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처럼 벽·천장에 착…우주·전쟁 미래 바꿀 등반로봇

입력 2023-01-27 17:17   수정 2023-02-06 19:39

영화 ‘스파이더맨’ 주인공 피터 파커는 돌연변이 거미에게 물린 뒤부터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털이 돋아난다. 손에 붙은 물건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건물 외벽에 손을 가져다 대자 찰싹하고 달라붙는다. 스파이더맨이 된 그는 손발로 기어 벽을 타고 옥상까지 오른다.

벽은 물론 천장에 붙어 이동하는 ‘등반로봇(climbing robot)’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정거장 수리에 활용하기 위해 스파이더맨의 원리를 접목한 연구를 하고 있다. KAIST는 강한 자석의 힘을 이용해 건설현장 등에서 쓸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 고도화된 등반로봇은 정찰용으로 활용되며 미래 시가전의 모습까지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미세섬모로 15㎏ 버티는 흡착력

27일 과학계에 따르면 NASA는 등반로봇 리머3(LEMUR3) 개발을 완료하고 실증 실험 중이다. 등반로봇은 흡착력을 이용해 벽 또는 천장에 붙어 이동하는 로봇을 말한다. 등반로봇이 벽에 붙는 흡착력은 원리에 따라 크게 △반데르발스력 △전자기력 △정전기력 등으로 나뉜다. 반데르발스력은 아주 작은 분자들이 가까이 붙을 때 생기며 서로를 잡아당기는 힘이다. 개별적으로 봤을 때는 아주 작은 힘이지만 그 수가 늘어날수록 강해진다.

반데르발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영화에서는 스파이더맨이라면 현실에선 게코도마뱀이다.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길이 50~100㎛(마이크로미터), 지름 5~10㎛의 강모가 수백만 개 배열돼 있다. 각 강모에는 다시 수백 개에 달하는 지름 20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안팎의 미세한 섬모가 달려 있다. 미세한 섬모와 강모가 다른 물체의 표면에 붙으면 반데르발스력에 의해 흡착된다.

NASA는 리머3에 반데르발스력을 적용했다. 리머3는 무게 35㎏, 가로세로 0.8m 크기로 사족 보행한다. 각 로봇팔 끝에는 총 8개의 너비 10㎠ 타일이 달렸다. 각 타일 표면에는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털이 80㎛ 길이로 수백만 개 돋아 있다. 각 털은 반데르발스력을 발휘한다. 태양전지패널 등에 붙은 리머3 타일 하나당 최대 150N(뉴턴), 약 15.3㎏의 무게를 견딘다. NASA는 개발 중인 리머3를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외벽 수리용 로봇이나 화성·달 지형탐사용 로봇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전자기력·정전기력 등도 활용
자석이 철에 붙는 힘인 전자기력도 등반로봇용으로 주목받는 원리다. 박해원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철로 만든 벽을 빠르게 기어오르는 등반로봇 마블(MARVEL)을 만들고 관련 연구 성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로보틱스’ 작년 12월호 표지 논문으로 발표했다.

박 교수 연구팀은 마블의 발끝에 자기유변탄성체와 영전자석을 활용했다. 자기유변탄성체는 고무처럼 말랑말랑한 물질에 쇳가루 등 자기력과 반응하는 물체를 섞은 신소재다. 마찰력을 키우면서도 자기력을 가할 수 있다. 영전자석은 전자기력을 켜고 끌 때만 전기를 쓰는 자석이다. 에너지 효율이 일반적인 전자석에 비해 월등히 좋다. 실험 결과 마블은 직각 형태의 벽을 초속 70㎝의 빠른 속도로 기어올랐다. 직각 벽에선 45.4㎏, 동체가 천장에 뒤집혀 매달렸을 때는 54.5㎏의 무게를 견뎠다.

정전기력을 활용한 등반로봇도 개발되고 있다. 풍선을 옷에 비빈 뒤 머리 위로 올리면 머리카락이 달라붙는 힘과 관련됐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2019년 길이 4.5㎝, 무게 1.48g의 초소형 등반로봇 해머(HAMR-E)를 개발했다.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작은 형태의 등반로봇이다.

바퀴벌레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떠 만든 해머의 발끝에는 전자흡착 방식의 패드가 달려 있다. 전기가 흐르면 패드에서 정전기가 발생해 로봇이 벽과 천장에 달라붙는다. 연구진은 해머가 제트엔진이나 건설기계 등 인간이 직접 들어갈 수 없는 기계 내부로 들어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등반로봇의 활용 분야는 다양하다. 소형 군집화를 통해 시가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정찰용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리머3 초기 연구는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또 등반로봇이 벽에 달라붙는 힘과 관련한 연구는 군사용 드론이 구조물에 붙어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장시간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도 적용되고 있다.

박 교수는 “등반로봇은 작업자의 추락 또는 질식 우려가 있는 초대형 교량, 송전탑, 송유관 등 대형 구조물의 점검 수리 보수 등 다양하면서도 위험한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일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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