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일본에 질렸다…개미들 '탈출 러시' 무슨 일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2-12-18 07:55   수정 2022-12-18 10:02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인베스트 인 기시다 데스(Invest in Kishida です)"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지 씨티에서 한 연설이다. "안심하고 일본에 투자하십시오. 일본 시장은 성장을 계속해서 이어가는데다 안정적이기까지 합니다."라고 설명한 뒤 '인베스트 인 기시다(기시다가 이끄는 일본에 투자해 달라)'라고 영어로 마무리를 했다.


하지만 끝에다 일본어로 '~입니다'를 뜻하는 존칭 어말어미 '데스(です)'를 붙이는 바람에 '인베스트 인 기시다 데스'가 돼 버렸다. 영어로 '데스(death)'는 죽음을 의미한다. 연설을 듣는 영국 금융인들에게는 뜬금없이 '기시다의 죽음에 투자하세요'로 들릴 수 있는 장면이었다.

물론 현장에 있던 영국인 대부분은 기시다 총리가 말하려는 의도를 이해했고, '인베스트 인 기시다 데스'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일부 일본 증권가 관계자는 일본어 어말어미가 붙은 이 영어 문장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오늘날 일본의 고민이 함축돼 있다고 평가한다.

올들어 일본의 부가 급속히 해외로 유출되는 '캐피털 플라이트(자본도피)'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이가 더욱 확대되고 엔화 가치가 한때 32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폭락한 영향이다.



일본의 부가 얼마나 빠져나갔는지는 교역손실로 확인할 수 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가격과 교역조건 변화를 반영한 실질 국내총소득(GDI)을 뺀 수치다. 올해 1분기 11조5000억엔(연율 환산치) 어치의 부가 일본을 빠져나갔다. 2분기 16조엔으로 늘어난 유출 규모는 3분기 19조7284억엔(약 189조원)으로 통계 비교가 가능한 1994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본의 자본도피는 작년 1분기 이후 7분기째 멈추지 않고 있다. 닛세이경제연구소의 사이토 다로 경제조사부장은 "7분기 동안 약 25조엔 규모의 부가 빠져나가면서 일본 기업과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졌다"며 "낮아진 실질구매력이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는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자본도피를 주도하는 세력은 개인이다. 은행 예금금리는 사실상 제로인데 엔화 가치까지 급락하니 자산을 엔화로 보유해서는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엔화 자산을 팔아서 달러 등 해외 자산을 사들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통계가 지난 10월 나왔다.

일본 금융선물거래업협회의 외환거래 매매동향에 따르면 9월 한 달간 일본 개인들의 외환 거래규모는 1098조엔으로 사상 처음 1000조엔을 넘어섰다. 종전 최대였던 지난 6월의 955조엔을 143조엔 웃돌았다. 유로와 파운드 등 다른 통화를 포함한 전체 외환거래 규모 역시 1398조엔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개인투자가들의 1일 평균 외환거래 규모는 약 60조엔(약 4330억달러)이다. 일본 시중은행들의 1일 평균 외환거래 규모는 55조엔(약 3969억달러)다. 일본 개인투자가들이 외환을 본업으로 하는 시중은행보다 더 많은 외화를 사고 판 것이다. 한국 외환시장의 1일 평균 거래액은 553억달러로 일본 개인의 8분의 1 수준이다.



개인 외환거래가 급증한 시점은 일본은행이 '나홀로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하면서 미일 금리차가 급격히 확대된 3월부터다. 9월 한 달간 개인들의 엔·달러 거래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배 급증했다. 올 상반기 엔·달러 거래액(5162조엔) 역시 지난해보다 2.8배 늘었다.

일본인들이 엔화를 버리고 달러 등 다른 나라 통화로 갈아타는건 일본 경제가 그만큼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경제가 고꾸라진 건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회복속도는 크게 달랐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등 주요국 국내총생산(GDP)은 모두 작년 2~3분기에 코로나 이전 수준(2019년 4분기)을 회복했다. 반면 일본 GDP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시점은 경쟁국보다 1년 늦은 올해 2분기다.(최근 일본 2분기 GDP 개정치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올 3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또다시 전 분기 대비 연율 기준 -1.2% 역성장했으니 일본 경제는 여전히 코로나19의 충격에 휘청거린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 체질 변화를 주도해야 할 기업들도 무기력하다. 한때 중국에 역전될 것이라던 미국 경제는 구글과 아마존, 애플 등 정보기술(IT) 대기업의 혁신에 힘입어 굳건히 1위를 지키고 있다. 일본에는 이런 혁신 기업이 드물다.



경제산업성이 작년말 일본 기업 1만곳에 '기존에 없던 룰을 만들어서라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의향이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한 기업은 30%를 밑돌았다. "경영계획에 '시장을 창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라고 답한 소극적인 기업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다. 주요 7개국(G7) 최저 수준이다.

"정부를 압박해서라도 시대에 뒤처진 규제를 없애고,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겠다"는 적극파 기업은 37곳에 불과했다.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 37곳의 매출은 지난 10년 동안 연 평균 4% 증가했다. 나머지 일본 기업들의 매출은 연 평균 1% 늘어나는데 그쳤다.

GDP 회복 속도와 혁신형 기업의 숫자만 보더라도 일본인들이 자산을 일본에 그대로 둘 지, 미국으로 갈아탈지에 대한 답은 명백해 진다. 눈치빠른 외국인들은 진작에 일본을 떠났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도쿄증시 거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큰손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아베노믹스 장세(2013년 아베 신조 전 총리 내각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나타낸 시기)’가 진정된 2015년 이후 매년 일본 주식을 14조엔씩 팔아치우고(순매도) 있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의 트렌드를 보면 일본이 해외 투자가들에게도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점이 분명해 진다. 2019년 이후 일본 기업을 사들이는 해외 자금의 주체는 기업(SI)에서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같은 재무적투자자(FI)로 바뀌었다. 최근 일본 기업을 사들이는 해외 자금 가운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대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베인캐피털, KKR, CVC캐피털 등 PEF들이 일본 기업을 열심히 사들이고 있다.

일본 M&A 시장의 큰손이 기업에서 PEF로 바뀌는 의미는 뭘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글로벌 기업이 글로벌 전략을 펼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일본 기업이 줄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더 이상 일본에는 탐나는 기업이나 사업체가 없다는 것이다. 한 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일본 기업만 갖고 있는 기술과 제품이 줄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의 관심이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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