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 1박2일…이리오너라! 아이의 호통에 마당쇠가 된 아빠

입력 2013-12-02 06:58  

국내 여행

충북 보은 선병국 가옥

국내 세 곳의 99칸 집 중 하나
연면적 1만3200㎡ 최대 한옥
속리산 삼가천 '육지 속 섬' 형상

궁궐 같은 집…주인은 농부
증조부 유훈 따라 고시원 운영

대추따기 등 농산물 체험 가능
고추장 만들기는 색다른 재미



[ 안석훈 기자 ] 속세를 떠나왔다 뜻의 속리(俗離). 그 속리산 언저리에 옛집이 하나 있다. 하천의 섬 안에 오롯이 세월을 비껴 앉은 고택. 담쟁이 넝쿨이 덮여 있는 담장은 그 끝이 어딘지 모르게 이어져 있고 초겨울, 흙돌담 둘레길에는 가죽나무 낙엽이 세월처럼 쌓여 있다. 닳아빠진 중문의 문턱을 넘어서면 시간은 뒤로 가고, 두고온 현실세계가 아득한 즈음 여행자는 속리된 어느 곳에 멈춰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한옥

강릉 선교장, 경북 청송의 송소고택과 더불어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에 있는 ‘선병국 가옥’은 국내에 남아 있는 세 곳의 99칸 집 가운데 하나다. 그중 선병국 가옥은 규모 면에서 단연 압권이다. 건물이 앉은 면적만 해도 1만3200㎡.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터가 9만9000㎡에 이른다. 조선시대의 민간 가옥은 99칸으로 제한돼 있었다. 숫자상으로도 꽉 찬 100칸이라 하면 궁궐이 되기 때문에 이는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 해서 한 칸 빠진 99칸이 민간 가옥의 한계였다.

하지만 선병국 가옥은 134칸이다. 칸은 치수다. 방의 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만도 99칸을 훨씬 뛰어넘어 110칸에 이른다. 한 칸이 대략 4.95㎡ 정도이니 건물 면적만 660㎡이 넘는다. 왕정이 쇠락해가던 1900년대 초반 세워진 개화기의 한옥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선병국 가옥은 속리산에서 흘러내리는 삼가천의 물줄기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육지 속 섬’의 형상이다. 연꽃이 물에 뜬 모양인 이와 같은 지형을 풍수지리에서는 명당이라 일컫는다. 선병국 가옥에 들어서기 위해 다리를 건너면 천변에 홍수가 있었음을 알리는 비석이 있다. 세운 지 몇 년 되지 않은 비석이다. 그런데 홍수를 겪었다는 내용의 비석을 굳이 왜 세웠을까.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선병국 가옥 주위로 갈라져 흐르는 하천 중 동쪽의 물길을 막아 농토로 개간했다. 섬이었던 선병국 가옥은 육지가 되어 버렸다.

하천을 곧게 하는 직강(直江) 공사로 결국 선병국 가옥은 1980년과 1998년 홍수 피해를 입었다. 이에 현재의 주인인 선민혁 씨는 지역 주민의 동의를 구해 하천을 다시 원 상태로 복원했고 이후로는 홍수 피해를 입지 않고 있다. 애초 섬에 집터를 정하라고 했던 지관의 뜻에 따라 이곳을 집터로 정했던 풍수지리를 한때나마 거스른 것에 대한 재앙인가. 생각해 보면 신묘한 일이다. 홍수를 경계하던 비에도 다 사연이 있음이다.

농부가 살고 있는 집의 편안함

선병국 가옥은 문화재다. 하지만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당연히 출입도 통제하지 않으므로 입구에서 쭈뼛거리지 않아도 된다. 규모를 보자면 도대체 이런 집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 집은 여느 가정집과 다름 없다. 후손들은 대를 이어 이 거대한 저택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궁궐 같은 이 집 주인은 뜻밖에도 농부다. 주 소득원은 당연히 농업이다. 벼농사만 6만6000㎡쯤 짓는다. 그래서일까. 잘 정제된 고택에 머무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엄청난 규모에도 마음 한 쪽이 짓눌리지 않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배어나는 사람 냄새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주인 식구뿐만이 아니다. 본채 맞은편, 간혹 트레이닝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문을 밀고 나오는 행랑채는 고시원이다.

요즘 도시의 고시원은 직장인들이 거주하는 값싼 주거시설의 한 형태로 거의 자리잡은 지경이다. ‘고시텔’로도 불리는 고시원은 공부하는 장소라는 애초의 뜻과는 한참 멀어졌다. 그렇지만 속세를 떠난다는 그 이름 때문일까. 속리산 자락에는 아직 종래의 고시원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선병국 가옥 역시 고시원이다. 말 그대로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오리지널 고시원이 바로 관선정(觀善亭)이다.

선민혁 씨의 증조부인 선영홍 공은 전남 고흥에서 대흥사라는 서숙(書塾)을 설치해 각지의 인재를 모아 무료로 교육 및 시설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 아들 역시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일제 강점 이후 전남 고흥에서 이곳 보은으로 이주해 대저택을 신축하고 저택 동편에 관선정을 만들고, 보은 향교 명륜당에도 서숙을 설치해 후학을 양성했다. 당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였던 셈이다. ‘위선최락(僞善最樂·선행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는다는 뜻)’이라고 쓰인 본채 현판이 그 실천 이념이었던 것이다. 늘 공부하는 사람이 머물게 하라는 유지는 계속 받들어져 지금은 행랑채를 이용해 고시생을 받고 있다. 그 옛날처럼 무상까지는 아니지만 비용은 매우 싸다.

정적인 체험은 고택체험의 기본

고택에서 머문다는 것은 어찌 보면 현대인에게는 불편함 투성이다. 침대가 아닌 잠자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외부에 떨어져 있는 화장실에라도 가려면 전등을 들고 가야 한다. 샤워시설 역시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고택에서 느끼는 것은 고즈넉함, 향수, 추억 같은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느낌의 귀속점은 편안함이다. 그래서 고택체험은 ‘툇마루에 앉아보기’와 같은 무형적인 체험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정적인 체험을 통해 마음의 정화나 선인들과의 교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칫 그저 불편한 숙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좀 더 생동감 있는 체험으로 바꿔보자. 고택체험은 과거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그곳에 서려 있는 이야기는 모두 역사이며 공간 마디마디가 모두 인문학이다. 그래서 그 무형의 체험이 가장 실속 있는 체험이 될 수 있다.

솟을대문 앞에서 아이가 ‘이리오너라!’ 외치면 아빠는 빼꼼히 내다보며 마당쇠 노릇도 해볼 일이다. 아파트에만 살아서 다락이 뭔지 모르는 아이에게는 다락을 열어보는 것만으로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등자쇠에 걸린 분합문은 도대체 왜 저런 식으로 만들어졌나 물어보자.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으리라. 대청마루에 앉아서는 대들보를 보고 양상군자 얘기도 재미나게 들려줄 일이다.

선병국 가옥은 벼농사 외에도 대추농사를 크게 짓는다. 대추는 보은의 특산품이다. 보은 대추는 그 크기와 맛이 유명하다. 계절별로 대추따기 등 각종 농산물 체험도 신청할 수 있다. 특히 선병국 고가의 장맛이 각별하다. 선병국 고가의 간장은 햇간장을 담근 뒤 섞어 맛을 더하는 ‘덧간장’이다. 간장의 근본이 350년 전부터 내려왔다니 엄밀히 말하면 그때의 간장을 먹는 셈이다. 몇 년 전 한 대기업 회장댁에서 이 ‘덧간장’ 1L를 몇백만원에 사갔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적이 있는 만큼 이 집의 장은 특별하다. 된장 만들기 체험이 막 끝난 지금은 고추장 만들기를 할 수 있다. 다른 장과는 달리 시간이 길게 걸리지 않으므로 고택에 머물며 종택 며느리와 더불어 고추장을 만들어볼 만하다.

선병국 가옥의 잠자리는 본채 외곽에 현대식으로 개량한 한옥에 마련돼 있다. 본채에 머무르려면 따로 신청할 수 있지만 화장실 문제 따위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식사는 삼시 세 때 본채에서 한다. (043)543-7177

안석훈 체험여행 전문가 ridge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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