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허턴 "하루 5t 포탄 나른 제주마, 6·25 전쟁 판 바꿨죠"

입력 2026-06-24 18:49   수정 2026-06-25 00:00


“레클리스가 없었다면 경기 연천의 ‘네바다 전초’는 중공군에게 넘어갔을 겁니다. 작은 제주말 한 마리가 6·25 전쟁의 판도를 바꿨죠.”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방한한 로빈 허턴 작가(72)는 22일 인터뷰에서 “레클리스는 미군 역사상 정식으로 계급(하사)을 받은 유일한 동물로서 훈장도 10개나 수훈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에 거주 중인 허턴 작가는 20년간 레클리스를 연구해왔다. 언어·청각 치료학을 전공하고 영화계에서 시나리오 작가 및 프로듀서로 활약하던 그가 2006년 우연히 접한 레클리스 관련 기사 한 편이 계기가 됐다. 말을 키우는 사촌 덕에 평소 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레클리스 이야기에 곧바로 매료됐다.

이후 참전용사와 유가족 등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취재를 시작했다. 8년에 걸친 조사 끝에 2014년 레클리스를 다룬 책 <레클리스 하사: 미국의 군마(Sgt. Reckless: America’s War Horse)>를 출간했고, 이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난해 한국어 번역본도 나왔다.
◇경주마로 태어나 美 해병대 입대
레클리스는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 5연대 소속 군마(軍馬)였다. 본명은 ‘아침해’로, 1948년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제주말 어미와 세계적 경주마 품종인 서러브레드 종의 아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1953년 네바다 전초는 연천과 강원 철원의 경계에 놓인 ‘철의 삼각지’로, 서울로 가는 핵심 길목이었다. 이곳을 중공군에 내주면 수도권 방어선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었다. 레클리스는 하루에만 51차례 고지를 오르내리며 포탄 386발을 운반했다. 누적 이동 거리 56㎞, 운반한 탄약 무게는 총 5t에 달했다. 총탄과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장에서도 홀로 길을 찾아 움직였고, 부상병을 후송하기도 했다. 전투 중 왼쪽 눈 위와 왼쪽 옆구리에 파편상을 입고도 전장에 복귀했다. 레클리스는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두 차례의 퍼플하트 훈장을 포함해 총 10개의 훈장을 받았다.

레클리스는 ‘맥주 애호가’로도 유명했다. 맥주와 달콤한 간식을 유독 좋아해 해병들의 텐트에 몰래 들어가 쿠키를 훔쳐 먹곤 했다. 대장장이의 작업물을 망가뜨릴 만큼 장난기 넘치는 사고뭉치였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누구보다 빠르고 대담하게 움직였다. 이런 ‘반전 매력’ 덕분에 레클리스는 부대원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한미 잇는 역사적 가교로”
허턴 작가는 레클리스 기념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조각가 조슬린 러셀과 함께 미국 국립해병대박물관 등 미국 내 6곳에 레클리스 동상을 잇따라 세웠다.

허턴 작가는 “레클리스는 과거와 현재, 한국과 미국을 잇는 역사적 가교”라고 강조한다. 제주도와 경기 연천에는 이미 동상과 기념 공간이 마련돼 있다. 국내 대표 미군 주둔지인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도 동상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그는 “레클리스 스토리를 영화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진영 기자 real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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