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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부터 워싱턴국립미술관까지…미술관 설계 일인자 I.M.페이 2019-05-17 10:59:58
설계했다. 페이는 한국과도 여러 인연이 있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아들 이구는 페이 건축사무소에서 일했으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설계에 참여한 고(故) 이광노 건축가 또한 제자다. 뉴욕의 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 청사 설계도 페이 작업이다.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설계자 이오 밍 페이 102세로 별세 2019-05-17 08:11:33
통신은 평가했다. 생전 그는 대한제국 황실과도 인연을 맺었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아들 이구는 195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이오 밍 페이의 회사에 취직했다. 이구는 이곳에서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를 만나 결혼했다. kind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이방자 여사 30주기와 한일 신시대 2019-04-23 08:00:06
뒤면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본명이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인 그는 1920년 영친왕 이은(李垠)과 결혼한 뒤 남편 성을 쓰는 일본 풍습에 따라 리마사코가 됐다. 이를 한국식으로 읽은 이름이 이방자다. 일제는 일본 황족과 조선 왕가의 혼인을 통해 내선(內鮮) 융화를...
조선총독부 체신국 터, 82년 만에 서울 시민 품으로(종합) 2019-03-28 17:33:06
개관했다. 전시관 부지는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헌황귀비의 사당 덕안궁이 있던 곳이다. 1937년 일제가 이 자리에 4층 높이 총독부 체신국을 지으면서 덕수궁-성공회성당-서울광장을 연결하는 경관축을 빼앗겼다. 서울시는 일제가 훼손한 세종대로 일대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해 2015년 국세청 별관으로 쓰이던...
설립 120주년 우리은행…우리금융그룹으로 새 역사 쓰다 2019-03-28 15:25:27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은행장으로 취임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대한천일은행의 이름은 ‘조선상업은행’이 됐고, 1950년 ‘한국상업은행(韓國商業銀行)’으로 은행명이 변경됐다.우리은행의 또 다른 뿌리는 ‘한일은행’이다....
조선총독부 체신국 터, 82년 만에 서울 시민 품으로 2019-03-28 11:15:00
서울 도시건축전시관 자리는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헌황귀비의 사당 덕안궁이 있던 곳이다. 1937년 일제가 이 자리에 4층 높이 조선총독부 체신국 청사를 지으면서 덕수궁-성공회성당-서울광장을 연결하는 경관축이 막혔다. 서울시는 일제가 훼손한 세종대로 일대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해 2015년 국세청 별관으...
[3ㆍ1운동.임정 百주년](49) 임시의정원의 여성 의원 7인 2019-03-19 06:00:06
양 선생은 1917년 일본 유학 시절 일제가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과 일본 황족 마사코(方子)의 정략결혼을 추진하자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양 선생은 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된 후 상하이와 부산을 오가며 군자금을 모집했으나 모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1년이 채 안 돼 귀국했다. 이후 호주로 건너가 유학을 하고...
'조상제한서'의 몰락…반세기 '은행 不死' 신화 무너지다 2019-03-08 17:36:05
1899년 문을 연 대한천일은행에서 출발했다.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 은행장을 맡기도 했다.미 군정기엔 두 곳이 늘어 ‘4개 시중은행’이 성업했다. 조선총독부가 1929년 세운 조선저축은행(현 sc제일은행)과 1932년 설립한 조선신탁(현 우리은행)이 일반은행으로 합류했다. 그전까진 조선식산은행(현 산업은행)...
[이 아침의 인물] 비운의 조선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 2019-01-25 17:53:13
남기고 실종되자 상태는 더 악화됐다. 실종된 딸은 찾지 못하고 사망 처리됐다.한국에선 잊혀지고 일본 남편에게선 버림받은 덕혜옹주가 귀국하는 데는 도쿄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김을한의 역할이 컸다. 덕혜옹주는 1989년 타계하기 전까지 창덕궁 낙선재에서 영친왕의 부인인 이방자와 여생을 보냈다.홍윤정 기자...
한일병합은 日·러·美·英 동조의 결과물…고종의 無知도 패망 재촉 2019-01-11 17:39:31
일본 황제는 한국 황제와 그의 일족을 일본 황족(皇族)에 준하는 왕공족(王公族)으로 대우하고, 매년 옛 황실재정에 준하는 규모의 세비를 지급했다. 1926년 순종, 즉 제1대 이왕이 사망하자 일본에 체류하던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이 제2대 이왕에 즉위했다. 열성조에 올리는 종묘사직의 제사도 1945년 8월까지 면면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