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만 팔던 시대 끝났다…이젠 '안보 공급망' 수출

입력 2026-06-24 16:11  


K방산의 수출 공식이 바뀌고 있다. 전차와 자주포, 미사일을 빠르게 공급하는 단계를 넘어 현지 생산과 후속 군수, 인공지능(AI)·드론 기술까지 묶어 파는 ‘안보 공급망 수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수입국이 완제품 구매에 그치지 않고 현지 생산, 기술이전, 정비·교육, 탄약 공급, 금융 지원까지 요구하면서 방산 수출이 일회성 거래에서 장기 산업협력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무장 나선 세계…K방산엔 기회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한국 방위산업은 지난해 수출액 154억달러를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2022년 173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뒤 2023년 135억달러, 2024년 95억달러로 주춤했지만 유럽과 중동, 아시아를 중심으로 대형 계약이 이어지며 다시 성장 궤도에 올라섰다. 정부는 올해 수출 200억달러 달성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방산 시장의 구조 변화도 K방산에 기회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중동 정세 불안, 미국의 안보 공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각국이 무기 재고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안보 관련 지출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 중 3.5%는 무기체계와 병력 등 핵심 국방 분야에, 최대 1.5%는 핵심 인프라·사이버·방위산업 기반 강화 등에 사용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1~2025년 유럽의 주요 무기 수입은 직전 5년보다 21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유럽 NATO 회원국의 무기 수입에서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공급국으로 부상했다.
◇K방산, 이젠 ‘오래 함께’ 만든다

K방산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생산 속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은 ‘언젠가 받을 수 있는 최고 성능 무기’보다 ‘당장 전력화할 수 있는 안정적 무기’를 찾고 있다. 한국은 전차, 자주포, 다연장로켓, 경공격기, 함정, 방공 미사일 등 육·해·공 주요 플랫폼을 동시에 갖춘 데다 대량생산 경험과 납기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폴란드다. 한국은 2022년 폴란드와 K2 전차,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FA-50 경공격기 등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며 유럽 방산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러시아와 맞닿은 NATO 동부전선 국가들이 단기간에 전력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무기체계를 찾는 상황에서 한국산 무기의 납기와 생산능력이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이후 폴란드는 지난해 K2 전차 2차 이행계약을 추가로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약 65억달러로, 단일 방산 수출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공급 물량 180대 중 일부는 폴란드 현지에서 생산하고, 유지·보수·정비(MRO), 교육, 예비부품, 탄약 공급 등도 계약에 포함됐다. 1차 계약이 전쟁 위기 속 긴급 전력 보강 성격이었다면, 2차 계약은 현지 생산과 기술협력, 후속군수까지 포함한 장기 파트너십에 가깝다. 전차를 파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장과 정비망, 부품 공급망을 함께 구축하는 방식으로 수출 모델이 진화한 것이다.

루마니아의 K9 자주포 도입도 같은 흐름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4년 루마니아와 K9 자주포 54문, K10 탄약운반장갑차 36대, 탄약 등을 포함한 1조3000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루마니아의 최근 7년간 무기 도입 사업 중 최대 규모다. 폴란드에 이어 루마니아까지 한국산 지상무기를 도입하면서 NATO 동부전선에 ‘K방산 벨트’가 형성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동에서는 방공망 수요가 커지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 홍해와 호르무즈해협 일대 불안정,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드론 공격 등으로 걸프 국가가 미사일 방어체계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형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천궁-Ⅱ가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된 데 이어 이라크까지 중동 수출 저변을 넓히면서, 장거리 방공체계와 대드론 체계도 차세대 수출 후보로 거론된다. 기존의 고가 방공망만으로는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드론 등 복합 위협에 대응하기 어려워지면서 다층 방어체계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항공 분야에서는 FA-50과 KF-21이 수출 기반을 넓히고 있다. FA-50은 경공격기와 고등훈련기 수요가 있는 동남아, 중동, 유럽 시장에서 꾸준히 거론되는 기종이다. KF-21은 양산과 형식인증 절차를 거치며 독자 전투기 수출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전투기 수출은 기체 판매뿐 아니라 조종사 교육, 정비, 무장 통합,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장기간 이어지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K방산의 후속군수 역량을 시험하는 분야로 꼽힌다.
◇정부도 ‘패키지 수출’ 지원으로 전환
정부 정책도 단순 무기 수출 지원에서 산업 패키지 지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국방부와 산업자원통상부는 지난 4일 제12회 방위산업발전협의회를 열고 AI·드론·항공엔진 등 국방 첨단전략산업 육성과 범정부 차원의 수출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 협의회에서 정부는 방산수출 민간산업협력 TF를 신설해 산업협력 아이템 발굴, 패키지안 마련, 홍보 및 이행점검을 총괄하기로 했다. 수입국이 요구하는 현지 생산, 기술이전, 부품 공급, 인력 교육 등을 정부와 기업이 함께 설계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기존 수출국을 대상으로 한 후속군수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방사청은 2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27차 한·필리핀 방산군수공동위원회를 열고 기수출 무기체계의 유지보수와 교육훈련, 함정사업 부서 간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양국은 올해 3월 ‘특정 방산물자 조달을 위한 시행약정’을 개정해 방산협력 범위에 ‘유지보수’를 명문화했다. 필리핀은 두 차례의 FA-50 경공격기 계약을 비롯해 호위함 4척, 초계함 2척, 원해경비함 6척을 도입한 대표적 K방산 협력국이다.

방산업계에서는 이 같은 지원체계가 필수라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무기를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상대국의 안보 생태계 안에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가 관건”이라며 “후속군수와 정비, 업그레이드, 공동개발까지 이어져야 진짜 수출 경쟁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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