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김영란法이 불량규제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15-01-15 20:45   수정 2015-01-16 06:23

지켜지지도 집행되지도 않는 法
법 권위·국민 법감정만 훼손할 뿐
이상 아닌 현실에 기반한 것이어야

김종석 < 홍익대 경영대학장·경제학 kim0032@nate.com >



꽉 막힌 주말 고속도로에서 승용차들이 버스차선이나 갓길로 마구 달리는 것을 보는 것은 참 고통스럽다. 왜 법을 지키는 것이 고통이 돼야 하나. 단속을 하지 않으니까 법을 지키는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고, 결국에는 정직한 운전자들마저 버스차선이나 갓길로 들어서게 된다.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편법과 새치기가 만연해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인가 법을 지키는 사람은 미련하고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이런 사회병리현상의 배경은 규제를 만들어 놓고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 한국의 규제 집행 풍토 때문이다. 법 따로 현실 따로인 것이다. 규제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정책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규제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제대로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의 많은 규제들이 제대로 집행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런 규제들은 전형적으로 준수율이 낮다. 준수율이 낮은 규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물론 규제를 만들어 놓고 제대로 집행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많은 규제들이 비현실적이어서 지키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고 준법투쟁이 가능한 이유다.

한국에서는 법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명분과 이상론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기준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현실 적용 가능성이나 집행 가능성에 대한 검토 없이 목적이 숭고하니까 어떤 수단이라도 정당화된다는 논리가 지배해 전 세계 모범사례를 다 합쳐 놓은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가 만들어진다. 그래 놓고는 규제하는 사람이나 규제 받는 사람이나 모두 법대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현장에서 규제 집행을 적당히 타협한다. 사실상 무(無)규제 상태가 된다. 환경, 위생, 안전, 관련 분야에 이런 규제들이 많다. 선거법이나 부패방지 관련 규정에도 비현실적이고 지키기 어려운 규제들이 많다.

한국에 규제가 없어서 대형사고가 빈발하고 부패가 만연한 것이 아니다. 규제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은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있는 규제가 안 지켜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준수율이 낮은 규제를 가지고 있는 정부 부처가 일정 기간 내에 준수율을 일정 수준으로 높이지 못하면 그 규제를 폐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집행할 의사나 능력도 없으면서 명분에 치우쳐 비현실적인 규제를 만들어 놓고 법을 안 지키는 국민 탓만 하는 법 만능주의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규제를 만들었으면 제대로 집행해서 지켜지도록 하는 것도 규제를 만든 사람의 책임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유념해야 할 점이다.

그런데 지켜지지 않는 규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안 지켜지는 규제는 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 왜냐하면 법을 지키는 정직한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결국에는 정직한 국민들조차 법을 지킬 유인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이런 규제는 어쩌다 한 번 단속을 나가면 걸린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생각보다는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왜 나만 잡느냐고 항의할 것이다.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 규제는 법 권위와 국민의 법 감정만 훼손한다.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는 모든 국민이 원하고, 우리 경제 사회의 선진화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 법이 법 따로 현실 따로인, 걸린 사람만 재수없다고 느끼는 또 하나의 불량규제가 돼서는 안 된다. 목적이 숭고할수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규제 수단은 더욱 정교하고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 돼야 한다.

제대로 집행하기 어렵다면 기준을 현실화해서라도 제대로 집행되고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 법의 취지가 아무리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현실이 법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런 법은 차라리 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종석 < 홍익대 경영대학장·경제학 kim0032@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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