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출가가 영어로 제작…"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이해 넓어졌으면"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위안부 피해 사실을 일본에서 최초로 공개한 배봉기(1914∼1991) 할머니의 이야기가 일본의 전통극 '노(能)'로 만들어져 일본에서 상연된다.
29일 시어터 노가구에 따르면 위안군 피해자 배봉기 할머니의 이야기를 일본 가면극 '노'로 연출한 '배봉기'가 다음 달 3일 도쿄도 나카노구 우메와카노가쿠가쿠인회관(會館)에서 공연된다.
배봉기 할머니는 1975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논픽션 작가 가와타 후미코 씨의 책 '빨간 기와집'(1987)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남쪽의 섬에 가면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탔다가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 위안소로 끌려가 종전까지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키나와를 전전했다.
배봉기 할머니의 비극을 '노'로 만든 연출가는 일본에 거주 중인 미국인 게리 매튜(73)다.
지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증언집과 관련 서적을 읽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생 이야기와 내면의 강인함을 노로 만들기로 한 그는 5년에 걸쳐 대본을 썼다.
책 '빨간 기와집'을 베이스로 한 이 연극은 영어 대사로 공연된다. 유령이 된 배봉기 할머니는 과거를 후회하며 위령하겠다며 오키나와를 찾아온 전(前) 일본군 병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은 전 일본군 병사는 그저 위령하는 것보다는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리 매튜는 유튜브에 올린 이 작품의 홍보 영상에서 "배봉기 씨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면서 그녀가 지내온 삶을 이해했고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연극을 본) 많은 사람의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매튜 씨는 대학 시절 세계 무대예술을 공부하면서 '노'를 알게 됐다. 대학교수로 일한 그는 인간의 감정을 몸속 깊은 곳까지 표현해 관객의 상상력을 북돋우는 '노'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이 신문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작품에 표현했다"며 "감상을 통해 타자가 경험한 아픔과 심정의 깊이를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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