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도 상속세도 없다…신설법인 수 10만명당 782개 '한국의 4배'

입력 2017-07-09 17:37   수정 2017-07-10 10:05

유럽의 실리콘밸리 에스토니아를 가다

에스토니아는 스타트업 빨아들이는 '창업 핫플레이스'

스타트업 강국 비결은 인프라
전체가구 85%가 초고속 인터넷, 산골 마을까지 무선통신망 갖춰

창업 등록비용 26만원 불과…법인세 없이 배당에만 20% 과세
외국인에 '전자시민권' 부여, 내국인과 똑같이 법인설립 가능
해외 스타트업 유럽진출 교두보로



[ 김태호 / 오상헌 기자 ]
“에스토니아가 일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인프라를 일본이 따라잡으려면 적어도 15년은 걸릴 겁니다. 아마 한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난 5월25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열린 스타트업 포럼 ‘래티튜드(Latitude)59’ 행사장에서 만난 손태장(타이조 손) 일본 미슬토우 대표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친동생인 그는 글로벌 스타트업 업계의 ‘큰손’으로 통한다. 자신이 설립한 일본 최대 온라인 게임회사 겅호를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으로 전 세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손 대표는 “에스토니아는 스타트업을 육성하려는 나라들이 본받아야 할 1순위 모델”이라며 “인구 130만 명의 소국(小國)에서 세계적인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이유가 바로 스타트업 인프라에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접근권은 국민 기본권”

에스토니아가 ‘유럽의 스타트업 메카’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은 잘 갖춰진 정보기술(IT) 인프라에 있다. 전체 가정의 87.9%가 컴퓨터를 갖고 있고, 85%는 광대역 통신망을 활용하고 있다. 국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림지역에서도 인터넷이 터진다. 에스토니아가 세계 최초로 모든 공공업무를 디지털화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후 국제사회는 에스토니아에 ‘e-스토니아’란 별칭을 붙여줬다.

내년부터는 IT 인프라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다. 4세대(4G)보다 40~50배 빠른 5세대(5G) 네트워크가 세계 최초로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 구축되기 때문이다. 리나르 비크 탈린대 교수는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사업이 활성화되려면 5G가 필수”라며 “에스토니아가 세계 스타트업을 유혹할 신무기를 갖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법인세 0%, 상속세도 없어

에스토니아의 법인세율은 0%다. 토종 기업뿐 아니라 외국계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한다.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내도, 그 돈을 투자하는 데 쓰거나 내부에 쌓아두면 세금을 한 푼도 낼 필요가 없다. 이익을 배당할 때만 20% 세율로 과세한다. 상속·증여세와 부동산 보유세도 없다.

빌자르 루비 경제개발부 차관은 “기업들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고 더 많이 투자하라는 의미에서 법인세를 물리지 않는 것”이라며 “매력적인 세제 시스템에 힘입어 창업과 고용이 확대되면 국가 수입도 함께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간편한 창업절차와 지원 시스템도 에스토니아를 스타트업 강국으로 일으켜 세우는 데 한몫했다. 200유로(약 26만원)와 15분만 투자하면 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모든 절차를 마치기 때문에 관공서를 찾아갈 일도 없다.

초기 창업자금은 ‘창업경진대회(해커톤·hackathon)’를 활용하면 된다. 우승자에게 상금과 함께 사무실 제공, 경영·기술 멘토 서비스 등의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이 에스토니아 전역에서 매주 열린다. 지난 5월23일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 타르투에서 열린 해커톤 우승자인 패트리스 하라푸 크리스탈스페이스 대표는 “창업절차가 간단하고 인프라도 잘 갖춰져 아이디어와 용기만 있으면 누구든 스타트업을 할 수 있다”며 “에스토니아 스타트업에 주목하는 해외 벤처캐피털이 많아 투자금 유치도 어렵지 않다”고 했다.

◆탈린으로 몰리는 해외 스타트업

우크라이나 IT업체인 스타윈드소프트웨어가 매출의 35%를 차지하는 유럽시장을 공략할 거점 선정에 나선 때는 2015년 초였다. 기준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면서 △부정부패가 없고 △창업 절차가 간편하고 △규제가 적고 △세제 시스템이 투명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위성경영’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는지였다. 스타윈드의 선택은 에스토니아였다.

아르템 버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런던 베를린 등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전자시민권(e-Residency)’ 제도를 갖춘 에스토니아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다”며 “에스토니아는 비(非)EU 국가들이 유럽 진출 교두보로 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에스토니아가 스타트업의 ‘유럽 전진기지’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전자시민권 제도가 도입된 2014년 12월부터다. 전자시민권 덕분에 외국인도 내국인과 똑같이 에스토니아에 회사를 설립하고 은행 계좌를 열 수 있게 돼서다. 모든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어 에스토니아를 방문할 필요도 없다. 전자시민권 신청에서부터 법인을 설립하는 데 2~3주면 충분하다.

지금까지 전자시민권을 받은 외국인은 2만여 명. 이들이 2년6개월 동안 창업한 법인은 3256개에 달한다. 에스토니아에 매년 1만여 개 법인이 새로 생기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신규 창업의 평균 13%가량이 해외에서 이뤄진 셈이다. 에스토니아의 목표는 2025년까지 ‘전자시민’ 수를 인구(130만 명)보다 7.7배 많은 1000만 명으로 늘리는 것. 카스파 코르주스 전자시민권 프로젝트 디렉터는 “호텔 하나 없는 에어비앤비가 IT를 활용해 세계 최대 숙박업체가 된 것처럼 에스토니아도 전자시민권을 통해 세계 최대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26개국

2015년 기준 에스토니아 전자정부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국가 수. 에스토니아는 2002년 ‘에스토니아 전자정부 아카데미(eGA)’를 설립해 해외 국가들의 전자정부 시스템 구축을 돕고 있다. 독일 영국 인도 등이 컨설팅을 받고 있다.

탈린·타르투=김태호/오상헌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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