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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봉오동 전투의 숨은 영웅 최운산을 아시나요 2019-07-04 09:00:01
최강이자 세계 정상급 전력을 자랑했다. 1905년 러일전쟁의 승리로 세계열강 대열에 진입한 데 이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당당한 승전국 지위를 얻어 사기도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1920년 만주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최진동·홍범도·김좌진 등이 이끄는 대한민국 독립군 부대에 연패하며 수천 명의...
'7월 독립운동가' 임정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 2019-06-28 07:46:00
단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한 선생은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1905년 보창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했다. 서북학회와 비밀결사 신민회의 지도자를 맡아 구국운동을 했으며, 1911년 3월 안명근·양기탁 사건에 연루돼 일제 총감부에 체포되어 인천 앞바다에 있는 무의도에서 1년간 ...
[용산기지 이전 1년] ② 여전히 '닫힌 땅'…공원화까진 첩첩산중 2019-06-24 06:30:02
용산 미군기지는 1904년 러일전쟁 중 일제가 군 주둔지로 사용한 이래 100년 넘게 우리 국민에게 닫힌 땅이었다. 지난해 6월 29일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주한미군의 용산 주둔이 막을 내렸다. 이후 1년이 지났으나 이 땅은 여전히 시민 품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기지 일부를 아직...
57개 섬이 한 몸인 고군산군도, 별주부전 전설 숨쉬는 비토섬…자동차 타고 나도야 간다 2019-06-02 14:59:29
가장 가까운 역사는 러일전쟁과 일제강점기다. 외양포는 군사 보호구역이라 개발이 불가능해 당시 흔적이 잘 남아 있다. 포진지, 화약고, 헌병부 건물 등이 아픈 역사를 증언한다. 대항새바지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원도 탄광 노동자들이 판 일제의 요새 동굴이 있다. 호국보훈의 달에 가족이 함께하는 역사 여행지로...
[ 분야별 송고기사 LIST ]-외신 2019-05-31 08:00:07
총리, 무역전쟁 벌이는 미·중 "자제해야" 190530-0798 외신-013515:18 '퓰리처상' 받은 예멘 기자, 美비자 안 나와 시상식 불참 190530-0800 외신-013615:20 중국, 외교부부장에 인도대사 발탁…무역전쟁에 인도 '공들이기' 190530-0804 외신-013715:22 세계의 날씨(5월30일) 190530-0805 외신-013815:22...
검푸른 바다는 기억한다…홍어? 아니 고래의 섬 2019-05-26 15:06:10
포경업이 따로 없었다. 1905년 러일전쟁 승리 직후부터 일본은 한반도 근해에서 고래잡이 독점권을 장악했다. 일제에 의해 한반도 바다에서 본격적인 포경업이 시작된 것이다. 일제 포경선들이 한반도 바다에서 포획한 고래는 1903년부터 1907년까지 1612마리, 1911년부터 1944년까지 6646마리, 도합 8259마리다. 이 중...
"야스쿠니에 전범과 합사된 아버지 빼달라" 유족소송 28일 결론 2019-05-26 07:11:00
합사자 명부만 있다. 신사에는 태평양전쟁뿐 아니라 청일전쟁·러일전쟁 등 다양한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도 합사돼 있다. 조선 의병을 토벌하다 숨진 일본 군인들도 합사자 명부에 있는데, 한반도 출신 징병자들이 이들과 함께 합사된 셈이다. 야스쿠니신사는 종교 시설 이상으로 극우세력이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제국...
1923년 지은 근대 석조건물 '인천우체국' 활용 방안은 2019-05-18 07:00:01
이 청사를 새로 지어 이전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우리나라의 통신권을 박탈하고 국내 통신기관을 일본 우편국과 통합해 운영하던 때였다. 일본인들의 우편 송달 업무가 주를 이루던 인천우편국은 광복 이후인 1949년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인천우체국'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지금은 동...
[다시 읽는 명저] "自强과 동맹강화가 한반도 안전 수호" 2019-05-08 18:01:43
갑신정변(1884년), 청일전쟁(1894년), 아관파천(1896년), 러일전쟁(1904~1905년) 등을 거치면서 중국, 일본, 러시아를 오가며 줄대기 외교만 하다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다. 오락가락하는 외교 탓에 제대로 된 동맹국도 만들지 못했다. “힘이 약하면서 명분이나 이념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변고가...
[이 아침의 인물] 파나마 운하 건설 주도 美 루스벨트 대통령 2019-05-03 17:11:52
그는 러일전쟁 후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 공로로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0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그는 1912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했지만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에게 패했다. 이후 집필 활동을 이어가던 루스벨트는 1919년 1월 6일 뉴욕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장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