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이자 ‘역발상 투자’로 이름난 마이클 버리 사이언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4분기 중국 빅테크 주식 비중을 줄이고 소비재 종목들을 새로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 미국 종합 의류 회사 VF 코퍼레이션 등이 사이언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에 추가됐다. 지난해 말에 이미 알리바바, 징동닷컴 주식 일부를 매도한 만큼, 올해 초 중국 기술주 급등을 유발한 ‘딥시크 효과’는 누리지 못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버리 CEO가 이끄는 사이언자산운용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지난해 4분기 말 주식 보유 현황 공시(13F)에 따르면 사이언자산운용은 해당 분기에 알리바바(-5만 주), 징동닷컴(-20만 주), 몰리나 헬스케어(-5000주)의 주식 수를 줄였다. 특히 징동닷컴과 알리바바는 보유 주식의 각각 40%와 25%를 줄여 주목받았다. 럭셔리 헤어 케어 브랜드 올라 플렉스, 결제 처리 업체 시프트4페이먼츠, 중고 명품 온라인 거래 플랫폼 운영사 리얼리얼은 전부 매도했다.
징동닷컴 주식 절반가량 매도
빈자리는 또 다른 중국 테크 기업이 채웠다. 사이언자산운용은 지난 4분기에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 주식 7만5000주를 매수했다. 사이언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비중 9.39%로 적지 않다.
사이언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에서 중국 테크 기업은 여전히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이언자산운용은 2022년 4분기에 알리바바와 징동닷컴 주식을 처음으로 사들임으로써 중국 기업에 베팅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마이클 버리는 월가에서 몇 안 되는 중국 강세론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알리바바(16.42%), 바이두(13.61%), 징동닷컴(13.43%)은 각각 포트폴리오 비중 1~3위에 올라 있다. 다만 올해 초 ‘딥시크’발 중국 기술주 호황은 충분히 누리지 못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는 올해 들어서 3월 6일까지 64.74% 급등했고 징동닷컴은 같은 기간 28.31%, 바이두는 12.93% 올랐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난해 4분기 알리바바 주가는 20%, 징동닷컴 주가는 13%가량 하락했다.
소비재 산업에 대한 낙관적 시각도 눈에 띈다. 사이언자산운용은 4분기에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 주식 10만 주를 매수해 포트폴리오 비중 4위(9.68%)에 올렸다. 반스, 노스페이스, 슈프림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종합 의류 회사 VF 코퍼레이션과 럭셔리 아웃도어 브랜드 캐나다구스도 발탁됐다.
에스티로더 회복 전망하나
에스티로더는 최근 1년간 주가가 반토막 나며 부진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버리 CEO는 실적 개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에스티로더 주식을 저점 매수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스티로더는 지난 2월 4일 2025 회계연도 2분기(2024년 10~12월) 실적발표에서 3분기(2025년 1~3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12%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화장품 원료 가격이 상승했고 미국 행정부의 광범위한 관세 부과가 회사 운영에 불확실성을 더한다고 짚었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 면세점 시장에서 매출이 급감한 것도 실적 부진의 요인이다.
대신 매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최대 70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계획을 동시에 발표했다. 전 세계 직원 6만2000여 명의 중 11% 규모다.
캐나다구스는 지난 2월 2025 회계연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동일 매장 매출이 전년 대비 6.2% 감소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매출 하락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2025 회계연도 연간 가이던스를 하향 조정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캐나다구스의 제품 약 70%가 캐나다 현지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미국이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지난해 분기마다 보유 종목 수를 줄였던 사이언자산운용은 4분기에 종목 수를 늘렸다. 지난해 3분기 8개에서 4분기 13개로 증가했다. 그런데도 다른 자산운용사보다 보유 종목이 적고 상위 10개 종목 집중도(93.67%)도 높은 편이다.
4분기 기준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종목은 알리바바, 바이두, 징동닷컴, 에스티로더, 몰리나 헬스케어, 핀둬둬, HCA 헬스케어, 브루커 바이오사이언스 코퍼레이션, VF 코퍼레이션, 마그네라, 오스카헬스, 아메리칸 코스탈 인슈어런스, 캐나다구스다. 주식 포트폴리오 시장 가치는 7740만 달러로 이전 분기(1억3000만 달러) 대비 40% 축소됐다.
마이클 버리는 누구?
마이클 제임스 버리는 미국의 투자자이자 헤지펀드 매니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고 당시 상황을 담은 영화 <빅쇼트>가 2015년 개봉하면서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마이클 버리는 캘리포니아대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벤터빌트대 의과대학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스탠퍼드대에서 신경학과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퇴근 후에는 투자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한 투자였지만, 그는 빠르게 투자 분야에서 이름을 알렸다. 온라인 포럼 등에 적극 참여하고 블로그에 여러 인사이트를 공유하면서 자신의 투자 전략과 통찰력은 다른 사람들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
2000년 마이클 버리는 초기 자본 100만 달러로 헤지펀드인 사이온캐피털을 설립했다. 그의 펀드는 설립 초기부터 뛰어난 성과를 냈다. 200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11% 하락한 반면, 그의 펀드 수익률은 55%에 달했다. 닷컴 버블을 활용해 과대평가 된 기술주를 공매도하면서 큰 이익을 얻었다.
2005년경 그는 주택 시장에 거품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모기지 담보 증권을 전략적으로 공매도했다. 그 결과 금융위기에 8억 달러에 가까운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한경제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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