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서울대의 민주주의 실종사태

입력 2017-02-01 18:09   수정 2017-02-02 05:52

황정환 지식사회부 기자 jung@hankyung.com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다고 하잖아요. 서울대 시흥캠퍼스 사태를 보면 정말 그래요.”

서울대의 한 교수는 1일 장기화하고 있는 학생들의 대학 본관 점거 사태를 놓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학내 민주주의를 외치며 점거에 나섰지만 정작 토론과 참여라는 민주주의 핵심가치는 쏙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서울대 학생들은 지난해 10월10일 경기 시흥캠퍼스 건립 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본관을 기습 점거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기 보름 전쯤 일이다. 점거 115일 동안 학생 측과 대학 사이에 제대로 된 토론은 한 번도 없었다. 서울대는 ‘4차 산업혁명 전초기지’로 시흥캠퍼스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면 학생들은 의사결정이 일방적으로 이뤄졌고 대학의 공공성을 해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지난달 26일 “학생 대표의 이사회 참관과 각종 심의기구 참여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제안이며 더 이상의 타협안은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건립 계획 철회 외에는 답이 없다”며 거부했다.

‘토론 부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내 무관심’이다. 본관 점거를 주도하는 학생은 20여명 수준으로 줄었다. 점거 첫날 참여했던 2000여명 중 1%가량만 남았다. 대다수 학생은 ‘명분 없는 점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관심이 없다는 듯 취업 준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사태가 꼬여가는 이유는 또 있다. 국내 최고의 지성이 모였다는 서울대지만 사제(師弟) 관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한 교수는 점거 학생들에게 “결과적 정의가 절차의 위법성을 정당화하진 않는다”고 충고했다가 욕설과 조롱이 담긴 ‘이메일 폭탄’을 받아야 했다. 상당수 교수는 학생들의 눈치를 보면서 뒷짐만 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우여곡절 끝에 봉합되더라도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 단과대 학장은 “토론과 참여 문화가 실종된 학내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시흥캠퍼스 사태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처럼 이번 서울대 사태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개탄했다.

황정환 지식사회부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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