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평소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독서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을 넘어 신한은행장이던 2020년에는 일본 사상가 이시다 바이간의 ‘정의로운 시장의 조건’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신한금융 회장에 취임한 2023년부터는 자회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등이 참석하는 ‘신한 경영포럼’에서 독서 토론도 열었다. 로마 철학자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의무론’과 미국 컨설팅 기업 네이발렌트 설립자인 론 카루치의 ‘정직한 조직’을 포럼 주제 도서로 선정한 지난해 1월 경영포럼에서는 ‘업(業)의 윤리’가 화두였다. 진 회장이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공부하는 금융지주 회장으로 꼽혔던 이유다.
하지만 올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진 회장에게 변화가 감지된다. 작년까지 경영포럼으로 불렸던 그룹 경영진 회의 이름을 ‘경영전략회의’로 바꿨다. 일정도 1박 2일에서 2박 3일로 하루를 늘렸다. 특히 진 회장은 2박 3일간 경영전략회의의 ‘시작부터 끝까지’ 별도 사회자 없이 직접 주재하며 회의를 이끌었다. 끝장 토론 형태의 ‘우리 회사, 진짜 혁신하기’, ‘진짜 혁신 경진대회’ 등 혁신을 필사적으로 부르짖었다.
진 회장은 지난해 신한금융이 베트남과 일본 등 신한은행 해외법인의 선전으로 국내 금융회사 중 최초로 ‘글로벌 세전이익 1조원’을 달성한 것도 외부 과시보다는 내부 결속의 기회로 삼았다. 진 회장은 핵심 경영진들에게 “해외에서 1조원을 넘게 벌어들이는데 전체 이익은 경쟁사에 비해 뒤진다”며 “그만큼 국내에서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경고”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옥동 2기’를 맞은 신한금융의 목표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은행 실적이 리딩금융 좌우
신한금융은 전임 조용병 회장 시절인 2022년 4조6423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하며 KB금융(4조3948억원)을 제친 이후 3년째 리딩금융(순이익 1위 금융지주)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당시에도 서울 여의도 신한투자증권 사옥 매각이익 3200억원이 반영된 일회성 측면이 컸다. 본업 경쟁력에서 KB금융을 앞선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국내 리딩금융 경쟁은 사실상 비은행 포트폴리오가 좌우한다. 작년 순이익을 놓고 보면 리딩뱅크(순이익 1위 은행)인 KB국민은행(3조8522억원)을 비롯해 신한은행(3조7748억원), 하나은행(3조7475억원) 등 ‘빅3’ 은행 간 차이는 최대 1000여 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올해 1분기(1~3월)에는 신한은행(1조1571억원)의 순이익이 가장 많았고 하나은행(1조1042억원), KB국민은행(1조1010억원) 순이었다. 사실상 신한, KB, 하나 등 3대 은행의 경쟁력은 엇비슷하다는 얘기다.
결국 증권과 보험, 카드 등 비은행 계열사가 얼마나 순이익을 내느냐가 리딩금융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KB금융이 리딩금융에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KB금융은 윤종규 전 회장 주도로 2014년 KB캐피탈(옛 우리파이낸셜)을 시작으로 2015년 KB손해보험(옛 LIG손해보험), 2016년 KB증권(옛 현대증권), 2020년 KB라이프생명(옛 푸르덴셜생명)을 잇따라 인수했다. 신한금융도 2018년 생명보험업계 5위 회사인 오렌지라이프를 인수하고 신한생명과 통합해 신한라이프를 출범시켰지만 KB금융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손해보험사의 격차가 컸다. 신한금융은 2021년 BNP파리바카디프손해보험을 인수해 신한EZ손해보험을 출범했지만 디지털 보험 중심의 사업 구조 특성상 외형 확대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신한금융과 KB금융의 지난해 실적만 놓고 봐도 비은행 계열사의 중요성이 명확히 드러난다. 사상 최대였던 신한금융의 작년 순이익은 4조9716억원으로 KB금융(5조8332억원)에 8616억원 뒤졌다. 순이익 차이는 두 금융지주의 손해보험사 격차와 비슷하다. KB손해보험의 작년 순이익은 7782억원인 반면 신한EZ손해보험은 323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두 손해보험사의 단순 순이익 격차는 8105억원에 달했다. 신한금융이 KB손해보험 수준의 손보사를 보유했다면 리딩금융을 놓고 진검승부가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롯데손보가 구세주 될까
진 회장이 마침내 승부수를 띄웠다. 신한금융은 최근 롯데손해보험 최대주주(77.4%)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를 상대로 비공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장기간 축척된 영업력이 중요한 보험업은 인수합병(M&A)이 가장 현실적인 추격 전략으로 꼽힌다. 롯데손해보험은 현재 시장에 나온 손보사 매물 가운데 최대어다. 올해 1분기 기준 등록 설계사가 7894명에 달할 정도로 영업조직도 갖췄다. 신한금융이 롯데손해보험(자산 13조8688억원)을 인수할 경우 단숨에 손보업계 7위(자산 기준)에 오를 수 있다. 여기에 신한은행을 비롯해 신한카드, 신한라이프 등 탄탄한 지주 계열사와의 시너지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신한금융은 언론 보도 이후 조회공시를 통해 “롯데손해보험 지분 인수와 관련해 확정된 사항은 현재 없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그룹의 비은행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롯데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금산분리 정책에 따라 롯데손해보험을 인수한 JKL은 2024년부터 롯데손보 매각을 추진했지만 불발됐다. 롯데손해보험 인수와 유상증자에 약 7300억원을 투입한 JKL는 매각가로 1조원 안팎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장사인 롯데손해보험 시가총액은 현재 6000여 억원 수준에 그친다.
여기에 롯데손해보험이 재무 건전성 악화로 금융위원회로부터 지난 3월 적기시정조치 2단계에 해당하는 경영개선 요구를 받은 탓에 인수자가 유상증자 등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몸값 1조원이 과도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롯데손해보험의 작년 순이익은 513억원으로 역대 최대인 2023년(2856억원)에 비해선 80% 넘게 줄었다. 금융권에서도 ‘정도 경영’, ‘직업 윤리’ 등을 강조해온 진 회장의 경영철학을 감안할 때 롯데손해보험을 시장 적정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식의 무리한 인수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진 회장은 증권·자산운용 등 자본시장 분야 경쟁력 강화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의 작년 순이익은 증시 호조 효과로 전년보다 113% 증가한 3817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KB증권(6739억원)과 3000억원 가까이 격차가 난다. 자산운용사도 KB자산운용(1202억원)이 신한자산운용(506억원)을 앞선다.
진 회장은 자본시장 부문을 그룹 성장의 충심축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신한투자증권과 신한자산운용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에서 지난 6월 신한금융 자회사 CEO와 임원들이 참석하는 월간 그룹 경영회의를 연 게 대표적이다. 진 회장은 이번 회의에서 ‘그룹 자본시장 경쟁력 제고 방안’을 안건으로 삼아 증권·자산운용 등 자본시장 계열사의 역할을 키워 은행 중심 수익 구조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회장은 올해 경영 슬로건으로 ‘그레이트 챌린지(Great Challenge) 2030, 미래 금융을 향한 대담한 실행’을 제시하며 ‘일류 신한 완성’에 시동을 걸었다. 진 회장이 두 번째 임기 3년 내에 리딩금융을 탈환하면 3연임 도전에도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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