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반도체는 크게 연산을 담당하는 AI 가속기 칩과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나뉜다. AI 가속기 칩은 엔비디아가 80~90%를 차지하는 등 미국 기업이 시장 대부분을 점유한다.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대표적이다. HBM은 한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주요 플레이어다.
미국 정부가 미국 기업의 AI 칩 수출을 통제하는 방안이 시행되면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 각국 정부까지 미국 상무부 승인을 받아야 AI 가속기 칩을 구매할 수 있다. 엔비디아와 AMD가 GPU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글로벌 AI 사업이 미국 정부 승인에 달려 있는 셈이다. AI 가속기 칩은 현재 기술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으로 꼽힌다. 오픈AI와 알파벳 등 주요 기업은 챗GPT, 제미나이 같은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 데이터센터에 수천 개 GPU를 적용하고 있다.
특정 기업이 한 국가에서 20만 개 이상 GPU를 배치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는 해당 국가 정부가 협상에 참여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런 대규모 수출의 경우 보안 협력과 미국 AI 산업 투자를 약속한 동맹국에만 승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미국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와 체결한 AI 칩 공급 협정이 대표적 사례다. 두 국가는 2023년부터 AI 가속기 칩 수입 시 미국 라이선스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당시 협정에는 UAE가 자국 AI 투자 1달러당 미국에 1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번 규정은 아직 확정된 정책이 아니다. 현재 여러 연방기관이 의견을 제출하는 단계로, 내용이 크게 수정되거나 폐기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AI 칩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배경에는 중국 기업의 우회 조달 문제가 있다. 대표적 방식은 제3국을 통한 간접 확보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이 동남아시아 데이터센터에 GPU를 팔면 해당 데이터센터가 중국 AI 기업에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미국에서 말레이시아, 태국 등으로 수출된 AI 칩이 이후 중국 기업에 재판매되는 사례도 있다. 미국 정부는 이 같은 제3국 경유 거래가 중국의 AI 연산 능력을 높이는 주요 경로로 보고 있다. 일부 UAE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서는 미국 규제로 중국 AI 기업에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조건이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엔비디아는 중국 수출용 칩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엔비디아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의 생산 설비를 H200 칩 제조에서 차세대 ‘베라 루빈’ 칩 제조로 전환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H200 칩에 대한 미국의 대중국 수출 승인이 늦어지는 데다 중국의 잠재적 규제 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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