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밀 제조업·소부장 강점 바탕, 소리 없이 경쟁력 키우는 日 로봇산업
엔비디아 칩·플랫폼 활용 양팔 로봇이 생명과학 연구…"사람없는 실험실 목표"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이도연 특파원 = 최근 중국과 미국은 경쟁적으로 로봇 관련 첨단 기술의 화려한 발전상을 과시하고 있다.
로봇끼리 격투기를 벌이고 마라톤을 소화하는가 하면 공중제비도 거뜬히 해낸다.
휴머노이드의 원조격 '아시모'가 태어난 나라 일본 로봇 산업의 분위기는 미중과 비교하면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요란하게 드러내놓지 않고 '초정밀 로봇 구동'이라는 경쟁력을 갈고닦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일본 도쿄과학대가 초정밀 작업이 필요한 생명공학 연구에 로봇을 활용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도쿄과학대는 일본 로봇 공학의 개척자이자 로봇이 인간과 유사해질 때 사람들이 느끼는 거부감을 설명한 '불쾌한 골짜기' 개념을 고안한 모리 마사히로 명예교수가 재직했던 일본 로봇 기술의 메카다.
이 대학은 도쿄 유시마 캠퍼스에 세운 '로봇 미래창조센터'를 중심으로 양팔 로봇 10대가 생명공학 실험과 연구를 수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로봇을 활용한 실험실 자동화(LA·Laboratory Automation)로는 세계 최대급 규모라고 한다.
생명과학 연구 로봇 '마호로'는 도쿄과학대와 20년 가까이 로봇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일본의 로봇 제조업체 야스카와전기가 제작했다.
로봇의 두뇌로는 도쿄과학대와 야스카와전기가 일본 정부 지원을 받아 개발한 인공지능(AI)을 탑재했다. 범용 AI 모델에 생명공학 연구 특화 학습을 시킨 모델이다.
양팔 로봇 10대 중 7대는 직접 연구를 수행하는 '몸통'이라면 3대는 로봇 연구의 로직을 개발하는 '두뇌' 역할을 분담한다.
도쿄과학대 로봇 미래창조센터를 총괄하는 간다 겐키 교수는 원래 이화학연구소(RIKEN)에서 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였다고 4일 밝혔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연구를 수행하기 벅차다는 생각이 들자 로봇을 활용한 실험과 연구 분야에 뛰어들게 됐다고 했다.
간다 교수는 "로봇을 사용하면 실험 재현성이 매우 높아진다. 사람이 하면 5% 정도의 성공률을 보인다면 로봇은 24시간 잠을 자지도, 쉬지도 않으면서 성공률이 거의 100%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센터 실험실에서 실험용 검체 위로 부지런히 양팔을 움직이는 마호로는 인체에서 채취한 단백질 극미량의 성분을 분석하는 중이라고 간다 교수는 설명했다.
로봇으로 DNA 분석과 유전자 증폭(PCR) 검사, 세포 배양 등 생명과학 연구에 필요한 대부분의 실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간다 교수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세포)에서 망막 세포로 분화를 유도하는 과정을 40일간 수행하는데 AI가 실험 방식을 제안하면 로봇이 배양을 진행한 뒤 AI가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실험 정확도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로봇은 유리 벽 속에 갇혀 있었는데 사람이 주변에서 제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간다 교수는 "사람이 있더라도 로봇이 사람을 피해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다. 이제 사람이 로봇의 연구에 오히려 방해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사람 연구자는 아이디어만 내고 연구 실행은 로봇이 모두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체계가 목표"라고 덧붙였다.
그는 센터에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생명과학용 AI 플랫폼 바이오니모(BioNeMo)를 쓴 첨단 연구용 AI 모델을 추가로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과학대는 AI와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차세대 연구·실험 자동화 기술을 고도화하는 한편 이를 활용한 신약·백신 개발, 암 연구, 인공장기 개발 등 바이오 분야의 지평을 넓힐 계획이다.
마호로를 개발한 야스카와전기의 자회사 '로보틱 바이올로지 인스티튜트(RBI)'는 센터와 같은 층에 입주해 연구진과 손발을 맞추면서 로봇의 정밀도를 높이고 실험과 연구에 최적화된 환경을 찾고 있다고 했다.
로보틱 바이올로지 인스티튜트의 야마구치 사카에 리더는 센터에서 쓰이는 양팔 로봇의 사양이 산업용과 동일하다며 0.1㎜의 오차만 허용하는 정밀도를 갖췄다고 소개했다.
야마구치 리더는 중국 로봇 발전 수준과 일본과의 비교를 묻는 말에 "중국 제조사들이 실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로봇 작업의 정밀도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일본의 경쟁력이 여전히 강력하고, 일본은 이를 기반으로 피지컬 AI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정밀 기계·부품 제조사인 미네베아미쓰미는 최근 도쿄에서 열린 첨단 기술 전시회에서 '로봇 손'을 전시하며 시선을 끌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미래를 초정밀 부품으로 지탱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이 회사의 로봇 손은 손가락 굵기와 관절의 구조가 사람의 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형을 갖췄다.
사람이 앞에서 손을 움직이면 모션 캡처 센서로 움직임을 읽은 로봇 손가락이 똑같이 따라 했다.
전시회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는 "빠르고 기민하게 움직이면서도 강하게 쥐는 힘을 구현했으며 깨지기 쉬운 부드러운 물건부터 단단한 물체까지 감싸 쥘 수 있는 제어력에 저전력으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의 휴머노이드는 사람처럼 달리거나 물건을 들거나 하는 특징을 내세우나 관건은 얼마나 부드럽고 조용하게 움직이느냐에 있다"며 "결국 그런 부분에서는 일본제 부품이 가격이 비싸더라도 강점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로봇 부품을 일본 국내뿐 아니라 중국, 한국 로봇업계에 납품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물류 로봇 유니콘 기업인 덱스터리티도 최근 로봇을 양산하기 위해 미세한 힘 제어가 가능한 기술을 일본 가와사키 중공업과 협업한다고 발표하는 등 미국의 첨단 피지컬 AI 기술 역시 일본 하드웨어 업계의 기술력을 요구하고 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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