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수에 높은 성장세…인플레 우려도 여전
환율 안정·소비 부진은 속도 조절 요인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채새롬 이도흔 기자 =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가운데 한국은행이 다음 달 또다시 '선제' 금리 인상을 단행할지 관심이 쏠린다.
최근 한국 경제는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 호조에 힘입어 기존 전망을 훌쩍 뛰어넘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 연준의 동결과 별개로 국내 경제 여건에 맞춘 추가 긴축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중동 사태 장기화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세와 대출 증가 등도 한은의 통화 긴축 기조를 지지하는 변수로 꼽힌다.
◇ 美 금리 인상 한 달 만에 동결…물가 불안에 추가 긴축 여지
미 연준은 27∼28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3.75∼4.00%로 유지했다.
올해 들어 다섯 차례 연속 동결한 뒤 지난달 3년 2개월 만에 금리를 올렸지만, 이번에는 인상 효과를 점검하며 속도를 조절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준은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고용도 안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상황에 따라 대응할 의지가 있음을 거듭 밝히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번 동결은 미국 중간선거를 엿새 앞두고 이뤄졌지만, 워시 의장은 "정치는 이번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 관심은 올해 마지막인 12월 8∼9일 FOMC 회의로 모일 전망이다.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경우 연준이 다시 긴축에 나설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연 3.00%)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상단 기준 1.00%포인트(p)로 유지됐다.
◇ '호미질의 결실' 강조한 한은…추가 인상 여지는 유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미 연준이 9월 기준금리를 인상하기에 앞서 7·8월 연속 금리 인상으로 선제 대응에 나섰다.
이와 관련, 신현송 한은 총재는 이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7·8월 연속으로 금리를 인상해 국내 경제 여건에 맞는 정책을 펼 수 있는 운신의 폭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당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과 관련해선 "호미질 뒤의 결실"이라며 연준에 앞선 대응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8월 인상 때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았다"며 한발 빠른 대응의 당위성을 강조한 연장선이었다.
신 총재는 앞서 1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다른 주요국보다 금리 인상 기조를 일찍 잡아 시간을 벌고 비용을 아꼈다"고 언급했다.
덕분에 시장금리도 비교적 안정화한 것으로 자평했다.
금통위는 22일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선제적 대응을 통해 물가 오름세의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다만, 물가·경기 흐름과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의 시기와 속도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은 유지했다.
앞선 인상으로 추가 지표를 확인할 시간을 벌었지만, 긴축 기조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박종우 전 한은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는 26일 이임사에서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전망해 대응하고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해야 할 상황이 많을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 반도체가 끌어올린 성장률…11월 인상 전망도 힘 받아
한은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성장세는 추가 인상 전망에 한층 힘을 실었다.
다음 달 수정 경제전망에서 성장과 물가 전망을 얼마나 높일지가 추가 긴축의 시기와 강도를 가를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한은은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1.0%로 집계됐다고 27일 밝혔다. 8월 제시한 전망치(0.3%)를 크게 웃도는 수치였다.
특히 3분기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작년 3분기보다 18.8% 늘어 1977년 4분기(19.0%) 이후 48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한은은 더 나아가 4분기 성장률이 0.0%에 그치더라도 산술적으로 연간 성장률이 3.6%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4분기 성장률이 1.4% 이상이면 연간 4%대 성장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가파른 성장세를 뒷받침하는 것은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기존 전망치인 4천500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최근 예상했다. 작년의 4배에 가까운 이례적 증가세다.
이와 관련,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27일 보고서에서 "견조한 3분기 GDP 지표는 한은의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은이 올해 11월과 내년 2월 기준금리를 각각 0.25%p 인상해 최종금리가 연 3.50%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유지했다.

◇ 근원물가 높은 오름세…환율 안정·소비 부진은 인상 제약
물가는 추가 긴축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지목된다.
9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동월보다 2.9% 상승해 목표 수준인 2%를 웃돌았다.
특히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2.8% 상승했다. 기조적인 물가 오름세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의미다.
한은은 내년 근원물가 상승률이 8월 전망치인 2.5%를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누적된 비용 상승분이 가격에 반영되는 가운데 소득 여건 개선에 따른 수요 압력도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환율이 최근 들어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는 점은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여지를 주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원화 강세가 수입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해 물가 안정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소비가 부진한 점도 추가 인상의 부담 요인이다.
3분기 민간소비는 재화와 서비스 소비가 모두 줄면서 전 분기보다 0.2% 감소했다. 2022년 4분기 이후 3년 9개월 만의 감소로, 수출·설비투자와 소비가 엇갈린 흐름을 보였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온기가 가계 소득과 소비 등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는 속도가 향후 금리 인상의 폭과 기간을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27일 보고서에서 "한은이 올해 11월과 내년 2월에 0.25%p씩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소비 부진이 올해 4분기 이후까지 이어진다면 금리 인상 사이클을 조기 종료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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