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중국 기나라에 살던 한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뜻하는 고사성어 ‘기우(杞憂)’는 여기서 유래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를 손가락질할 수 없게 됐다. 서울 등 도심의 멀쩡한 도로에 갑자기 구멍이 뚫려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싱크홀(땅 꺼짐) 사고가 최근 잇따르고 있어서다.
싱크홀은 상하수도관 노후화와 제대로 된 지질조사 없이 이뤄지는 지하 개발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관리 부실에 따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다. 지하 공간 개발이 점점 늘어나는 데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이 오면서 시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선 지름 20m, 깊이 20m의 커다란 싱크홀이 발생해 3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했다. 4월엔 경기 광명 신안산선 공사 현장의 지하터널이 붕괴해 1명이 숨졌다. 최근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에서 사고가 많아진 것도 불안감을 더한다. 올해 들어 지반 침하 사고(총 45건)의 절반 이상이 서울(21건·31.8%)과 경기(14건·21.2%)에 집중됐다.
싱크홀 발생 원인은 여러 가지다. 석회암이 빗물이나 지하수 등에 녹아 구멍이 생기는 자연발생적 사고가 있다. 기반암이 석회질로 이뤄진 미국 플로리다주 등에서 이런 유형의 사고가 잦다. 1981년 윈터파크시에서 직경 98m의 구멍이 뚫린 적도 있다. 하지만 국내 지질은 주로 화강·편마암으로 이뤄져 있고, 석회암 지대가 적다. 지하시설물 이상에 따른 땅 꺼짐 비율이 높은 배경이다. 노후 상하수도 손상이 대표적이다. 이음 부위에 틈이 생기거나 관이 깨져 누수가 발생하면 주변 흙이 물에 휩쓸려 내려가 ‘공동’(빈 공간)이 생기는 식이다.지하안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7년간 하수관이나 상수관 손상으로 지반 침하가 발생한 비율은 51.7%나 된다. 서울만 따로 떼서 살펴보면 이 비율이 63%(최근 10년 기준)로 더 높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총하수관 17만2496㎞ 중 7만5837㎞(44%)가 20년 이상 된 노후 관로다. 30년 이상 비율도 26%(4만4633㎞)나 됐다. 지하시설물에는 상하수관 외에 열수송관, 지하차도, 공동구(전선, 수도관, 가스관, 전화 케이블 등을 함께 수용하는 지하 터널) 등도 있다.
지하철 등 굴착 공사로 생기는 지반 침하는 발생 빈도는 낮지만 피해 규모가 크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10년간 서울에서 굴착 공사로 인한 싱크홀 27건 중 11건(사망 2명, 부상 15명)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상하수관 손상 등 지하시설물로 인한 사고는 총 163건으로 인명 피해가 12건(부상 15명)이었다. 사고 건수 대비 인명 피해 발생률을 살펴보면 굴착 공사장(40.7%)이 지하시설물(7.4%)의 다섯 배를 넘는다. 이번 명일동 싱크홀 사고 근처에서도 수도권 지하철 9호선 연장선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부산도시철도 사상~하단선 건설 구간 인근에서 최근 2년간 14차례의 크고 작은 싱크홀이 발견됐다.지하철 등 지하 공간 개발로 다량의 유출 지하수가 발생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이렇게 되면 지하 수위가 내려가 지반의 부등(불균등) 침하와 공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굴착을 진행하면서 싱크홀 위험 지역이 계속 변하는 만큼 1~2m 전진할 때마다 지반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명일동 사고에서 사용된 ‘나틈(NATM)’ 공법이 문제로 지목되기도 했는데, 공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면서도 “발파 등에 따른 충격으로 붕괴가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보강 공사를 지속해서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초대형 싱크홀이 발생하면 아파트 등 고층 건물이 무너져 대규모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싱크홀은 지반 위 흙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기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하 공사를 할 때 지반까지 뿌리를 내리는 고층 건축물은 공동이 생길 여지가 없다는 뜻”이라며 “따라서 대심도 터널 등 공사 현장이 깊을수록 더 위험하다는 생각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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