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확산이 에너지 수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기존 전력산업 법제와 규제 체계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에너지법학회와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태평양 사옥에서 '에너지와 인공지능 그리고 법' 세미나를 열고, AI 시대 에너지 전환에 따른 법적 과제를 집중 논의했다고 4일 밝혔다.
실제 AI·반도체 산업 확대에 따라 데이터센터 중심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2040년 전력 수요는 현재 대비 약 1.4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에 비해 법·제도 정비가 뒤처져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쟁점으로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둘러싼 법적 공백이 지목됐다. 제주 지역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출력제어 조치를 행정처분이 아닌 '계약 이행'으로 판단해 각하했다.
이에 따라 향후 분쟁은 행정소송이 아닌 민사소송이나 공정거래법 영역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커져 명확한 법적 근거와 보상 기준 마련 필요성이 제기됐다.
해상풍력 인허가 과정에서의 군사 규제 역시 구조적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500피트 고도 제한'은 법률이 아닌 행정규칙에 근거하고 있어 법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국내 해상풍력 설비 상당수가 해당 기준을 초과하고 있어, 현행 규제가 유지될 경우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AI 기술 자체가 에너지 시스템 운영 방식도 바꾸고 있다. 전력산업은 예측→최적화→자율제어→플랫폼화로 진화하며, 데이터 기반 운영과 실시간 거래가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전기사업법과 규제 구조는 중앙집중형·통제 중심 체계에 머물러 있어, 데이터 기반 플랫폼 전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가격 규제 방식(CBP)과 경직된 요금 체계가 혁신 투자와 시장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분석이다.
세미나에서는 AI 시대 에너지 문제를 단순한 기술·경제 이슈가 아닌 '법적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참석자들은 "에너지 전환과 AI 확산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법제와 정책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산업 경쟁력 확보는 물론 탄소중립 목표 달성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데이터 기반 전력시장과 새로운 규제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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