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월 847억달러로 2024년 훌쩍 넘어 1천억달러 돌파 확실시
트럼프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 투자 압박에 정부 '진퇴양난'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우리나라의 올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사상 처음으로 1천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여느 때라면 반가운 소식이겠지만 '트럼프 시대'에는 사정이 다르다.
자칫 통상 보복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 투자를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상황과 맞물려 통상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18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847억달러를 기록했다. 불과 3분기 만에 종전 연간 역대 최대 흑자였던 2024년의 556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179억 달러였던 대미 흑자는 2018년 139억 달러, 2019년 114억 달러, 2020년 166억 달러로 완만한 흐름을 보였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가파르게 늘었다.
2021년 227억 달러, 2022년 280억 달러에 이어 2023년에는 444억 달러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556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지난해 495억 달러로 소폭 줄었지만 올해 들어선 인공지능(AI) 특수에 따른 반도체 수출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사상 첫 1천억 달러를 돌파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흑자 확대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통상 압박의 명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에 불만을 품고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예고했다가 그해 7월 한국이 3천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자 관세를 15%로 낮췄다.
미국은 자동차·부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도 지난해 11월 1일로 소급해 25%에서 15%로 하향조정했다.
이후 한미 양국은 10개월 넘게 이어진 협상 끝에 지난 1일 대미 전략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3천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가운데 조선업에 배정된 1천500억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2천억 달러 규모 전략투자 부문을 구체화한 것이다.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1호 프로젝트로 확정했고,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 사업을 2호 프로젝트로 추진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다.
쟁점은 남은 3호 프로젝트인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이다. 양국이 공개한 공동 팩트시트(설명자료)에는 검토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명시돼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연일 이 사업을 거론하며 한국의 투자를 기정사실처럼 못 박고 있다.
정부로서는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원칙에 따라 사업 참여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지만 미국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알래스카 투자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할 경우 관세 보복을 당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우리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안 처리 지연을 문제 삼아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위협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미 투역흑자는 정부의 협상 여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한국보다 2천억달러 더 많은 5천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일본의 올해 상반기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전년 동기 대비 23.4%가량 감소한 점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전문가들은 대미 무역흑자 급증이 국내 수출 기업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미국의 수요 요인에 기인한 측면이 큰 만큼 이를 토대로 방어 논리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상 전문가는 "대미 무역흑자가 급증한 것은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와 인프라 투자 확대로 반도체·전력기기·철강·건설기계 등에 대한 미국 측 수요 요인이 이례적으로 컸기 때문"이라며 "자동차 등 전통 주력 품목은 부진한 상황이고 데이터센터 투자 등이 둔화하면 흑자 폭도 줄어들 수 있는 만큼 통상 당국이 이를 바탕으로 정교한 방어 논리를 펴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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