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현장] 빙하 녹은 알프스 '빙하스키장'…자갈밭에 리프트만 덩그러니

입력 2026-09-17 07:01  

[기후재난 현장] 빙하 녹은 알프스 '빙하스키장'…자갈밭에 리프트만 덩그러니

[기후재난 현장] 빙하 녹은 알프스 '빙하스키장'…자갈밭에 리프트만 덩그러니
'365일 스키장' 옛말 된 힌터툭스…"40년새 빙하 60% 이상 사라졌다"
최고 16도에 '눈 안 내린' 여름, 녹아버린 빙하는 물웅덩이 이뤘다
3천m 꼭대기 빙하도 보호천막 덮고 인공눈 뿌려…"아무도 안 믿었을 것"
빙하 위에 지었는데…13년 만에 자갈언덕으로 바뀐 스키장 휴양시설

[※ 편집자 주 = 최근 중국·네팔 접경지대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산악지대 대홍수가 발생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대규모 빙하가 붕괴하면서 홍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빙하 붕괴뿐 아니라 가뭄, 폭염, 엘리뇨 등 기후재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2022년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시리즈에 이어 이상 기후 충격이 현실화한 현장을 다시 찾는 기획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3주 동안 르포 5편 등이 게재됩니다.]



(힌터툭스[오스트리아]=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가랑눈은 땅에 닿기 전에 녹아 사라졌다. 지난 10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오스트리아 티롤주 힌터툭스 빙하 해발고도 2천650m 지점에서 수은주가 가리킨 곳은 영상 1도 눈금. 전날 밤새 내린 눈이 아침 일찍부터 반짝이며 녹아내리기에 충분한 온도였다. 그러자 빙하에 눌리고 깎여 뾰족해진 자갈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빠르게 사라지는 동안 빙하 녹은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며 쏟아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곳은 약 60년 전 해발 3천250m 꼭대기부터 빙하 위를 따라 조성했다는 여름철 스키 슬로프가 끝나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날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빙하라고는 햇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덮어놓은 흰 천막 사이로 살짝 비친 얼음덩어리가 전부였다. 전날 밤 내려 쌓인 눈은 스키는커녕 눈싸움을 하기에도 부족해 보였다. 스키어는 없었고 겨울 시즌을 준비하는 노동자들만 바쁘게 움직였다.


공사차량 운전기사 아드리안이 얼음덩어리 위에 올라가 방수포를 걷어내는 동료들을 쳐다보며 기자에게 말했다. "전체 빙하의 3분의 1을 덮어놓았어요. 그래야 눈과 얼음을 골고루 펼쳐 가을에 스키를 탈 수 있으니까요. 천을 덮으면 그냥 녹아버릴 눈의 80% 정도를 살릴 수 있어요. 눈이 얼음으로 변하는 데 3년에서 5년 정도 걸려요. 다음 해에 다시 얼음이 만들어지려면 여름에 얼음이나 눈이 남아있어야 해요."
힌터툭스는 원래 한여름에도 빙하 위에서 스키를 타는 '365일 스키장'으로 유명했다. 2000년대 들어 알프스 여름스키장이 하나둘 사라지는 와중에도 끝까지 여름 시즌을 운영했다. 많게는 하루 5천∼6천명이 스키를 즐겼다. 노르웨이부터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수십 개 나라 국가대표 스키 선수들도 이곳을 찾아 하계 훈련을 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1년 365일 쉬는 날이 없었던 힌터툭스 빙하스키장은 2023년 여름, 처음으로 며칠간 문을 닫았다. 여름 운영 기간은 점점 더 줄어들다가, 올해는 7월에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했다. 과거 길게는 2㎞에 달했던 여름철 슬로프도 몇 년 전부터 수백m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알프스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던 이탈리아 북부 쥐트티롤(남티롤)의 스텔비오 고개 스키장 역시 지난달 15일 영업을 중단했다. 유럽에 역대급 폭염이 덮친 올해 여름은 이로써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알프스 여름스키장이 전부 문을 닫은 해로 기록됐다. 가을 재개장도 갈수록 밀리는 추세다. 아드리안은 "여기서 방수포 작업을 시작한 지 12년쯤 됐다. 올해는 10월 초에나 스키를 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름스키 슬로프의 끝자락이었던 2천650m 지점에는 대피소를 허물고 새로 지은 휴양시설이 들어서 있다. 2013년 9월 공사 당시 찍은 기록 사진에는 건물 주변이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불과 13년이 지난 지금은 빙하가 다 녹으면서 드러난 자갈 언덕뿐이다.
스키 대여점은 문을 닫았고 식당 안에서는 슬로프를 정비하는 노동자 몇 명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식당 직원은 "손님이 없어 슈바인스학세(독일식 돼지족발) 같은 메뉴는 팔지 않는다. 아펠슈트루델(오스트리아 전통 사과파이)과 커피는 물론 드실 수 있다"고 안내했다.

전날 밤 내린 눈은 석 달 만이었다. 스키 강사이자 칠러탈 자연공원 가이드로 일하는 헤르베르트 그로슬(60)은 핸드폰을 꺼내 올해 6월9일 찍어뒀다는 사진을 보여줬다. 참새 한 마리가 난간에 쌓인 눈에 몸을 절반쯤 파묻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0년쯤 전만 해도 이곳에는 매년 여름 네댓 번 눈이 내렸다. 빙하 위에 깨끗한 눈이 쌓이면 빛을 반사해 여름에도 빙하가 덜 녹도록 돕는다. 거의 눈이 내리지 않은 이번 여름은 불행히도 빙하를 지켜줄 보호막이 없었던 셈이다.
힌터툭스 빙하 꼭대기는 과거 여름 기온이 높아 봐야 3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올여름에는 최고 16도까지 올랐고 9월 들어서도 한동안 10도 가까이를 유지했다. 눈과 얼음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그로슬은 "1850년쯤부터 빙하가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최근 40년 사이에는 약 60∼65%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해발 3천m 가까이 올라가자 그제야 빙하라고 부를 만한 얼음덩어리가 보였다. 눈도 제법 수북이 쌓였다. 그러나 여름 동안 녹은 빙하는 다시 얼지 못한 채 웅덩이를 이뤘다. 얼음덩어리 위로 몇 달째 멈춰 선 리프트만이 이곳이 원래 스키장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빙하 보호 천막은 해발 3천m 지점에도 덮여 있고, 곳곳에 등대처럼 인공눈 살포기가 솟아 있었다. 눈과 얼음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10년 전부터 새로 설치한 기계들이다. 이른바 만년설의 기준점이 해마다 높아지다 보니 이제 해발 3천m 알프스에도 빙하에 천을 덮고 인공눈을 뿌려야 한다.


"40년 전에 여기서 이런 작업을 할 거라고 말했다면 아무도 안 믿었을 겁니다. 방수포를 덮고 인공눈을 뿌리고 눈을 평평하게 만드는 데 매년 200만유로(약 31억원)가 들어요. 그래야 10월에 스키장을 다시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해마다 공사가 복잡해지고 있어요. 그런데 꼭 10월에 스키를 타야 할까요. 제 생각엔 몇 년 뒤에는 가을에도 스키를 탈 수 없게 될 거고 언젠가 이 작업도 끝날 겁니다. 인간이 어쩌겠어요. 이게 자연입니다."
이 고장에서 평생 살며 힌터툭스 빙하와 여름스키장의 흥망을 지켜본 그로슬은 어린 시절부터 마을을 덮친 크고 작은 산사태와 홍수, 낙석 사고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줄어드는 빙하를 절감하는 건 2천500m 넘게 올라가 풀을 뜯는 소들을 발견할 때라고 했다. 기온이 오르면서 풀도 예전보다 더 높은 곳까지 자란다. 해발 1천500∼2천m 사이에 자리 잡은 농가들은 옛날엔 빙하가 마을까지 밀고 내려올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알프스 산자락 마이로펜 기차역과 해발 1천500m 힌터툭스 마을을 잇는 도로 양옆으로는 겨울용품 판매점이 절반, 숙박업소가 나머지 반이었다. 지역 경제는 빙하 구경과 스키 같은 관광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40년째 이곳 호텔에서 일하는 엘케(62)는 순전히 호텔 입장에서만 보면 온난화가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했다. "옛날에는 여름 스키가 굉장했죠. 그런데 요즘은 스키가 아니라 더위를 피하려고 와요. 올해는 정말 많았어요. 여기도 30도까지 올랐지만요."
마을에서 기차역까지 내려가는 4104번 버스는 오후 들어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서둘러 하산한 등산객들로 만석이었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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