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튀르키예 요리가 그렇게 맛있고 다양한 거로 유명하다지만, 막상 여행을 오니 화려하게 한 상 가득 차린 거한 식사보단 간단한 간식에 자꾸만 눈이 간다. 음식의 천국답게 어딜 가든 맛있어 보이는 간식거리가 널려 있어서 어쩔 수 없다. 어릴 적에도 군것질을 그렇게 하니 정작 밥은 못 먹는 거라며 야단맞곤 했는데, 이 나이 되어서도 별로 발전한 게 없는 모양이다.
반성은 짧게 끝내고 얼른 간식을 먹어보자. 최고의 장소는 역시 시장이다. 튀르키예어엔 시장을 의미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바자르와 파자르. 바자르(Bazaar)는 대부분 실내 시장으로, 언제든 열려 있는 상설 시장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스탄불의 명소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션 바자르 등이 대표적인 바자르다. 대부분 수공예품과 카펫, 보석류, 향신료 등 관광객을 위한 상품을 그득 쌓아두고 판매한다.
하지만 오늘 가는 곳은 바자르가 아니라 파자르(Pazar)다. 바자르가 매일 열린다면, 파자르는 보통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열린다. 어느 도시, 어느 동네나 으레 월요 시장이라든가 금요 시장 하는 식으로 정해진 날이 있으니 여행 중 짬이 날 때 검색해서 찾아가면 된다. 주말 골동품 벼룩시장 역시 매일 열리지 않으니 파자르에 속하는데, 안티카 파자르(Antika Pazarı)라고 한다.


파자르는 넓은 공터에 나무 기둥을 세운 후 흰 천을 넓게 펴서 연결해 임시 지붕을 만들고 그 아래서 오만가지 물건을 사고판다. 덕분에 눈과 비, 강한 햇볕을 적당히 막아준다. 뭐니 뭐니 해도 채소와 과일 같은 농산물이 제일 많고, 짭짤 새큼한 올리브 절임과 치즈, 육가공품과 빵도 먹음직스럽다. 값싼 의류와 생활용품도 그득하다. 그야말로 생활 밀착형 시장이다. 일주일에 하루, 이날만 기다린 상인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드니 시끌벅적한 게 분위기도 참 좋다.



나야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이니 느긋한 마음으로 구경하며 돌아다니는데, 어디선가 좋은 냄새가 날아온다. 고소한 기름 냄새다. 기름을 듬뿍 넣고서 뭔가를 노릇노릇하게 지지는 모양인데… 아니 이건 너무 파전 같잖아. 냄새를 따라 후다닥 가보니 역시나 부침개다. 그러잖아도 사람 많은 시장통인데, 요 앞이 가장 북적인다. 다들 나처럼 홀려서 온 모양이다. 역시 먹을 것을 팔려면 냄새를 풍겨야 하는 거다.


아주 커다란 철판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앞뒤로 지져내는 저 얇고 넓적한 부침개가 오늘의 주인공 괴즐레메(Gozleme)다. 그런데 뭘 넣은 부침개냐고? 파전이나 김치전, 녹두 빈대떡은 딱 보면 뭐가 뭔지 알 수 있지만 괴즐레메는 그게 어렵다. 겉으로 보기엔 다 똑같아 보인다. 밀가루와 소금, 물만으로 반죽을 만들어 얇고 크게 쭉쭉 밀어 편 다음, 가운데 부분에 속 재료를 흩뿌리고 네 귀퉁이를 접은 거라서 그렇다. 반죽 재료도 그렇지만 속 재료 역시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게, 시금치와 대파, 가지, 감자, 양파 같은 흔한 채소라든가 다진 고기와 새큼한 치즈 정도다. 애초에 복잡하고 섬세한 요리가 아니다.
괴즐레메는 수천 년 전 튀르키예의 고원과 평야를 누비며 목축업에 종사한 유목민들이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임시로 만든 부엌에서도 만들기 쉽고, 이동 중에 휴대하기도 편한 형태로 말이다. 그러니 우리 집 부엌에서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간단하고 소박한 음식이라고만 생각하면 섭섭하다. 갓 지진 괴즐레메가 얼마나 맛있는지 15세기 무렵엔 오스만제국의 궁중 요리로 등극했을 정도니까. 역시 술탄, 뭘 좀 아는 사람이다. 그 호화찬란한 주방에서 만든 괴즐레메란 대체 어떤 맛이었을까? 속에는 뭘 넣었을까? 어지간히 귀하고 비싼 재료였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괴즐레메는 시장에서 우연히 만나서 먹었을 때 제일 맛있다. 커다란 철판에다 얇고 넓적한 괴즐레메를 하염없이 지지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발견하면 어찌나 반갑고 좋은지 웃음이 절로 나온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여행 와서 시장 구경을 하다가 파전집을 보았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괴즐레메를 먹는다면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건 시금치 괴즐레메(Ispanaklı Gozleme)다. 갓 지진 건 아주 뜨거우니 포크로 적당히 뜯어서 후후 불어가며 먹다가, 좀 식었다 싶으면 맨손으로 잡고 먹는다. 그래야 더 맛있는 기분이다. 워낙 얇으니 한 개 다 먹어도 별로 배가 부르진 않아서 곧바로 하나 더 주문하고 싶어진다. 괴즐레메 좌판엔 으레 초콜릿 스프레드나 과일잼, 견과류, 코코넛 등을 넣은 달콤한 괴즐레메도 있다. 여기에 튀르키예 사람들이 사랑하는 홍차인 차이(Cay)까지 한잔 곁들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수천 년 역사의 간식을 맛보았으니, 이번엔 반대로 가보자. 이름하여 팟소(Patso), 2000년대 중반에 탄생한 따끈따끈한 최신작이다. 이스탄불 위스퀴다르의 한 식당에서 개발한 메뉴인데,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어 아주 빠르게 전국구급 간식으로 자리매김했단다.
실제로 튀르키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팟소를 판다는 광고판을 무척 흔히 보게 된다. 희한한 건, 하나같이 번듯해 보이는 레스토랑이 아니라는 거다. 선착장이나 역 주변, 야시장이나 대학가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의 노점과 키오스크형 가게가 대부분이다. 잡지도 팔고 교통카드 충전도 해주고 음료도 파는 그런 곳들. 메뉴를 들여다보면 무슨 무슨 케밥과 샌드위치, 핫도그, 탄산음료, 아이스크림이 전부다. 그리고 문제의 팟소까지. 서론이 너무 긴데, 팟소는 감자를 뜻하는 파타테스(Patates)와 샌드위치를 뜻하는 산드비치(Sandvic)의 합성어다. 그럼 감자샌드위치냐고?


우연히도 내가 한 달가량 머문 숙소 바로 옆 블록에 원조 팟소 가게가 있다. 느지막이 문을 열어 새벽 너덧 시까지 장사하는 곳이라 밤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다. 그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땐 술집이나 클럽인 줄 알았는데, 냄새가 워낙 좋아 가까이 가보니 감자튀김을 쉬지 않고 튀기는 모습에 평범한 패스트푸드점이라며 조금 실망했다.
조금 더 다가가 들여다보니, 어라, 햄버거가 아니라 감자튀김만 잔뜩 담은 거잖아? 빵이 있기는 한데 감자튀김 산에 깔려 잘 보이지 않는다. 한두 주먹 정도는 집어먹고 나서야 빵을 제대로 붙잡고 베어 물 수 있을 정도다. 이게 바로 팟소다. 갓 튀긴 감자튀김을 빵에 잔뜩 쌓아 올리고 케첩과 마요네즈를 듬뿍, 말 그대로 듬뿍 올린 음식. 맙소사, 영양 균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맛있어 보인다. 맛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좌석도 따로 없어 다들 가게 앞에 오종종하게 모여서 선 채로, 혹은 쪼그려 앉은 채로 와구와구 먹는다. 더는 못 참겠다. “저도 팟소 하나요!”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길쭉한 핫도그 빵을 반으로 가르고, 갓 튀긴 노릇한 감자를 그 위에 와르르 쏟듯이 담고, 말릴 새도 없이 케첩과 마요네즈를 사정없이 쭉쭉 짜준다. 하긴, 말려서 뭐 하겠나. 어차피 다 먹을 텐데. 원한다면 여기에 치즈나 소시지 등을 추가할 수 있지만, 그럼 왠지 팟소가 아닌 것 같다. 팟소는 오로지 빵과 감자다. 화려한 토핑을 원하면 애초에 샌드위치 전문점에 가는 게 낫다.
이건 싸고, 양이 많고, 빨리 나오고, 뭐니 뭐니 해도 맛까지 좋아서 인기 있는 음식이다. 이곳을 찾는 어린 학생들이 원하는 건 딱 이런 거다. 가게에서도 그걸 알기 때문에 감자고 케첩이고 아낌없이 퍼주는 거겠지. 갓 만든 팟소는 역시 맛있다. 하지만 중년이 소화하긴 역시 무리라 겨우 절반쯤 먹고서 두 손 들었다. 나만 빼고는 다들 가볍게 해치우는 걸 보니 튀김도 때가 있는 모양이다.
이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팟소가 이제 튀르키예 전체를 휩쓰는 걸 보니 문득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열풍이 떠오른다. 지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게 줄 서서 어렵게 사던 두쫀쿠인데 계절이 바뀌니 어느새 시들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얼마나 많은 음식이 길거나 짧게 유행했는지 생각하면 자영업자의 비명이 들리는 듯해서 아찔하다.
디저트만 해도 그렇다. 벌집 아이스크림, 대왕카스테라, 슈니발렌, 앙버터, 뚱카롱, 탕후루, 소금빵, 크로플, 요거트 아이스크림, 두쫀쿠… 어떤 건 허무할 정도로 금세 잊혔고, 어떤 건 의외로 꾸준히 팔린다. 수천 년 된 괴즐레메와 이십 년 채 안 된 팟소의 공통점이라면 먹어보지 않고도 알 것 같은 맛이라는 거다. 재료도 조리법도 단순한 편이다. 어쩌면 그래서 오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하거나 신기할 것 없는 친숙한 음식은 매일 먹어도 별로 질리지 않으니까. 간식 덕분에, 멀리 떨어진 튀르키예에서 이다음에 우리나라에서 유행할 음식은 뭘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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