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구몬’ 수업 듣는 미국 아이들…‘K-교육’까지 세계로 뻗나

입력 2026-05-30 14:51  



한 미국 흑인 아이가 울상을 지은 채 아버지 품에 안겨 어딘가로 들어간다. 목적지는 국내에 잘 알려진 학습지 ‘구몬(Kumon)’ 교습소다. 아이는 가기 싫다고 버티지만 부모는 익숙하다는 듯 아이를 데려간다. 최근 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런 장면이 하나의 밈처럼 퍼지고 있다. 댓글에는 “수학 때문에 죽은 기분이었다”, “힘들었지만 결국 수학 실력은 늘었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흔한 유머 영상처럼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한국·일본 등 동양식 사교육 문화의 세계화 현상으로 해석한다. 과거 동양계 이민자 자녀 교육에 머물렀던 아시아식 학습 문화가 이제는 미국 현지 가정 안으로까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SNS에 올라온 영상들에는 “구몬이 미국에도 있었냐”, “캐나다에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브라질에도 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숙제를 매일 내주고 방학에도 계속 공부한다”고 적었고 또 다른 누리꾼은 “힘들었지만 결국 수학은 구몬 덕분에 이해하게 됐다”고 남겼다. 반복 학습과 문제풀이 중심 교육 방식에 대한 피로감과 효과 인정이 동시에 나타나는 셈이다.

구몬은 일본 교육 기업이다. 다만 국내 교원구몬 관계자는 “수학 프로그램은 일본 구몬 시스템을 기반으로 라이선스를 받아 운영하지만 다른 과목들은 국가별로 자체 개발한다”며 “각 국가 교육 환경에 맞춰 커리큘럼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중요한 것은 특정 기업 국적보다 교육 방식 자체라고 본다. 반복 학습과 자기주도 학습, 숙제 중심 훈련 등 이른바 ‘동양식 사교육 시스템’이 미국과 캐나다, 중남미 등 해외 시장에서도 하나의 교육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인, 원래부터 산수를 잘했던 게 아냐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아시아인은 수학을 잘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SNS에서는 ‘아시아식 성적표’를 풍자한 농담도 자주 등장한다. ‘A는 평균(Average), B는 평균 이하(Below Average), C는 저녁 굶기(Can’t eat dinner), D는 집에 들어오지 마(Don’t come home), F는 새 가족 찾아라(Find a new family)’라는 식이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동양권 특유의 강한 교육열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에서는 엄격한 교육열을 가진 ‘아시안 부모(Asian Parents)’ 문화도 하나의 밈처럼 소비된다. 숙제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방과 후에도 별도 교육을 시키는 부모상을 뜻한다. 과거에는 중국계·한국계·인도계 이민자 가정 중심 이야기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이런 교육 방식 자체가 미국 현지 중산층 문화 일부로 스며드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인종 이미지보다 교육 방식 차이와 연결해 해석한다. 동양권 교육은 반복 문제풀이와 숙제, 자기주도 학습을 중시하는 반면 미국 공교육은 토론과 창의성 중심 수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일부 미국 학부모들은 부족하다고 느끼는 기초 연산과 반복 훈련을 사교육 프로그램으로 보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미국에서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경쟁력에 대한 불안감도 꾸준히 제기된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학·과학 교육 중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미국 내 학력 저하 논란까지 겹치면서 반복 훈련 기반 학습 프로그램 수요도 다시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구몬은 한국의 대형 입시학원과는 차이가 있다. 국내 학원이 학교 시험과 입시 대비 성격이 강하다면 구몬은 반복 문제풀이와 숙제를 통한 기초학습 훈련에 가깝다. 매일 정해진 분량의 학습지를 풀고 스스로 오답을 고치는 방식이 특징이다. 미국 누리꾼들은 “끝없는 문제풀이”, “매일 있는 숙제”, “방학에도 이어지는 학습” 등을 구몬의 대표 이미지로 언급했다.

K-교육까지 해외로 뻗나
그럼에도 한국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어린 시절 학습지 선생님이 집으로 방문해 문제집을 검사하고 밀린 숙제를 확인하던 기억을 가진 세대가 많다. 과거 한국에는 빨간펜·눈높이·구몬 같은 학습지가 대표적인 방과 후 교육 문화 중 하나였다.

국내 대표 학습지 기업으로는 대교눈높이, 웅진씽크빅, 교원구몬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대교눈높이는 미국과 중국, 동남아시아를 넘어 최근 에콰도르 등 중남미 시장으로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장준혁 대교홀딩스 전략기획실 홍보담당 차장은 “해외 사업은 교민 자녀 교육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학생들을 주요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현지 교육 환경과 수요에 맞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사업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기존 학습지 시장이 교사가 학생 집에 방문하는 형태였다면 최근에는 학생이 직접 방문하는 오프라인 학습센터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교의 경우 전국 주요 도심 아파트 상권 등을 중심으로 ‘눈높이 러닝센터’를 운영 중이다. 학생들이 센터를 방문하면 교사가 개별 수준에 맞춰 학습을 지도하는 방식이다. 정해진 시간에 일괄 수업을 진행하는 일반 학원과 달리 학생별 진도와 수준에 맞춰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다. 교육 대상도 유아·초등학생 중심에서 최근에는 중·고등학생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방문 학습 형태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태블릿과 AI 기반 교육 플랫폼 형태로 사업 영역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한국식 에듀테크와 관리형 학습 모델도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해외에서는 ‘hagwon(학원)’이라는 한국식 표현도 점차 익숙한 단어가 되고 있다. 과거 ‘mukbang(먹방)’처럼 일부 한국 문화 콘텐츠에서 시작된 표현이 이제는 해외 유튜브와 SNS에서도 어렵지 않게 등장한다. 한국식 입시 경쟁과 사교육 문화를 다룬 콘텐츠도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교육도 K콘텐츠처럼 하나의 문화 코드로 소비되기 시작한 셈이다.

동양식 사교육, 미국인들도 몰려든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런 교육 방식이 동양계 가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SNS 속 영상 주인공들 대부분이 흑인·백인 등 미국 현지 가정이다. 과거 이민자 부모들이 자녀에게 시키던 방식이 이제는 미국 현지 중산층 교육 문화 일부로 스며들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미국도 한국·일본·중국 등이 먼저 겪었던 교육 경쟁 구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복 학습과 선행교육, 방과 후 사교육 확대를 둘러싼 논쟁이 미국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SNS 반응에서도 “어린 시절을 빼앗겼다”는 반응과 “결국 도움이 됐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타난다. 동양 국가들이 오랫동안 겪어온 ‘효율과 스트레스’ 사이 고민이 미국에서도 반복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일본 구몬이 해외 시장에서 성공 사례를 만든 만큼 향후 한국식 교육 모델도 해외에서 대중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금 당장 숫자로 드러나는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해외 현지인들 사이에서 동양식 교육 문화 자체가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라는 분석이다.

과거 글로벌 전자·자동차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이 먼저 해외 시장을 공략한 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이 뒤따라 성장한 것처럼 교육 분야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구몬이 동양식 교육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준 가운데 K팝·K뷰티에 이어 K-교육까지 새로운 해외 진출 산업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박정원 인턴기자 jason2014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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