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동맹 평시 협력·안보리 결의 아니면 제재 금지' 방안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중립국 스위스에서 군사·방위 동맹과의 협력이나 국제사회의 독자 제재 동참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중립성 강화'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27일(현지시간) AF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스위스에서 치러진 '중립성 강화'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29.85%, 반대가 70.15%였다. 투표율은 47.06%였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외무장관은 개표 결과 발표 후 취재진에게 "이번 결과는 중립성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스위스는 어제도 중립적이었고 오늘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국민투표는 영구적이고 군사적인 중립성을 헌법에 명시, 상황에 따라 중립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행할 수 있는 정부의 권한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없는 한 무력분쟁 등을 이유로 스위스 정부가 독자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이 전면 금지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같은 군사·방위동맹과의 협력도 스위스가 직접 공격받는 상황에서만 허용될 수 있었다.
스위스는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직후부터 국제적인 중립국으로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헌법상 정부가 이 중립성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동안 역대 스위스 정부는 국제 정세에 맞춰 중립성을 유연하게 해석해 왔다. 나토나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으면서도, 나토의 평화 파트너십이나 국제 평화유지 임무에는 제한적으로 참여하는 식이다.
중립성 강화에 찬성하는 우익 스위스국민당(SVP)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한 스위스의 대러시아 제재 동참으로 전통적인 중립적 위치가 흔들려 왔다고 주장한다. 찬성 진영은 '전쟁 반대, 중립 찬성'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스위스 정부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EU가 발표한 20차례의 대러시아 제재 패키지를 대부분 채택했다. 이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당시 제재에 불참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로,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스위스가 우크라이나 편에 서며 중립 원칙을 저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스위스 연방정부와 대다수 정당은 이번 헌법 개정안에 강력히 반대해 왔다.
카시스 장관은 최근 TV 토론에서 "중립성은 항상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가지고 적용돼 왔다"며 "중립성은 무관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출구조사 이후 녹색당의 시벨 아르슬랑 의원은 "유권자들이 SVP가 원하는 것을 알아챈 것"이라며 "스위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국제법이 짓밟히는 상황에서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투표 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반대가 우세했다. 공영방송 SRG와 GFS 베른의 여론조사에선 찬성이 34%, 반대가 63%였다.
파비오 바세르팔렌 베른대 유럽정치학 교수는 로이터 통신에 "스위스 유권자들은 중립성을 좋아하지만, 현재 정부가 중립성을 이행하는 방식에도 찬성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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