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 국어학자 등 56명 TF
법령 4400여건 전수조사 나서
산동→동공확대, 이루→귓물
사지 단(單)마비→팔다리 일부
행안부, 자치법규 한자어도 정비
기장→기록, 조견표→일람표
[ 신연수/이해성 기자 ] “어깨관절의 경우에는 신전(伸展)·굴곡(屈曲)운동 및 외전(外轉)·내전(內轉)운동의 제한 정도에 따라 장해등급을 정한다.”(공무원 재해보상법 시행규칙 개정 전)
“어깨관절의 경우에는 펴고, 굽히고, 벌리고, 모으는 운동의 제한 정도에 따라 장해등급을 정한다.”(개정 후)
한글날을 앞두고 정부가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로 된 법률 및 행정용어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법제처와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순화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법제처, 전 부처 법령 용어 쉽게 고친다
법제처는 올해부터 ‘알기 쉬운 법령팀’이란 별도의 팀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국어학자와 법조인, 각 분야 전문가를 아울러 총 56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이 정부 부처별 입안 과정부터 투입돼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 어색한 일본식 단어 등을 우리말로 순화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나안(裸眼)’을 ‘맨눈’으로, ‘산동(散瞳)’을 ‘동공확대’로, ‘탈실(脫失)’을 ‘탈색’으로, ‘인공와우기관’을 ‘인공달팽이관이식기관’으로 고치는 식이다.
법제처는 ‘어려운 용어 2개년 정비계획’을 세워 전 부처 현행 법령 4400여 건에 대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이미 만들어져 통용 중인 법에 있는 난해한 한자어를 바꾸기 위해서다. 법제처 관계자는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 7개 부처의 소관 법령 개선에 대해선 지난 7월 연구용역을 맡겼다”며 “통일부와 국방부 소관 법령은 법제처가 개선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법제처는 지난달까지 부처별 어려운 용어 214건을 발굴했다. 내년까지 기획재정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각 위원회·처·청까지 정비 작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법제처는 시민의 참여도 독려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3개월 동안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국민 아이디어 공모제’를 실시한 결과 총 573건의 개선 의견이 접수됐다. 어음법상 은혜일(恩惠日)을 ‘임의적 지급 유예’로, 농업전문용어인 시비량(施肥量)을 ‘거름양’으로, 민사소송비용법의 수봉(收捧)을 ‘징수’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 등이 받아들여졌다.
◆자치법규 난해한 한자어도 정비
행안부는 조례 등 자치법규에서 사용하는 복잡한 한자어 정비에 나섰다. 농지 및 농업생산기반시설 등 자치법규에서 ‘이익을 얻거나 해당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는 몽리자(蒙利者)를 수혜자 또는 이용자로 순화한다. 건축 관련 자치법규에서 주로 쓰이는 사력(砂礫)은 자갈로 바꾼다.
상위법령에선 많이 사라졌으나 자치법규에 주로 남아있던 일본식 한자어 계리(計理)는 회계처리로 순화한다. 또 기장(記帳)은 기록으로, 조견표(早見表)는 일람표로, 정양(靜養)은 요양으로, 주서(朱書)는 붉은 글씨로 바꾼다. 끽연(喫煙)은 흡연으로 순화한다. 김외숙 법제처장은 “지나치게 어려운 법률 용어는 국민이 법을 넘볼 수 없도록 하는 하나의 장벽이 되고 있다”며 “실질적 법치주의 실현을 위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정비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신연수/이해성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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