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직관, 총선 그리고 광화문

입력 2016-12-07 10:13  



(생활경제부 김용준 기자) 2012년 여름 일이다. 당시 힐링캠프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였다. 제작진은 정치인 몇명을 이 프로그램에 초청했다. 순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명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는 안철수가 대선 출마선언을 하기 전이었다.

다른 대선 출마자들은 “나도 출연시켜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거부했다. 정확하지 않지만 제작진은 “대중의 요구가 없어서, 즉 시청률이 높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초청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 것 같다. 시청률 예상치. 즉 대중의 직관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이 직관은 맞아 떨어졌다. 대선의 유력후보는 딱 3명뿐이었다. 대중들이 프로그램 제작진을 통해 집단적 직관을 관철한 것이라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

대중의 직관이라는 책도 있다. 책의 저자 존 캐스터는 “사건이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 분위기가 사건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사회 분위기란 집단이 갖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말한다. 저자는 치마의 길이, 유행하는 영화 등도 이런 집단적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암울할 때 재난 영화가 유행한다는 식이다. 결국 그는 “사건이 사회적 분위기를 바꾼다는 통념은 착각”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광화문 촛불집회를 보며 대중의 직관을 떠올렸다. 대중들은 마치 이런 과정을 예비한 듯, 계획을 하나하나 실행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주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이 시작이었다. 총선은 야당이 분멸된 상태에서 치러졌다. 더불어 민주당, 국민 의당 등 야3당은 연합공천에도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여당의 압승을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총선의 키워드는 전략적 투표였다. 누가 선동한다고 해서 대중들의 투표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대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 지역구와 전국구를 갈라서 투표했다. 야당에 여러 차례 실망한 탓에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에서는 국민 의만에 표를 몰아줬다. 국민 의당은 제3당이 됐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투표에서는 지지율이 높은 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더불어 민주당은 제1당으로 올라섰다. 교차투표였다.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전략적 투표를 한 셈이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여당이 선거에서 패하는 것은 국민들이 큰 불만을 갖고 있을 때다. 클린턴만 해도 르윈스키 스캔들이라는 엄청난 악재에도 경제호황에 힘입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총선은 이변이었다.

이 대중의 직관은 최순실 사태가 터진 후 더 빛을 발한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탄핵밖에 없다. 172석을 야당에 몰아준 것은 이 탄핵을 시도할 수 있는 숫자적 근거가 됐다. 여대야소 또는 150석 정도면 야당은 탄핵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또 한때 계엄령 얘기도 나왔다. 국회는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법적권한을 갖고 있다. 그 위험성을 사전에 스스로 제거한 것도 어쩌면 대중들이었는지 모른다.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갔다. 지난 12월2일 야당은 분열 속에 탄핵안을 제출하지도 못했다. 실망한 사람도 많았다. 여당 대표는 탄핵하면 장을 지진다는 말도 했다. 탄핵에 대한 회의적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대중의 전략은 12월3일 한번 더 빛을 발한다. 분노한 대중들, 실망한 대중들은 다시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나온 이유는 두가지였다. 대통령의 3차 담화에 열받아서 나온 사람도 많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비박계가 돌아서면서, 꺼져가는 탄핵 불씨를 살리기 위해 촛불 하나라도 보태야겠다며 광화문으로 나왔다. 성난 민심에 놀란 비박계가 돌아서도록 만든 것도 이런 전략적 대중들이었다.

이번 촛불집회 과정에서 대중들이 보여준 또 하나의 전략은 기러기의 V자 편대와 닮아 있다. 철새인 기러기는 수천km를 날아간다. V자 편대를 지어가는 이유는 따로 떨어져 날아갈 때보다 70%나 멀리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러기들이 날갯짓이 공기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공기저항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뒤에서 비행하는 기러기가 손쉽게 날 수 있게 도와주도록 진화한 셈이다. 또 하나는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앞서가던 기러기가 지치면 뒤에 있던 덜 지친 기러기가 맨 앞으로 나간다. 이런 방식으로 함께 날아간다.

촛불집회는 리더가 없다. 스타도 없다. 또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 자원봉사자들이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핫팩 등을 준비한다. 환자가 생기면 기적처럼 길을 열고, 환자가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는 연행자, 부상자 0명이라는 기록으로 이어졌다. 쉽게 지치지 않는 것도 기러기와 비슷하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정치인의 발언은 더 많은 촛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횃불로 커지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만들고, 정치적 변화를 강제하고 있는 것은 리더십이 아니었다. 대중의 직관과 대중의 전략, 그리고 대중의 선택이었다.

무서운 대중의 시대다.(끝) /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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