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가 뭐길래…루이비통-티파니 인수 깬 근거 됐나

입력 2020-10-01 16:23   수정 2020-10-01 16:30


거대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에 매기는 ‘디지털세’ 도입을 놓고 세계 각국 간 신경전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이번엔 기업 인수합병 거래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명품 패션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최근 미국 보석업체 티파니 인수 계획을 중단한 이유로 '디지털세 무역분쟁'을 들었다. 내년 초 프랑스와 미국간 관세 분쟁이 예정돼 있어 연내엔 인수를 하지 못하겠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프랑스가 지난 7월 자국 내 디지털세를 도입하자 보복 조치를 내놓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국가 간 관세가 아니라 특정 국가의 자체 세금 제도 도입이 무역 갈등으로 번지는 일은 이례적이다. 디지털세가 뭐길래 각국 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것인지, 쟁점은 무엇인지 등을 알아봤다.
디지털세란
디지털세는 해당 국가 내 디지털 서비스 매출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기업의 매장이나 공장 대신 ‘디지털 사업장’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디지털 서비스로 번 돈만 과세 대상으로 잡힌다. 예를 들어 애플의 경우 앱스토어(응용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온라인상의 콘텐츠 장터)에서 번 돈 등에 대해 디지털세를 내야 한다. 앱스토어가 앱 개발자와 이용자 간 플랫폼으로서 디지털 서비스를 중개해 매출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반면 애플이 아이폰을 제조·판매해 올린 매출은 디지털세 대상이 아니다.

디지털세는 이전엔 없던 과세 방식이다. 디지털세는 제도를 도입한 나라에 기업 본사나 공장이 있든 없든 디지털 서비스 매출에 따라 세금을 물린다. 디지털세는 법인세 등 기존 세금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별도로 부과된다.
도입 배경은
프랑스 등은 거대 IT 기업이 각국에 고정사업장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세금을 회피한다며 디지털세를 추진하고 있다. 통상 IT 기업은 제조기업보다 세금을 적게 낸다. 현행 국제 조세 조약상 각국은 고정사업장과 유형자산을 주요 근거로 기업에 과세하기 때문이다. 한 제조기업이 아시아 본부를 싱가포르에 두고 있어도 말레이시아에 공장이나 매장이 있다면 그에 따른 재산세를 낸다. 물류 이동 등 매출을 내는 과정에도 세금이 붙는다.

반면 IT 기업은 그렇지 않다. 서비스가 인터넷망을 이용해 오가기 때문에 국가마다 생산?판매 시설을 짓지 않고도 국경을 넘어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데이터나 지식, 기술 특허 등 무형자산에 주로 의존하다 보니 과세 근거도 적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에 진출한 IT 기업의 평균 실효세율(매출 대비 납부세액의 비율)이 9.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제조기업 평균 실효세율(23.2%)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왜 프랑스vs미국 구도가 됐나
프랑스는 작년 7월 세계 최초로 디지털세를 제도화했다. 그간 EU 역내에서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에 밀려 IT기업들에 세금을 부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U 규정상 EU 역내에 진출한 기업은 유럽 전역에서 매출을 내더라도 회원국 한 곳에만 본부 법인을 두고 세금을 내면 된다.

자국 IT 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다. 프랑스는 2011년 온라인 광고 비용의 1% 정도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안을 도입했다가 1년 만에 이를 철회했다. 당초 온라인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 등을 겨냥했지만, 결과적으로 자국 중소 광고업체의 수입만 크게 줄어서다. 이후 대안으로 나온 게 디지털세다.

미국은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디지털세 부과 대상이 되는 주요 IT기업이 모두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디지털세에 반대 목소리를 올리고 있다. ‘무역법 301조’라는 강수도 꺼냈다. 미국 정부가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 제도나 관행에 대해 관세 부과 등 보복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디지털세가 미국 기업을 겨냥해 미국에 차별적이라고 해석될 경우 경제 제재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미국은 프랑스가 디지털세를 도입한 지난 7월 화장품, 비누·핸드백 등 프랑스산 제품 13억달러 어치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양국간 합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 내년 1월6일까지 관세 부과를 유예하기로 했다. 프랑스도 일단 미국의 IT 기업에 대한 디지털세 과세를 1년 유예하고 디지털세 관련 논의를 벌이겠다고 응답했다.

글로벌 논의 어디까지 왔나
세계 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디지털 거래 수익 과세 체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당초엔 지난 7월 초안을 짜고, 연내엔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방침이었으나 주요국간 이견에 진전이 크지 않다. OECD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 표준으로 통한다.

OECD 가이드라인 마련은 핵심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이 발을 빼면서 크게 흔들렸다. 미국은 지난 6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유럽 주요국가에 서한을 보내 디지털세 협상에 더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미국은 디지털세를 전체 기업에 의무적으로 부과하는 대신 각국이 선택적으로 세제를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이른바 '세이프하버 체제'다. 개별 국가가 기존 제도와 새로운 제도 중에서 유리한 것을 택하는 방식이다. 미국이 세계 각국 디지털세 도입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여지를 주는 제도다.

프랑스는 최근 이같은 제안을 거절한다고 밝혔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3일 “미국이 제안한 선택적 과세 방안은 더는 논의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프랑스 등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디지털세 가이드라인 마련까지는 상당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일단 미국과 협상을 재개하는 것 부터가 관건이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에 불리한 세금 제도 협상장에 다시 나올 가능성은 당분간 매우 낮다는게 주요 외신들의 전망이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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