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상 "샤갈의 천장화를 볼 때도, 신라의 '찬기파랑가'가 떠올랐다"

입력 2026-06-25 09:14   수정 2026-06-25 14:27

박혜상 "샤갈의 천장화를 볼 때도, 신라의 '찬기파랑가'가 떠올랐다"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이 선택한 소프라노 박혜상은 한때 한국과 미국, 유럽을 정처 없이 오가는 '노마드'(유목민)였다. 특정한 거처를 두지 않고 공연이 열리는 나라에 잠시 짐을 풀고 다시 비행기에 오르는 삶을 반복했다. 하지만 오랜 타향살이 와중에도 그의 시선 끝엔 언제나 한국이 있었다.




"유럽에 머물며 늘 궁금했어요. '이렇게 멋진 건물들이 지어진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한국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하고요. 그 시절 우리 선조들은 어떤 감정으로, 어떤 노래를 부르며 살았을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이번 리사이틀이 시작됐어요."

신라 향가부터 슈베르트 가곡까지

한국에 대한 그의 애정에서 출발한 무대 '한국 가곡 연대기'가 다음 달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소프라노 박혜상은 최근 서울 통인동 크레디아 사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샤갈의 천장화가 있는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도, 이탈리아의 오래된 건축물 사이를 걸을 때도 항상 동시대 한국의 역사와 연결하곤 했다"며 한국 가곡을 주제로 한 이번 공연의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무대에선 박혜상의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 향가인 '찬기파랑가'로 시작해 헨델의 아리아, 슈베르트의 가곡 등 서양 클래식과 조선시대 시조, 판소리까지 한 무대 위에서 펼쳐낼 예정이다. 무대를 채울 악기 역시 피아노와 대금, 첼로 등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오묘한 조합으로 구성했다.



하지만 성대를 긁어내듯 소리 내야 하는 전통 음악은 성악가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박혜상은 "찬기파랑가와 사랑가를 부를 땐 목소리에 변형이 필요한데 성대를 해치지 않으면서 중간점을 찾는 게 이번 공연의 가장 큰 과제"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설지만 아름다운 한국 가곡을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레퍼토리를 구성하면서 느낀 건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본질은 같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슬프다고 느끼는 것,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향한 시선은 마치 '평행이론'처럼 똑같더라고요. 1200년 전 신라 향가부터 시작되는 이번 시간 여행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귀 아닌 가슴에 머무는 성악가"

박혜상은 조수미, 홍혜경의 뒤를 잇는 프리마돈나로 세계 유수의 오페라 무대를 누비고 있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건 아니다.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그는 삼수 끝에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했다. 거듭된 낙방에 "이게 끝인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던 그는 결혼식, 레스토랑 무대를 전전하면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버텨낸 시간은 배신하지 않았다. 2017년 성악가들의 '꿈의 무대'로 통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단역으로 데뷔한 그는 4년 만에 오페라 '마술피리'의 여주인공 파미나 역을 꿰차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디바로 자리매김했다. 2020년에는 아시아 소프라노 최초로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고, 한국 가곡이 수록된 데뷔 앨범 'I AM HERA'를 발매했다.

도이치 그라모폰과 함께할 세 번째 앨범은 현재 머릿속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다. "다음에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스페인이든 라틴 아메리카든 그 특유의 언어와 음악이 가진 매력을 한국 노래와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스페인어권 음악을 향한 남다른 애정은 이번 무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박혜상은 2부에서 김소월의 시에 선율을 붙인 한국 가곡 '엄마야 누나야'를 부른 뒤 아르헨티나의 슈베르트로 불리는 작곡가 카를로스 구아스타비노의 '장미와 버드나무'를 노래한다.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 선생님이 저에게 '몸 안에 스페인 사람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며 스페인 곡을 많이 부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스페인 음악은 한국 노래처럼 진한 감정을 담아내선지 이유 없이 끌리는 것 같아요."

한국과 스페인, 두 나라의 뜨거운 열정을 품어서일까. 박혜상의 꿈은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다. "청중의 귀에 남는 성악가가 아닌, 가슴에 오랫동안 기억되는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 되고 싶어요. 그동안 타고난 재능에 기대 노래해 왔던 것 같아요. 노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해서 공부할 게 정말 많아요. 평생 제 한계를 부수며 노래하고 싶어요."

허세민/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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