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연방정부가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CPSP)의 최종 우선협상대상자로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를 낙점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6일(현지 시간)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 해군기지에서 공식 발표 행사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카니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튀르키예로 출국하는 길에 이례적으로 현장 발표를 감행했다.
그간 나토 내에서 방위비 분담금(GDP 대비 2%) 문제로 안팎의 압박을 받아온 캐나다가 정상회의 직전 대형 방산 조달 계획을 발표한 것은 정무적 판단의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잠수함 12척을 건조하고 향후 30년간 유지·보수·운영(MRO)하는 비용을 합산해 최대 60조원에 달하는 대형 방위사업이다. 캐나다 정부는 구체적인 최종 도입 척수나 총사업 규모를 본계약 협상 단계로 넘기며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연방정부 예산안에 최대 12척 도입 기준의 추정 비용을 선제 반영해 2030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4% 수준으로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했다.

최종 후보에 오른 한국 한화오션의 KSS-III 배치-II와 독일 TKMS의 212CD 모델 모두 캐나다 해군의 까다로운 작전 요구 성능을 충족했다.
다만 한국의 도산안창호함이 이미 실전 배치돼 검증을 끝낸 실물 플랫폼인 반면, 독일의 212CD는 아직 실제 건조가 완료되지 않은 도면상의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대조를 이뤘다.
카니 총리 역시 발표 현장에서 양사 플랫폼에 대해 "접전이었고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언급할 만큼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캐나다 정부의 최종 선택을 가른 결정적 변수는 군사적 성능이 아닌 포괄적인 안보·전략적 이해관계였다. 카니 총리는 "독일 TKMS는 이미 나토 국가 잠수함의 3분의 1을 공급하고 있다"며 나토 동맹 중심의 협력 체제를 정면에 내세웠다.
여기에 독일 측이 기존 독일·노르웨이 해군이 발주한 잠수함 물량 일부를 캐나다에 우선 배정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기 인도(2034년 첫 4척 인도) 카드를 던진 점도 주효했다.
급변하는 안보 환경 속에서 태평양을 넘어 한국과 새로운 관계를 개척하는 것보다 북극해와 북대서양을 아우르는 기존 유럽·나토 동맹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한 결과다.

입찰 과정에서 캐나다 정부는 산업·경제적 파급효과를 핵심 평가 항목으로 강조했다. 잠수함 구매력을 지렛대 삼아 자국 투자액의 100%에 해당하는 금액을 캐나다 내에 재투자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한국과 독일 제조업체 모두 미국 자동차 시장을 겨냥한 캐나다 투자 특성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폭탄 리스크와 미 자동차 산업 보호 장벽(USMCA 재협상 등)을 의식해 확답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화오션은 자국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을 태평양을 건너 현지에 직접 파견하는 등 민군 합동 총력전을 펼쳤다. 2032년까지 첫 잠수함을 인도하겠다는 빠른 납기 보장과 함께 2044년까지 약 700억 캐나다 달러(약 75조 원) 규모의 경제적 기회 창출을 약속했다.
반면 독일 TKMS는 철저히 현지 방산 공급망과의 '시스템 결속'과 '기술 이전'에 집중했다. 항공·시뮬레이션 거두 CAE, AI 기업 코히어, 마젤란 에어로스페이스 등 캐나다 우수 테크 기업 22곳과 파트너십을 맺고 공급망을 파고들었다.
최종 발표 직전에는 캐나다 제철소에 특수강 초도 물량을 발주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독일·노르웨이 컨소시엄은 잠수함 수명 주기 동안 캐나다 GDP에 860억 달러 기여, 65만 개 누적 일자리 창출 계획으로 맞불을 놨다.

비록 최종 계약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이번 수주전은 한국 방산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기념비적 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잠수함 강국인 독일과 서방 선진국 시장에서 막판까지 1대1 초박빙 접전을 벌인 것 자체가 한국 잠수함의 독보적인 기술력과 조선 역량을 세계 무대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외교가와 주류 사회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아시아태평양재단의 비나 나지불라 부회장은 "이번 한화오션의 수주 캠페인은 한국의 뛰어난 방위산업 역량이 캐나다 주류 사회와 정부에 확실하게 각인되는 결정적 계기였다"며 "오타와가 한국을 단순한 무역·에너지 파트너를 넘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방산 파트너'로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일이 핼리팩스에서 끝난 일회성 조달 스토리로 남아서는 안 되며, 향후 조선업, 장갑차, 탄약, 핵심 광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 광범위한 국방·산업 파트너십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이다.
카니 총리가 이례적으로 발표 현장에서 "한국의 실망감을 이해한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긴 통화를 통해 캐나다의 선택을 미리 알렸고 향후 전략적 파트너십을 심화하길 바란다"고 치켜세운 점도 한국 방산의 높아진 위상을 방증한다.
나지불라 부회장은 "이번 건은 NATO 동맹을 선택한 사례일 뿐, 그동안 한국 등과 심화해 온 인도·태평양 전략 파트너십이 실패했다거나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방산업계에선 이번 수주전으로 한국 잠수함이 세계 무대에서 기술력을 입증한 만큼, 이 기세를 몰아 사우디아라비아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신규 잠수함 도입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카니 총리는 이번 발표에서 "TKMS와의 최종 협상이 결렬될 경우, 예비 공급업체인 한국 한화오션이 즉각 협상을 개시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한화오션의 극적인 반전 가능성보다는 캐나다가 본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술적 카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방산 조달 사업에서 우선협상자가 뒤집힌 전례는 극히 드물다.
국방정책 전문가인 필리프 라가세 칼턴대 교수는 글로브앤메일 인터뷰에서 대규모 방산 계약을 '집 리모델링'에 비유하며 "시공업자들은 계약을 따내기 전에는 달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약속하지만,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면 기한을 맞추지 못하거나 추가 비용을 요구하곤 한다"고 지적했다.
캐나다가 이러한 리스크를 통제하고 독일의 가격 인상이나 요구 조건 변경을 차단하기 위한 '몸값 낮추기용 카드'로 한국을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번 수주전은 한국 방산에 다자간 안보 동맹의 벽을 넘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성능과 경제적 파급효과가 우수하더라도 나토와 유럽 중심의 군사 결속 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선진국 거대 시장 진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한국을 독일 견제용으로 활용한 캐나다의 안보 계산법을 직시하고 보다 냉정한 시장 다변화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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