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슐라 번스 제록스 사장, 포천 500大기업 첫 흑인여성 CEO

입력 2014-05-02 07:01  

"실패한 사업 과감히 버려야 100년 뒤에도 살아 남는다"

뉴욕 빈민가에서 키운 꿈
어머니에게 진 빚 공부로 갚자
수학에 전념…성공의 길 찾아

말단 사원서 출발 CEO로
당당한 목소리 내는 유망 사원
1999년 글로벌부문 부사장 승진
경영 위기 처한 회사 회생 앞장

복사기 버리고 솔루션기업 변신
2000년대초 대대적 구조조정
문서관리서비스기업 '환골탈태'



[ 김보라 기자 ]
엄마는 1년 동안 4400달러(약 455만원) 이상을 벌어본 적이 없다. 뉴욕 빈민가에 살던 어린 시절, 그의 이웃은 술주정뱅이 백수가 대부분이었다. 동네 친구들은 마약과 술, 도둑질에 빠져 살았다. 파나마에서 이민을 와 3남매를 홀로 키우던 엄마는 “네가 사는 곳은 네가 누구냐인 것과는 상관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수학책을 펼쳐 들었다. 그로부터 약 30년 뒤. 그는 미국 간판 기업의 수장이 됐다. 흑인 여성 최초로 포천 500대 기업을 이끄는 우르슐라 번스 제록스 최고경영자(CEO·56)의 이야기다.

가난한 흑인 이민자의 딸

번스는 파나마 이민자의 셋째 딸로 1958년 뉴욕 빈민가 뒷골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어머니가 벌 수 있었던 돈은 1년에 겨우 4000달러 수준. 하지만 단 한 번도 자녀들의 학비를 밀려본 적은 없다. 3남매 한 명당 고등학교 학비가 한 달 65달러였으니, 수익의 절반을 자녀 교육에 쓴 셈이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번스는 늘 생각했다. “내가 어머니에게 진 빚을 갚으려면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 좋은 성적을 받아 대학에 가자. 내 인생에 다른 옵션은 없다.”

번스는 학비 보조금이 나오는 가톨릭여자고등학교에 다녔다. 학비가 사립학교에 비해 저렴했지만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다보니 배울 수 있는 과목은 제한적이었다. 이 학교에서 번스는 겨우 읽고 쓰고 정도를 배웠다. 고급 문법이나 물리학, 수리영역은 배울 기회가 없었다. 홀로 SAT 공부에 몰입했다. SAT는 미국의 수학능력시험. 이 시험 성적이 있어야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

번스 주변엔 그의 진로를 함께 고민해줄 사람이 없었다. 학교 친구들은 졸업 후 대부분 간호사, 교사, 수녀가 됐다. 번스는 “적어도 그 세 가지 직업은 내 적성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SAT의 예비 시험인 PSAT 성적표를 받아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당시 가장 좋은 성적이 나온 과목은 수학. 도서관에 있는 많은 책을 뒤져 수학 분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홀로 탐구했다.

인턴→부사장→CEO에 오르다

번스의 이 같은 노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첫 결실을 맺는다. 지원했던 여러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아든 것. 일부 과목을 수강하지 않아 ‘자격 미달’이었지만 가능성이 높다며 총 5개 대학에서 합격 증서를 보내왔다. 번스는 그중 뉴욕대 폴리텍대를 선택했다. 또 당시 졸업 후 연봉이 가장 높은 ‘화학 엔지니어링’을 전공으로 택했다.

번스는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우연히 세계 최대 문서관리 솔루션 업체인 제록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여름방학 두 달만 일했지만 회사에서 매력적인 제안이 날아왔다. ‘석사 학위 학비를 지원해줄 테니 졸업 후 우리와 함께 일합시다.’ 번스는 제록스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컬럼비아대에서 기계공학 석사 학위를 마쳤다.

제록스로 돌아온 번스는 말단 사원으로 시작했다. 5년간 화학연구소에서 일하며 제록스의 독점 기술 연구에 몰입했다. 제록스 파크연구소는 예산의 10%를 연방정부에서 지원받는 곳으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을 도운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다.

번스는 사원 시절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해 임원들로부터 여러 차례 주목받았다. 1989년 웨일랜드 힉스 부사장이 주도하는 토론회에 참석한 뒤 그의 비서로 승진하기도 했다. 이후 팩스오피스네트워크 부서를 이끌었고, 1999년 글로벌 생산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차근차근 승진 계단을 밟았다. 번스는 “나는 공학도로 입사 초기 비즈니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기술을 오래 연구하다 보니 소비자들의 니즈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복사기 회사→종합 솔루션 업체로

제록스에는 다양성을 존재하는 ‘열린 문화’가 있었지만 빈민가 출신 흑인 여성인 번스에겐 분명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했다. 그는 그러나 “제록스는 단순히 ‘많은 돈’을 성공으로 여기지 않고 직원들의 다양한 성취를 중시했다”고 회고한다. 당장 눈앞의 성과가 아닌 개성을 중시하는 회사 문화가 번스를 계속 제록스에 머물게 한 힘이라는 것.

입사 20년차에는 위기도 찾아왔다. 번스는 2000년 돌연 제록스를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잘못된 전략과 거품으로 가득한 임원들, 그로 인한 이사회의 분열, 급증하는 부채와 급락하는 주가 등 혼란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회는 번스에게 높은 보수를 제안하며 회사를 구해 달라고 부탁한다.번스는 (2000년 부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10년간 부사장을 지내며 제록스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앤 멀케이 당시 CEO와제록스 회생에 나섰다.우선 2000년대 초 9만6000명이던 직원을 5만5000명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확신이 없는 경영진은 바로 내보내고, 과거 실패한 비즈니스를 과감히 버렸다.

무엇보다 기존 ‘복사기 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기업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문서환경을 관리해주는 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났다. 번스는 “현재 비즈니스로는 20~30년간은 버틸 것”이라며 “나의 목표는 제록스가 80년, 100년 뒤에도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번스는 문서관리 아웃소싱 서비스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2009년 아웃소싱 서비스업체인 ACS를64억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인도 정보기술(IT) 회사 HCL테크놀로지와 아웃소싱 계약을 체결했다. 문서관리 아웃소싱 사업은 소비자관리, 마케팅관리, 주차관리 등 교통관련 솔루션, 문서관리, 금융 및 회계 서비스 등을 포괄한다. 제록스가 이 사업에 뛰어들자 미국 텍사스주는 IT 아웃소싱업체를 IBM에서 제록스로 변경했다. 당시 계약 규모만 약 8억5000만달러(약 1조원)에 달했다.

“성공하려면 좋은 배우자 만나라”

번스는 빈민가에서 독학하던 때를 떠올리며 이공계 후학 양성에 애쓰고 있다. 현재 이공계 인재들에게 멘토링을 지원하는 기관 FIRST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등에서 리더십 강연을 하고 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 등 분야를 아우르는 STEM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 번스를 지목해 자문 역할을 맡겼다. 또 2010년 대통령 직속 수출협회의 부회장직을 지내기도 했다.

번스가 말하는 성공의 비결은 뭘까. 그는 다섯 가지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성공 비결을 요약했다.후배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강조하는 건 ‘좋은 배우자를 만나라’는 것이다. 번스는 제록스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던 20세 연상의 로이드 빈과 결혼해 현재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는 “남편과 나는 서로의 일을 100% 이해하는 동반자”라며 “특히 스무 살이나 나이가 많은 그는 내가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는 지금 (은퇴 후) 엄마의 역할까지 완벽하게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을 것, 가끔은 희생만 하지 말고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 것,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 것 등을 강조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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