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말라카 해협의 해적선

입력 2017-08-22 18:39  

말라카 해협은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사이의 좁은 해역이다. 동남쪽의 싱가포르에서 서북쪽 안다만까지 길이는 약 1000㎞. 가장 좁은 곳의 폭은 2.8㎞에 불과하다. 수심도 25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말라카라는 지명은 15세기 이 지역의 이슬람 왕국명이자 말레이시아 항구도시인 말라카에서 따왔다.

좁고 긴 이 바닷길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동서 교역의 최단 항로다. 지금도 세계 해상운송량의 20~25%, 중동 원유의 5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수입하는 원유의 90%가 여기를 지난다. 파나마와 수에즈 운하만큼 중요한 곳이어서 한 국가의 영해가 아니라 국제수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곳을 지나는 선박은 연간 8만여 척에 이른다. 수마트라 섬을 우회하면 1600㎞나 멀고 항해 기간도 3일이 더 걸린다. 그래서 거의 모든 배가 이곳으로 몰린다. 단점은 수심이 얕고 암초가 많아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썰물 때는 좌초 사고도 조심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골칫거리는 해적이다. 교역품을 가득 싣고 천천히 항해하는 상선들은 해적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상선들이 물대포 등 방어장치로 맞서지만 역부족이다.

2015년에 발생한 전 세계 해적 공격 246건 중 200건이 말라카 해협을 비롯한 동남아 해역에서 일어났다. 그해 우리나라 화학제품운반선도 해적에게 탈취돼 현금 5만달러 등을 빼앗겼다. 해적들은 늪지대에 숨어 살면서 10t 정도의 소형선박으로 상선들을 괴롭힌다. 어제오늘 일만도 아니다. 19세기 유럽의 무장증기선이 들어오면서부터 각국이 본격적으로 소탕작전을 폈지만 해적 소굴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미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 이어 한국도 경비함을 보내 합동 작전을 벌인 적이 있다.

최근에는 이슬람 무장단체 출신 테러범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도 있다. 테러 조직에서 습득한 전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방어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차라리 말레이 반도의 허리 부분인 태국 크라 지역에 운하를 뚫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길이 135㎞의 크라 운하 건설비용은 약 280억달러(약 31조원). 에너지 안보와 해상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이 투자 의향을 밝히는 등 관심을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항구·관광 수입에 의존해 온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운하 건설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말라카 해협의 지리적 이점을 잃으면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하가 생기면 해협의 혼잡도나 해적들의 위협도 줄겠지만, 당분간은 지금처럼 북적댈 수밖에 없게 됐다. 오죽하면 미국 군함이 대형 유조선과 충돌하는 사고까지 났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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