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도 들을 수 있나요?” 읽을 책만큼 ‘들을 책’도 필요하다

입력 2026-06-24 09:00  

“이 책도 들을 수 있나요?” 읽을 책만큼 ‘들을 책’도 필요하다

오디오북은 더 이상 일부 독자만 이용하는 보조 콘텐츠가 아니다. 이동 중, 운동 중, 가사 노동 중, 휴식 중에도 책을 접할 수 있게 하는 독립적인 독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종이책이 눈으로 읽는 독서라면, 오디오북은 귀로 접하는 독서다. 독서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 저자의 생각과 정보, 서사와 감정을 받아들이는 경험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최근 해외 주요 플랫폼들은 오디오북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오디블(Audible)은 출판사를 대상으로 AI 음성 낭독과 번역 기능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으며, 스포티파이(Spotify) 역시 AI 음성 기술 기업과 협력해 디지털 음성으로 제작된 오디오북을 유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디오북은 이제 단순한 낭독 콘텐츠를 넘어, 출판물을 더 빠르게 음성화하고 더 많은 독자에게 연결하는 새로운 출판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시장 성장세도 확인된다. 미국 Audio Publishers Association이 2025년 6월 발표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미국 18세 이상 성인 중 51%, 약 1억 3,400만 명이 오디오북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오디오북을 이용해 보지 않은 사람 중에서도 38%가 관심을 보였다. 이는 오디오북이 더 이상 일부 독자의 보조적 콘텐츠가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책을 접하는 보편적 독서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전자책과 오디오북 이용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특히 독서 시간이 부족한 성인, 이동 시간이 긴 직장인,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오디오북은 책을 접하는 또 하나의 현실적인 경로가 되고 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오디오북이 독서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오디오북이 충분한가”를 물어야 한다.
종이책과 전자책에 비해 오디오북 종수는 여전히 부족하다

오디오북이 독서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들을 수 있는 책이 충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출판물 종수 추산을 보면, 오디오북은 종이책과 전자책에 비해 여전히 공급 규모가 작다.



위 수치는 출판물 누적 종수에 대한 추산치로, 국가·기관·플랫폼별 집계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종이책은 ISBN, 납본, 도서관 서지 데이터 등을 통해 비교적 폭넓게 추산할 수 있지만, 전자책과 오디오북은 플랫폼 유통, 구독 서비스, 독점 콘텐츠, 자체 제작 콘텐츠가 섞여 있어 정확한 단일 통계를 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흐름은 분명하다. 해외에서는 종이책이 1억 종을 훌쩍 넘는 규모로 추산되고, 전자책도 1,200만 종 이상으로 추산된다. 반면 오디오북은 약 100만 종 이상 수준에 머문다. 국내에서도 종이책과 전자책에 비해 오디오북 공급 규모는 아직 작다.

공공도서관 서비스 기준으로 보더라도 차이는 확인된다. 서울도서관은 국내 전자책을 소장형과 구독형을 합쳐 약 2만 4천 종 제공하지만, 오디오북은 약 1천 종 수준이다. 국회도서관도 소장형 기준 전자책은 약 3만 8천 종을 제공하는 반면, 소장형 오디오북은 약 1천 종대에 머문다. 이는 독자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들을 책’의 폭이 ‘읽을 책’에 비해 좁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오디오북 시장이 더 넓어지기 위해서는 수요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독자가 원할 때 언제든 ‘듣는 독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오디오북 종수를 충분히 늘리는 일이 필요하다.
공급의 한계, ‘인간과 기술의 협업’으로 돌파해야

오디오북 공급 부족을 인간 성우 제작만으로 따라잡기는 어렵다. 성우 오디오북은 높은 품질을 제공하지만, 매년 쏟아지는 신간과 이미 출간된 방대한 도서를 모두 소화하기에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 이 지점에서 AI 오디오북의 필요성이 커진다.

장르에 따른 이원화 전략과 더불어, 가장 현실적인 제작 방향은 ‘인간과 기술의 협업(Human-in-the-loop)’ 모델이다. ‘오디언’의 AI 오디오북 제작 방식인 ‘AI plus 오디오북’처럼, AI가 1차 낭독본을 생성하면 인간 에디터가 전문 편집 솔루션을 통해 문맥에 맞게 호흡과 미세한 억양을 다듬고 오독(誤讀)을 교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순수 수작업 대비 제작 기간을 크게 단축하면서도 낭독의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또는 성우 본인의 동의를 전제로 AI 음성 라이선스를 활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성우의 권리와 수익을 보호하면서도 제작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성우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우 오디오북을 ‘프리미엄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게 하여 그 가치를 더 선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AI 오디오북과 성우 오디오북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역할이 나뉘는 관계다

AI 오디오북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는 논쟁은 “AI가 성우를 대체할 것인가”다. 그러나 오디오북 시장의 실제 방향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역할이 나뉘는 관계에 가깝다. AI 음성과 인간 성우는 같은 시장에서 서로 다른 강점을 갖는다.

AI 음성의 장점은 비용, 속도, 확장성이다. 성우 섭외, 녹음실 대여, 연출, 편집, 검수 과정을 모두 거쳐야 하는 기존 제작 방식과 비교하면 AI 오디오북은 제작 속도가 빠르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제작하거나, 개정판과 업데이트가 잦은 콘텐츠를 신속하게 반영하는 데도 유리하다.

이러한 특성은 정보 전달형 콘텐츠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기계발, 경제경영, 교육, 매뉴얼, 뉴스형 콘텐츠는 감정 연기보다 정확한 발음, 안정적인 속도, 명료한 전달력이 중요하다. 독자가 기대하는 것도 극적인 몰입보다는 정보 습득과 효율적인 이해에 가깝다. 따라서 이러한 장르에서는 AI 음성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인간 성우의 강점은 감정, 연기, 몰입감이다. 소설, 아동물, 드라마형 콘텐츠, 문학 작품에서는 인물의 감정선, 대사 간 호흡, 장면의 긴장감, 침묵의 길이까지 작품 해석의 일부가 된다. 같은 문장이라도 어떤 감정으로 읽는지,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지, 인물마다 목소리의 결을 어떻게 다르게 가져가는지에 따라 작품의 체감이 달라진다.

따라서 오디오북 제작은 “AI냐 성우냐”의 이분법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책의 성격과 독자의 이용 목적에 맞춰 제작 방식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AI 오디오북과 성우 오디오북은 경쟁 관계라기보다 협업 관계에 가깝다. 정보형·실용형 콘텐츠는 AI 음성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감정과 연기가 중요한 콘텐츠는 성우 낭독을 중심으로 고도화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독서의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 핵심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은 서로를 완전히 대체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는 상황과 목적에 따라 두 매체를 자유롭게 선택한다. 오디오북도 마찬가지다. 오디오북은 종이책의 하위 형식도 아니고, 전자책의 부가 서비스도 아니다. 독자가 책을 만나는 또 하나의 독립적이고 보편적인 경로다.

문제는 선택권이다. 읽을 책은 많은데 들을 책이 부족하다면, 독자는 오디오북을 일상적인 독서 방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디오북 시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이용자 확대 노력만큼이나 콘텐츠 공급의 절대량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

AI 오디오북은 그 선택지를 실제로 넓히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기술을 도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아니라,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들려줄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독서의 방식은 이미 확장되고 있다. 이제 출판 시장이 해야 할 일은 그 변화의 속도에 맞춰 더 많은 책을 들려주는 것이다.

배경민 한경닷컴 기자 bk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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