진행해온 미국 무역대표부(USTR) 안에서도 좌절감을 불러왔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러트닉 장관의 요구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캐나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카니 총리는 협상 시한을 1시간 30분 앞둔 밤 10시 30분 협상단에 철수를 지시했다.
이후 미국은 22일부터 약 200억달러 규모의 캐나다산 제품에 관세 50%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월 1일부터 자동차와 트럭, 자동차 부품, 철강 관세를 50%로 인상한다고 예고했다.
이에 맞서 이날 캐나다도 9월 8일부터 약 2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약 700개 품목에 15%, 25%, 5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며 양국 갈등은 계속해서 고조되고 있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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