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 멘토'로 불렸던 모리스 옵스펠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7월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해 “협상은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은 원하는 만큼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매달 혹은 분기마다 새로운 요구를 할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자국에 유입되는 자금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놨다.
옵스펠드 선임연구위원은 3일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주최한 ’2025 G20 글로벌 금융안정 컨퍼런스‘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세계적 석학인 옵스펠드 선임연구위원은 1979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14년엔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을 맡아 오바마의 멘토로 통했다. 이듬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지금은 미국 싱크탱크인 PIIE의 선임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이재명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해선 “적자가 늘어난다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자원(재정)이 제대로 사용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짚었다. 한국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들어섰는지에 대해선 "당시 일본보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더 좋다"고 평가했다. 기자회견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지난 7월 한미 관세 협상이 가까스로 타결됐는데.
"한국이 무척 어려운 상황에서 협상이 이뤄졌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 달리 이번엔 미국 쪽에서 새로운 요구가 많았다. 한국은 미국의 관세 인하를 얻아내기 위해 비관세장벽에서 여러 양보를 했고, 미국 내에도 투자하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내가 우려스러운 건 합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투자를 할지, 얼마나 투자할지, 수익은 어떻게 분배할지, 투자는 누가 담당할지, 이런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특히나 미국은 디테일한 협상 내용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을 공개하는 식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앞으로 한미 관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협상 내용 중엔 조선업 분야처럼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세부 사항은 부재하다. 앞으로 문제 상황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트럼프 1기 때는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같은 협상가가 있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협상이 이뤄졌고, 굉장히 숙고 끝에 집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이 새로운 요구를 가지고 협상테이블에 오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긴다. 한국이 협상 내용을 집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국 쪽의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지금 이런 상황은 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여러 나라가 다들 불안한 여건 속에서 협상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한국 협상가들이 최선을 다해서 협상에 임하겠지만, 상황은 어려울 것 같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일차적으로는 마무리됐지만, 앞으로 “미국이 환율 수준을 조정하는 ‘제2의 플라자 협의’를 각국에 요구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는데.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과연 ‘마무리’된 게 맞나? ‘합의’라고 표현은 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합의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은 언제든지 새로운 요구를 제시할 수 있다. 환율 문제 해결도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다. 미국이 고관세를 부과하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데, 미국은 무역적자 해결을 위해 원화 가치가 오르길 원한다.
미국은 매달 혹은 분기마다, 미국이 원하는 만큼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새로운 요구를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파악한 것보다 더 많은 관세장벽이 있다”던가, “아직도 무역 관계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면서 한국이 더 많은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
미국이 무역적자 감축을 위해 달러 가치를 떨어트리는 ‘마러라고 합의’의 현실성에 대해 나는 비관적으로 본다. 마러라고 합의에 따르면 많은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포기해야 하고, 물가안정 목표도 포기해야 한다. 달러에 연동된 자국 통화도 불안정해질 것이다. 여러 국가 입장에서 이 부분은 ‘레드라인’을 넘는 행위다.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나도, 그 누구도 확실히 말하긴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에 유입되는 자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달러 가치를 확실히 낮출 수 방법이어서다. 또 해외에 대한 채무 자체를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면 미국 경상수지를 줄일 수 있다."
▷최근 한국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는데, 세수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총지출이 작년보다 8.1% 증가했다. 한국의 국가채무 수준 확장 속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수준은 매우 양호하다. 여러 국가가 한국 수준의 부채비율을 희망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급격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그에 대한 지원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인구구조는 더 불안해질 것이다.
게다가 글로벌 금리도 계속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도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있고, 한국도 결국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재정이 불안해지면 금리가 추가 상승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더 많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 상황이 양호하다고 해서 내일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계속 주의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재정 적자가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추가적 지출이 생산성과 성장률 제고를 위해 활용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발표했듯,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률을 높이게 되면 재정부담의 지속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사실 더 중요한 질문은, 과연 이런 자원들이 잘 사용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제대로 된 목표를 설정하고 이 목표를 위해서 효율적으로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 글로벌 공공재를 점차 제공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미국에 대응해 여러 나라가 협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현실성이 있다고 보나.
"미국은 여러 부분에서 공공재 제공을 현저히 줄여나가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에 제공한 집단안보가 대표적이다. EU에 국방비 증액을 요구한 게 그런 모습이다. 기후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자금 지원도 철수했다. WHO는 글로벌 보건부문의 공공재다. 미국은 여러 분야에서 지원을 너무 많이 해왔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미국은 이런 문제에서 리더를 하지 않으려 하고, 다자구조에서 해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다른 국가들은 역내 구성원들과 관계를 돈독히 해야 미국발(發)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공공재를 잘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기후 대응에 있어서도 통합된 자세를 취해야 한다. 협력을 늘리는 건 각 국가에도 좋고, 세계적으로도 좋다.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CPTPP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좋은 결정이 될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미국과의 무역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이런 걸 모두 위협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반적인 것들이 무역전쟁이라거나,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긴 어렵다."
▷국가들 간의 협력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어떤 국가와 협력할 수 있나.
"한국은 이미 역내에서 매우 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마 아세안+3에 가입하는 게 매우 자연스러운 수순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세계 다른 국가들과 계속 협력관계를 늘려가야 한다. EU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무역협정을 맺는 이니시티브를 취하고 있다. 한국도 더 넓은 그물망을 던질 필요가 있다. 기존 무역 관계를 강화하고, 새 무역관계를 맺는 것에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한국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장기불황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지적이 있는데.
"한국이 장기불황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한국이 가진 취약점도 많다. 저출생이 대표적이다. 이 문제에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디플레이션 압력이 있을 것이다. 또 저성장과 역동성을 저해하는 늪에 빠질 수도 있다. 무역 부문의 문제도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가처분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너무 높다는 점도 문제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만큼이나 버블이 끼어있는 것 같진 않지만, 아직도 문제긴 하다.
다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아베노믹스’ 이전에 일본이 최악의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졌을 당시 통화정책을 통해 우리가 많이 배웠다는 점이다.
그 당시 일본의 문제는 물가안정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도 제대로 정의하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서 지금 한국은 당시 일본보다 훨씬 나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꼭 디플레이션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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