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예멘과 오만

입력 2017-12-05 18:25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1934년, 고대 아라비아 유적탐사에 나섰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시바의 여왕(Queen of Sheba)이 다스렸다는 왕국을 찾기 위해서였다. 여왕은 이스라엘 왕 솔로몬(재위 BC 971~BC 931)의 지혜를 사모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말로는 왕국 수도로 추정되는 마리브(Marib)를 탐사한 뒤 파리 석간신문 ‘앵트랑지장’에 르포 형식으로 연재했다. 르포는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진 샹송 ‘시바의 여왕’의 모티브가 됐다.

시바 여왕의 나라로 알려진 곳이 아라비아 반도 남단의 예멘이다. 예멘은 이웃나라 오만과 함께 15세기 후반 대항해시대 이전부터 중동에서 번성했던 곳 중 하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바닷길 길목이어서 세계적인 무역·금융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다. 중동 민담집(民譚集)인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 주무대가 예멘이다. 예멘의 홍해 연안 항구도시 모카(Mocha)는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커피 무역 중심지였다. 커피 음료 ‘카페모카’ 명칭이 이곳에서 유래했다.

《신밧드의 모험》 주인공 신밧드의 고향은 오만 항구도시 소하(Sohar)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바쳤던 예물(황금·몰약·유향)의 하나인 유향(Olibanum) 거래 중심지도 오만 사막도시 우바르(Ubar)다. 우바르는 《아라비안나이트》와 이슬람 경전 《꾸란》에서 ‘풍요의 도시’로 언급될 정도로 영화를 누렸다.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오늘날 예멘과 오만의 상황은 천양지차다. 한반도 면적의 약 2.4배인 예멘은 원시림과 사막이 공존하고 기후도 비교적 온화하다. 인도양과 홍해를 끼고 있어 무역과 산업이 발달할 조건을 두루 갖췄다. 하지만 남북 분단과 통일, 그리고 격렬한 내전으로 이어진 혼란 속에서 빈국(2016년 1인당 국민소득 1235달러)으로 전락했다. 국가를 하나로 아우르는 강력한 정치 리더십이 없고, 수니파(56%)와 시아파(44%)로 종파가 나뉜 것이 불행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오만(한반도 면적의 약 1.4배)은 바위와 사막이 국토의 70%를 차지한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중진국 수준인 1만7485달러(2016년 기준)로, 예멘의 약 15배다. 47년째 집권하고 있는 ‘계몽군주’ 카부스 빈 사이드의 개방정책 덕분이다. 영국에 유학했던 오만 국왕(술탄)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쇄국정책을 폐기하고 친(親)서방·시장경제 정책으로 전환했다.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경제자유구역을 설치했다. 수니파 분파인 이바디파(75%)가 주류이지만 힌두교 사원과 교회 건축을 허용할 정도로 다른 종교에 관용적이다. 시대를 내다보는 지도자의 안목이 국가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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