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프리 삭스 교수 "한·중·일 협력하면 미·유럽과 대등"

입력 2021-01-29 13:12   수정 2021-01-29 13:31

“한국과 중국, 일본이 암울했던 전쟁의 역사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동북아시아가 미국·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인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강조했다. 한·중·일은 하나같이 경제 및 기술 강국이면서 서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는 것이다.

삭스 교수는 “바이든 정부가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런 조치만으로 경제 위기를 끝낼 수 없다”며 “오직 백신만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재정 지원이 실업 문제 등을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테스트를 확대하고 백신을 서둘러 배포하는 조치가 경제를 살리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설명이다.

삭스 교수는 “올해 미국 경제가 정상 궤도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백신 및 공중 보건 정책이 성공하지 못하거나 내부 정치 위기가 심화할 경우 회복 시기가 뒤로 밀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도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문제는 개발도상국까지 백신이 보급되려면 최소 1년 이상 걸린다는 점”이라며 국가별 경기 회복 속도가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경제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K자형 양극화 양상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삭스 교수는 “디지털에 익숙하고 고등 교육을 받은 계층은 일거리가 늘고 자산도 불었다”며 “반대로 사회적 약자들은 호된 재정적 불안과 실업에 시달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 부문이 포용적 정책을 확대하지 않는 한 코로나 극복 이후에도 이런 경향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및 경제 정책에 대해선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삭스 교수는 “모든 정책이 불규칙했고 비이성적이었으며 반과학적이었다”며 “미국으로선 이번 정권 교체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정부와 다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문이다. 삭스 교수는 “무엇보다 국제적 협력에 방점을 둬야 한다”며 “팬데믹 종식뿐만 아니라 글로벌 녹색 성장, 디지털 경제 지속 등을 위해서도 여러 국가와 힘을 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분간 미·중 갈등이 불가피하겠지만 글로벌 위기 상황 속에서 고위급 회담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은 공동의 이익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바람직하고 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미·중 대립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이 중재에 나서는 방안도 강구하라고 조언했다. 삭스 교수는 “한·일은 신냉전이 매우 위험하고 불필요하며 세계에 위협적이란 사실을 미국 정부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한·일 양국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지만 중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역내 또는 국제적 충돌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삭스 교수는 “중국으로선 심각한 환경 위기를 해결하고 유럽과 아시아, 미국과 개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지속 발전의 전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삭스 교수는 “한·중·일이 어두웠던 전쟁의 역사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상호 이익이 무척 클 것”이라며 “동북아시아는 미국·유럽과 더불어 명실상부 세계 3대 기술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작년 최종 타결에 성공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잘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RCEP은 한국과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 및 아세안 10개국이 가입한 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삭스 교수는 “RCEP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서로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라며 “이웃 국가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할 만하다”고 했다.

삭스 교수는 “저개발 국가였던 한국은 첨단 디지털 경제로 거듭난 대단한 성공 사례”라며 “성장과 분배 정책 사이의 논란이 있지만 복지를 강화하기에도 좋은 시점이란 사실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보편적 기본소득 정책에 대해선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어느 사회이든 건강하고 능력 있는 성인들이 정부 보조금에 의지해 살아가기보다 일하는 모습을 기대할 것”이라며 “재정이 해야 할 일은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다만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를 버느냐에 관계 없이 의료, 교육, 안전, 디지털 접근성 등이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삭스 교수와의 인터뷰 요약
▷올해 미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팬데믹이 결국 통제될 겁니다. 미국 정부는 녹색 성장에 착수하고,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두 가지 위험이 있는데요, 백신 및 공중 보건 정책이 성공하지 못하거나 내부 정치 위기가 심화하는 겁니다. 두 가지 모두 현실화할 수 있지만 역시 정상적인 경기 회복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글로벌 경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일까요.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코로나를 극복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다만 코로나 백신이 개발도상국까지 널리 보급되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릴 겁니다. 또 현재 배포 중인 백신들은 여전히 효능과 안전성이 좀 더 검증돼야 합니다.”

▷미국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연달아 쏟아낸 게 큰 도움이 되었겠군요.

“미 정부의 재정 지출은 상당한 난관을 푸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실업 문제가 대표적이지요. 하지만 이번 경제 위기를 이런 부양책이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유일한 해법은 전염병 종식입니다. 코로나 테스트와 추적, 백신 대량 배포 등 정부의 적극적인 보건 조치가 결정적이란 얘기입니다.”

▷양극화를 뜻하는 ‘K자형 경제’가 심화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만.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는 꽤 오랫동안 K자형 양상을 보여 왔습니다. 디지털에 익숙하고 고등 교육을 받은 계층은 코로나 사태 후 더 바빠졌고 자산도 늘어났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실업과 재정 불안을 경험했지요. 공공 부문이 디지털 사회의 부와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포용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는 한 이런 경향이 계속될 겁니다.”

▷미·중 갈등이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지속될 것으로 보시나요.

“전망보다 당위성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공동의 이익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진지한 협상에 나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양국은 고위급 협의을 시작해야 합니다. 바람직한 일이고, 분명 가능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외 정책은 비이성적이고 위험했습니다.”

▷중국 경제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장기 전망은 좋습니다. 합리적인 정책과 진보된 기술, 강력한 교육 시스템, 안정된 인구 구조 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역내 또는 국제적 충돌을 피해야 합니다. 심각한 환경 위기를 해결하고 유럽과 아시아, 미국과 개방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한국은 경제·안보 측면에서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경제 부문에선 중국에 더 의존하고 있지요. 미·중 대립이 심화하면서 어려운 입장에 처했습니다.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나라는 미·중 간 신냉전이 매우 위험하고 불필요하며 (세계에) 위협적이란 사실을 미국 정부에 설명해야 합니다. 한·일이 중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럼 한·일 양국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G20(주요 20개국)이 작년 말 73개 저소득 국가의 채무 상환 시기를 늦춰주는 조치를 취했는데요.

“일시적인 조치일 뿐입니다. 훨씬 강력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한 가난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개도국 중 대부분이 사회기반 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자본이 부족합니다.”

▷트럼프 정부가 막을 내렸는데, 외교 및 경제 정책에서 잘했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꼽는다면.

“트럼프 정책들은 불규칙했고 비이성적이었으며 반과학적이었습니다. 일방적이기도 했지요. 유일한 장점이라면 지난 20일에 물러났다는 것뿐입니다.”

▷바이든 정부가 앞으로 4년 간 적극 추진해야 할 정책이 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협력’에 방점을 둬야 합니다. 팬데믹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력이 대표적이죠. 글로벌 녹색 성장 및 디지털 경제 지속을 위한 협력과 저개발 국가들이 현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협력을 추구해야 합니다.”

▷경제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습니다만.

“한국은 첨단 디지털 경제로 성공한 대단한 사례입니다. 한국판 뉴딜 역시 강력한 정책이지요. 한국의 교육 제도는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복지를 강화하기에 좋은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을 돕고 휴식·휴가 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내에서 이웃 국가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증진시키기를 바랍니다.”

▷작년 국제회의에서 기본소득 제도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놨는데 그 이유는.

“우리 사회는 건강하고 능력 있는 성인들이 정부 보조금에 의지해 살아가기보다, 일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 일은 안전하고 품위를 지킬 수 있으며 합리적 보수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합리적 수준의 휴가와 여가 시간도 꼭 필요하고요. 사회 구성원은 얼마를 버느냐에 관계없이 의료, 교육, 안전, 디지털 접근성 등이 보장돼야 합니다.”

▷한·일은 역사적으로 갈등을 빚어 왔습니다. 관계 회복을 위해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한국과 일본, 중국은 모두 경제 및 기술 강국입니다. 3개 국가는 서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지요. 만약 3개국이 과거 어두운 전쟁의 역사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상호 이익이 무척 클 겁니다. 동북아시아는 미국 유럽과 더불어 명실상부 세계 3대 기술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녹색 성장 및 디지털 경제에선 선두로 자리매김할 거구요. 이처럼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아세안과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동북아 3개국을 하나로 묶는 RCEP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서로의 협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미·중이 과거처럼 협력적 관계로 복귀할 수 있다면 문제를 푸는 게 훨씬 쉬워질 겁니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누구
미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고, 28세에 같은 학교의 최연소 정교수로 임용됐다. <빈곤의 종말> <커먼 웰스: 붐비는 지구를 위한 경제학> <지속가능한 발전의 시대> 등을 저술한 세계적 석학이다.

1986년부터 5년 간 볼리비아 대통령의 경제 교사를 맡아 연 4만%대 인플레이션을 10%대로 끌어 내렸다. 옛 사회주의 국가이던 폴란드에 시장 경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흔히 로렌스 서머스, 폴 크루그먼과 함께 ‘경제학계 3대 수퍼스타’로 불린다. 2002년 코피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새천년개발목표(MDG)를 세웠으며, 지금까지 유엔의 지속가능 개발 사업을 돕고 있다.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린 고금리 처방을 강력 비판해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컬럼비아대 지속가능개발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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