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기업가정신 어디서 찾나

입력 2014-01-22 20:30   수정 2014-01-23 04:48

노키아 이후 핀란드 혁신 이뤘지만
삼성 없는 한국 경제 상상 어려워
혁신자산 못갖춘게 위기의 본질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노키아가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에 오른 것이 1998년, 글로벌 점유율 40%를 웃돌면서 정점(頂點)을 친 해가 2007년이었다. 휴대폰의 표준임을 자임하면서 하늘을 찌른 위세에 취해 있던 그때 스마트폰이 출현했다. 그리고 애플과 삼성에 밀려 순식간에 추락,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존재감도 없어졌고 지난해 결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먹히고 만 것은 우리가 아는 바다.

노키아 전성기 때 핀란드는 ‘노키아의 나라’였다. 핀란드 전체 수출의 20%, 연구개발 투자의 35%, 법인세 세수의 23%를 떠맡으면서 연간 4~5%대 경제성장을 이끈 절대적 존재였다. 노키아 몰락의 고통은 당연히 컸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파까지 덮친 2009년 핀란드 성장률은 -8.5%로 뒷걸음쳤다.

그러나 핀란드 경제는 곧 놀라운 복원력을 보인다. 2010년 3.3% 성장을 이뤄내고 2012년까지 3년간 연평균 2.1% 성장률을 기록했다. 유로존 평균 0.9%를 훨씬 웃도는 성과였다. 무너진 노키아를 떠난 수천명의 인재들이 창업에 나서 스타트업 생태계로 쏟아져 들어왔고 수백개의 벤처기업들이 노키아의 빈자리를 메워 나갔다. 세계를 휩쓴 모바일 게임 ‘앵그리 버드’를 만든 로비오도 그중 하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노키아 몰락이 핀란드의 이득(Nokia’s Losses Become Finland’s Gains)”이라고 썼다. 창조경제와 기업가정신을 말할 때 인용되는 혁신 사례다.

한국 대표기업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에 비해 무려 18.3%나 줄어든 8조3000억원의 ‘어닝쇼크’를 보인 것은 분명 예사롭지 않다. 스마트폰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삼성 또한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 분석이 나온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최강자로 올라선 지 불과 2년 만이다. 노키아 몰락과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 또한 절대적이다. 삼성전자의 한국 수출 기여도는 20% 선으로 지난해 전체 수출은 2.2% 늘어났지만 삼성 증가분을 빼면 오히려 3.6% 정도 감소했다는 계산도 있다. 삼성전자 홀로 나라 법인세의 10% 가까이를 떠맡고, 세계 시장에서 거둬들인 이익 등 부가가치는 국내총생산(GDP)의 2.7%를 차지한다.

한국 경제의 고민이고, 삼성전자가 잘못되면 나라 경제도 함께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삼성의 몰락은 기우(杞憂)일까. 지난 20년 끊임없는 혁신으로 가전왕국 소니, 휴대폰의 지존 노키아를 꺾고 올라선 정상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스마트폰 이후 세계 시장에 수천만~수억대를 팔 수 있는 차세대 전략상품은 보이지 않는데 벌써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문제는 핀란드가 성장동력의 혁신을 통해 노키아 몰락을 기회로 만들었던 국가적 역량을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수많은 벤처를 키워낼 창업 안전망 등 사회적 자본과 제도적·문화적 인프라, 사유재산 보호와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장경제의 자유, 개척과 도전의 기업가정신…. 그 어느 자산도 결핍돼 있다. 그것이 삼성 이후 한국 경제 위기의 본질이고, 아직 삼성 없는 한국 경제를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금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구조적 취약성은 제2, 제3의 삼성전자가 없다는 데 있다. 한국 대기업(종업원 500명 이상 제조업)은 인구 100만명당 7개로 일본의 절반, 독일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삼성그룹 매출이 GDP의 23%나 말아먹는다는, 기본개념부터 틀린 엉터리 잣대로 국가 경제의 쏠림을 문제삼고 대기업을 경제구조 왜곡의 주범으로 끌어내리는 우리 사회다. 그런 셈법이라면 오히려 삼성은 더 커져야 하고 삼성 같은 대기업이 많아져야 좋은 일이다. 대기업의 성취를 부정하고 네 것 빼앗아 내 것 삼자는 퇴행적이고 저열(低劣)한 정치논리로는 창조경제를 이룰 수도, 기업가정신을 찾을 곳도 없다. 그 많은 실업자 구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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