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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긱 경제 (Gig Economy) 2016-07-06 17:35:55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1947년 미국 사업가 윌리엄 러셀 켈리는 젊은 전업주부인 중산층 백인 여성이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중개하겠다는 광고를 신문에 게재했다. 이 광고가 나오자마자 수많은 기업과 전업주부로부터 문의가 쇄도했다. 기업들은 여성의 시간제 노동을 선호했으며 여성들도 이...
[천자 칼럼] 부천의 구청 폐지 2016-07-05 17:07:03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대도시의 행정조직은 나라마다 많이 다르다. 서울에는 25개 자치구(區)가 있지만 뉴욕은 5개 버러(borough)로 나눠진다. 도쿄는 23개 구로 구성돼 있다. 신주쿠·시부야 같은 지명이 그렇다. 자치 방식도 제각각이다. 가령 맨해튼 브루클린 같은 뉴욕의 버러에는 구의원이 없고...
[천자칼럼] 면책특권 2016-07-04 18:01:03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 실정법상 처음규정된 것은 그 유명한 권리장전에서였다. 영국 역대 왕조 국왕과 하원의원들 간의 오랜 투쟁은 1688년 명예혁명으로 끝을 맺었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1689년 권리장전이다. 권리장전 제9조는 ‘의회에서의 발언과 토론, 의사절차의 자유는...
[천자 칼럼] 엘리 위젤과 '나이트' 2016-07-03 17:41:00
[ 권영설 기자 ] “어둠이 우리를 에워쌌다. 바이올린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율리에크의 영혼이 바이올린 활이 된 것 같았다. 이루지 못한 그의 희망이, 숯처럼 새까맣게 타버린 과거가. 사라져버린 그의 미래가.”어제 타계한 유대계 미국 작가 엘리 위젤(1928~2016)이 1954년에 쓴 회고록...
[천자 칼럼] 하이디 토플러 2016-07-01 17:59:21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앨빈 토플러가 아내 하이디 토플러(원이름 아델라이데 엘리자베스 패럴)를 만난 건 1948년 뉴욕대(nyu) 앞 워싱턴스퀘어 공원에서였다. 앨빈이 20세, 하이디가 19세 때였다. 하이디는 nyu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했으며 앨빈 역시 nyu에서 영어를 전공했다. 앨빈은 폴란드계...
[천자칼럼] 미래학의 계보 2016-07-01 00:09:21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허버트 조지 웰스가 소설 《타임머신》을 발표한 것은 1895년이었다. 타임머신은 시간을 여행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그린,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던 작품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독일이 장차 군국주의로 바뀌고 유럽연합(eu)이 만들어지며 도시민들은 도심에서 교외로 빠져나갈...
[천자칼럼] 앨빈 토플러와 한경 2016-06-30 18:05:01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앨빈 토플러가 대학시절 기계수리와 용접공으로 5년간 일한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육체노동에 의한 부의 창출보다 지식이나 정보에 의한 가치를 중시하던 그로선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가 몸소 체험한 노동의 중요성은 그의 저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토플러는 신문기자도...
[천자 칼럼] 8촌 2016-06-29 17:29:57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신라 김유신은 자기 여동생의 딸과 결혼했다. 진흥왕의 부인은 사촌 누나였다. 고려 광종은 이복남매와 혼인했다. 근친결혼이 금지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다. 중국의 유교이념을 받아들여 성(姓)과 본(本)이 같은 사람끼리의 혼인을 법으로 금했다.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처럼 같은...
[천자칼럼] 영국의 해체 2016-06-28 17:37:58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영국의 정식 국호는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다. 줄여서 ‘united kingdom(연합왕국)’. 본토인 브리튼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북아일랜드로 구성돼 있다. 이런 영국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계기로 5년 후엔 분리될 수도...
[천자칼럼] 6·25 비화 백두산함의 승전 2016-06-27 17:38:00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우리에게 배를 주소서. 전투함이 단 한 척도 없으니….” 광복 후 분단과 가난으로 피폐했던 1949년. 낡은 목선과 소형 상륙정밖에 없던 해군에게는 전투함이 절실히 필요했다. 손원일 제독과 각급 장교, 수병들이 월급의 5~10%를 떼고, 부인들은 재봉틀 수십대를 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