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화이트 마운틴이 그림처럼 펼쳐진… 크레타의 진주

입력 2018-05-20 15:50  

고아라 작가의 그리스 섬 여행 (2) 크레타 주도 하니아

성당의 종탑·모스크 첨탑의 공존…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神들의 섬'




크레타 북서부에 있는 하니아는 이라클리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크레타 제2의 도시다. 섬의 오래된 역사와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어 ‘크레타의 진주’라고도 불린다. 고풍스러운 베네치아 항구에는 중세의 정취가 가득하고, 거미줄처럼 엉킨 낡은 골목에는 서로 다른 문화가 함께 거닌다. 뜨거운 태양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화이트 마운틴, 그 속에 숨겨진 깊고 아득한 협곡과 천혜의 자연환경까지. 하니아에서는 그 누구라도 크레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니아(그리스)=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유럽과 중동, 크레타 문명 오묘한 조화

서부 크레타의 주도 하니아(Chania)는 고대 크레타의 요충지였던 키도니아(Kynodia) 위에 건설된 도시로 무려 6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미노아 문명의 영광이 저물고 외세의 숱한 침략이 이어지면서, 하니아 또한 크레타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수없는 붕괴와 재건을 겪었다. 비잔틴 시대가 지나고 400년이 넘는 베네치아 점령기를 거치며 하니아는 크게 번영하게 되는데, 현재 구시가지에 남아 있는 대부분 유산이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오스만제국, 이집트의 지배가 이어지며 도시 곳곳에는 이슬람의 색채가 깊게 스미기 시작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유럽과 중동 그리고 크레타 고유의 문화가 섞인 오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다.

하니아의 매력은 올드타운의 골목들을 걸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구시가지는 크게 5구역으로 나뉜다. 고대 문명의 잔해가 남겨진 카스텔리(Castelli), 오스만 지배 당시 크리스천 구역이자 중앙 광장 역할을 했던 신트리바니(Sintrivani), 베네치아의 향기가 가득한 토파나스(Topanas), 유대인 구역이었던 에브레키(Evraiki), 그리고 무슬림 구역인 스프란치아(Splantza)다. 가장 먼저 올드타운의 축을 담당하는 신트리바니 구역으로 향한다. 1866 광장부터 베네치아 항구까지 이어지는 할리돈(Halidon)거리는 그야말로 여행자의 길이다. 도시를 대표하는 볼거리는 물론 식당, 카페, 여행사 등의 편의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거리 중앙에 있는 하니아 고고학 박물관은 필수 코스다. 16세기께 건축된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자리한 이 박물관은 선사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하니아 전역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알차다. 미노아 시대에 사용된 거대 항아리 피토이(Pithoi)를 비롯해 조각상, 모자이크 바닥, 프레스코화까지 진귀한 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 맞은편 광장에는 트리마르티리 교회(Church of Panagia Trimartiri)가 있다. 하니아를 대표하는 그리스 정교회로 차분하고 우아한 내부 장식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크레타인들의 생활상을 재현해놓은 민속박물관이나 가톨릭성당, 터키식 목욕탕인 하맘(Hamam)건물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다채로운 문화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거리

항구 뒤편 언덕을 오르면 시간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카스텔리 구역의 중심거리인 카네바루(Kanevarou)거리에서 일명 ‘칼의 거리’로 불리는 카라올리 디미트리우(Karaoli-Dimitriou)를 지나 시파카(Sifaka)로 이어지는 길 곳곳에 키도니아와 비잔틴 시대에 건설된 성벽의 잔해가 남아있다. 하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답게 고풍스러움이 가득하다. 유대인 구역의 중심인 콘디라키(Kondilaki)거리는 구시가지에서 가장 예쁜 길 중 하나로 통한다. 좁고 구불구불한 다른 길들과 달리 넓고 쭉 뻗은 형태를 띠고 있는데, 과거 항구에서 도심으로 물자를 수송하는 마찻길로 쓰였기 때문이다. 크레타에 남아있는 유일한 유대교 회당도 이곳에 있다. 구시가지 서쪽의 토파나스 구역은 중세의 정취가 짙게 배어있는 곳이다. 피르카스 요새(Firkas Fortress) 뒤편 미로처럼 펼쳐진 골목들은 마치 이탈리아의 소도시를 연상케 한다.

과거 귀족들이 거주했던 구역답게 베네치아풍의 고급 맨션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다. 마지막으로 무슬림 구역인 스프란치아로 발길을 옮긴다. 하치미할리 달리아니(hatzimihali Daliani)거리에 들어서니 이번에는 터키의 어느 골목에 들어선 기분이다. 상아빛 담벼락과 파스텔 톤으로 채색된 건물들 사이로 이슬람 첨탑 하나가 높게 솟아있다. 아기자기한 카페들로 둘러싸인 1821 광장에는 독특한 건물이 하나 있다. 성당의 종탑과 모스크의 첨탑이 공존하는 아이오스 니콜라스 교회(The Church of Agios Nicholaos)다. 본래 도미니칸 수도원이었지만 오스만제국이 모스크로 바꾸면서 첨탑을 얹었다. 하니아의 복잡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를 잘 보여주는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실내 재래시장인 아고라(Agora)에서 할리돈 거리까지 이어지는 스티바나디카(Stivanadika)는 대표적인 쇼핑 구역이다. 크레타 전통 신발을 뜻하는 단어 스티바나디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통 의복과 장신구를 파는 상점, 세계적인 브랜드 숍과 부티크가 혼재한다. 일명 ‘가죽의 거리’로 불리는 스크리드로프(Skridlof) 거리도 구경해볼 만하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베네치아 항구

어느 골목을 걷든 발걸음의 종착역은 하니아의 상징, 베네치아 항구다. 에게해를 한아름 끌어안은 듯한 모습의 항구와 그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등대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도 가득하다. 비잔틴박물관, 해양박물관, 베네치아조선소, 이슬람 회교당을 비롯해 크레타의 그리스 반환이 선언된 피르카스 요새까지 하니아를 거쳐 간 모든 역사가 항구 안에 정박해 있다. 등대까지 이어지는 방파제는 하니아 최고의 산책로 겸 전망대다. 중간 지점에 있는 아이오스 니콜라스(Agios Nicholas) 요새 터에 올라서면 한쪽으론 도시의 파노라마 전경을, 또 다른 쪽에선 짙푸른 크레타해를 담을 수 있다. 해가 질 때쯤이면 항구를 따라 늘어선 타베르나(Taverna) 혹은 카페 테라스로 향하자. 물에 물감이 번지듯 퍼져 나가는 분홍빛 석양은 하니아가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땅거미가 짙어지고 등대에 불이 켜지면 도시는 더욱 활기를 띤다. 그리스식 주점인 메제(Meze)에는 크레타 전통술인 라키(Raki)를 홀짝이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신명나는 크레타 전통 음악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하나둘 일어나 어깨동무춤을 춘다. 아득하게 펼쳐진 에게해 위로 크레타와 꼭 닮은 밤이 저문다.


크레타에서 즐기는 트레킹의 매력

크레타는 꾸밈없는 섬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사람은 사는 그대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저 그렇게 두는 섬. 투박하지만 진솔하고, 거칠지만 자유로운 섬이다. 이런 크레타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방법이 있다. 바로 사마리아 협곡(Samaria Gorge)을 걷는 일이다. 일명 화이트 마운틴이라고 불리는 레프카 오리(Lefka Ori) 산맥에 있는 이 협곡의 길이는 장장 16㎞, 산의 몸통을 가로질러 남쪽 땅끝까지 내려가는 여정이다. 유럽에서 가장 긴 협곡 트레킹 중 하나로 연간 20만 명에 가까운 여행자들이 사마리아를 걷기 위해 크레타를 찾는다. 아침 일찍 하니아를 떠나 사마리아 국립공원의 입구가 있는 오말로스(Omalos)로 향한다. 소박하게 지어진 매표소에서 표를 산 뒤 협곡에 진입한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꼬박 한 시간을 내려가야 한다. 협곡 바닥에 도달하면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별다른 요령은 없다. 나무나 바위에 새겨진 표식을 따라 걷고 또 걸어야 한다. 그리스의 강렬한 태양이 깊숙한 골짜기까지 꽂혀 내린다. 바위와 자갈이 가득한 길을 한나절 내내 걷는 일이 결코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중간에 그만 둘 방법도 없다. 사마리아의 출구는 단 하나, 끝까지 완주하는 것만이 협곡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몸은 힘들지만 즐거움은 가득하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사마리아 마을터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900여 종에 달하는 야생 꽃과 나무를 구경하고, 계곡을 건너고, 멋들어진 뿔이 인상적인 크레타 토종 염소 크리크리(krikri)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트레킹의 막바지에 이르면 협곡의 하이라이트 ‘아이언 게이트(Iron Gate)’가 등장한다. 널찍하던 협곡의 폭이 순식간에 4m로 줄어들고 높이 300m에 달하는 절벽이 양옆에 치솟아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의 발밑을 걷는 기분이다. 사마리아의 대문을 지나 협곡을 빠져나오면 푸르디푸른 리비아해가 기다리고 있다. 바닷물에 지친 발을 담그고,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땀과 흙을 씻어낸다. 크레타의 거친 속살을 경험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꿈같은 시간이다. 크레타 서부에는 사마리아 협곡 외에도 수많은 협곡이 있다. 아기아 이리니(Agia Irini) 협곡과 임브로스(Imbros) 협곡이 대표적이다. 두 곳 모두 사마리아 협곡보다 난이도도 쉽고 길이도 짧아 누구든지 도전해볼 만하다.

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여행메모

한국과 크레타를 잇는 직항은 없다. 아테네에서 비행기 혹은 페리를 통해 들어가야 한다. 하니아 국제공항은 시내에서 약 14㎞, 페리가 들어오는 수다 항구(Port of Souda)는 약 7㎞ 떨어져 있다. 하니아 고고학박물관의 입장시간은 하절기(4~10월)는 오전 8시~오후 8시(월요일 오후 1~8시), 동절기(11~3월)는 오전 8시~오후 3시(월요일 휴무)다. 입장료는 4유로이며 비잔틴 박물관을 비롯해 4개의 박물관과 유적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통합권은 6유로다. 사마리아 국립공원의 개장 시기는 보통 5~10월까지며 정확한 개·폐장 날짜는 날씨나 협곡의 상황에 따라 매년 달라지므로 방문 전 확인해야 한다. 입장료는 5유로, 트레킹 허용 시간은 일출(약 오전 6시)부터 일몰 전(약 오후 4시)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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