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패키징 산업은 반도체 생산 생태계에서 ‘찬밥’ 신세였다. 하지만 2016년 분위기가 급변했다. 애플이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물량을 삼성전자 대신 TSMC에 맡긴 게 계기였다. TSMC는 두께를 획기적으로 줄인 팬아웃(fan-out) 패키징 독자 기술로 애플을 사로잡았다. 업계에선 “TSMC가 삼성전자와 격차를 벌릴 수 있었던 건 후공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패키징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간 전공정의 그늘에 가려졌던 패키징은 최근 반도체 공정이 2나노미터(㎚·1㎚=10억분의 1m)로 진입하면서 반도체 성능을 결정짓는 최전방 ‘주연’으로 떠올랐다.

TSMC는 AP7 건설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대만 전역에서 신규 첨단 패키징 공장 착공 및 증설을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2027년까지 CoWoS 생산 능력을 매년 50% 이상 늘린다는 방침이다.TSMC가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은 대만의 다른 후공정 업체가 맡는다. ASE, SPIL, KYEC 등이 대표적이다. 대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원스톱 AI 패키징 공장처럼 유기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SE는 세계 후공정 시장에서 점유율 30%로 압도적인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공정 단계의 미세화 경쟁이 한계에 직면하자 첨단 패키징이 반도체의 성능과 부가가치를 결정하고 있다”며 “대만이 파운드리를 넘어 최첨단 후공정 생태계까지 사실상 독점하면서 글로벌 빅테크의 생살여탈권을 쥐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대만은 차세대 기술에서도 경쟁사를 압도하고 있다. 차세대 기판 기술인 유리기판, 빛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실리콘 포토닉스, 하이브리드 본딩 등을 양산 모드로 빠르게 전환했다.
이 같은 기술 리더십의 배경에는 ‘학교가 곧 반도체 연구소’라고 불리는 촘촘한 산학연 동맹이 자리 잡고 있다. 대만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공업기술연구원(ITRI)은 첨단 패키징, 칩렛, 3D 적층 등 차세대 핵심 기술을 집중 연구하며 현지 기업과의 공동 개발을 주도한다. 연구소에서 검증을 마친 최신 기술은 현장 팹에 이식돼 양산으로 이어진다.
타이바오=강해령 기자/김채연 기자 hr.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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